" 모든 변화가 내 손 안에 있나니!"
아그다 느부라마나자
Agda Neburamanaja
신두 왕국
172cm  , 52kg  ,  18y

✦징조

〈풀무질〉

손에 쥔 풀무로 바람을 일으킨다.
데바살라야 산맥 북서부 구석, 상인도 잘 오지 않는 고적한 마을에 자그마한 대장간이 있었다. 그곳은 머나먼 지역의 바리에게 바칠 무구를 만들어내는 흔한 장소였고 당시 10살이었던 아그다가 허드렛일을 하며 입을 것과 먹을 것을 구하던 임시 거처 중 하나였다. 7월, 비가 내린다. 신두 남부 우림에 내리는 비보다는 다소 약하고, 알-파티하의 모래 위에 흩뿌려지는 비보다는 거세다. 대장간 화로에서 불이 지펴진다. 폐허 인근 나무들이 물을 흡족히 빨아들인다. 땔감이 타오른다. 아그다가 죄인의 딸이었기에 거할 곳이 없다는 사실은 그의 풀무질을 늘상 신경질적으로 부추겼고 그는 그날도 거칠기 짝이 없게 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죄인의 딸은 죄인의 우미카와 업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하는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언제까지? 왜? 그렇게 그가 황폐한 생각 속에서 이 사회의 뿌리 깊은 ‘우미카’와 주변 이들을 태우고 부수고 욕하기에 이르렀을 때, “어?” 불길이 갑자기 커져 대장간 반쪽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불살라진 대장간에서 빠져나온 대장장이는 녹아내린 르타교 신상이며 무구들을 보며 차분히 말했다. 내가 너에게 식사를 잘 챙겨주지 않은 업이 이렇게 돌아오는 모양이구나. 기침이 연신 토해진다. 빗물을 맞으며, 아그다는 허공을 향해 풀무를 들어 올렸다. 바람이 빠져나온다. 빗줄기가 일부 역행한다. 한 번 더, 쉭, 물방울이 불티로 변한다. 명백한 법행이었다.이리하여 첫 번째 바람은 파괴를 낳았으며 사제 아그다라는 창조를 그 답으로 내놓았다. 마치 르타교의 교리처럼, 세상의 섭리처럼. 아이가 새된 목소리로 웃으며 거리로 뛰어간다. 몸짓이 춤추듯 가볍다. 그는 마을에서 성격이 그다지 좋지 않기로 유명했고, 대장장이는 아그다가 사람을 해칠까 두려워져 황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가난한 대장간, 나무로 만들어진 그 집을 불이 재로 화하게 한다. 그리 세상 속에 유지시킨다. 바람보다도 더 가볍게.

인상착의

그러니 어찌 아니 즐거울 수 있을까.


  후드가 벗겨진다. 불을 닮은 적색 머리카락, 사자 갈기처럼 생긴 뒷머리가 바람 중에 거칠게 흩날린다. 그 궤적이 만들어내는 모양새는 시시각각 달라져서 그의 끔찍하게 변덕적인 성격 마냥 종잡을 수 없이 마구잡이로 흐트러지고는 했다. 머리 꼭대기 일부를 한층 더 붉게 염색했다. 시뻘건 염료를 골라내 고향 시장의 가장 솜씨 좋은 이에게 맡겼다고 했던가. 평범한 신두인보다 다소 짙게 그을린 피부를 지녔으며 얼굴을 이루는 살갗 정가운데 - 즉, 코 위에, 알-파티하의 문양을 문신으로 새겨두었다. 앞머리 아래에는 문신의 색과 엇비슷한 금색 눈이 자리한다. 호리호리한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공중에 흔든다. 옷과 장신구를 제하고 본다면 그는 마치 땅, 또는 나무 위에 불꽃이 새빨갛게 붙어버린 듯한 형상이다. 불이야!


호탕하게 웃고자 벌어졌던 입이 별안간 굳게 다물린다. 


  그리고 화마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초록색의 사제복이 몸을 감싼다. 왕국의 의상이 상체를 감싸고 그 끝단은 종아리 중간까지 부드럽게 내려온다. 와중에 신학교의 것도 섞어 착용해 뭇 구도자의 의아함 어린 시선을 받고는 했는데, 어깨를 감싸는 펠레그리나, 그 뒤쪽의 만텔로네, 금색 술과 함께 바람 중에 나부끼는 스톨레, 그리고 장식천까지, 성례의의 상하의만 빼고 전부 야무지게 챙겨 입는다. 팔레차는 “아, 그거? 수놓고 싶은 문양이 없어서- 그냥 버렸어.” 히죽, 기분 나쁘게 웃으며 키득거린다. 눈을 가늘게 뜨고 당신을 뚫어져라 살핀다. 이내 어머, 당신, 나보다는 옷 입는 감각이 부족한 모양이야, 제멋대로 중얼거린다. 옷가지들을 키와 덩치에 딱 맞게 갖춰 입는 편이며, 본국에서는 성례의의 망토 대신 화려하게 염색하고 수를 놓은 색색의 천들을 사제복 위에 휘감고 다녔다. 사바타가 지어준 베일, 안자가가 남는 천들을 조각조각 기워 만들어낸 숄, 두르슈리가 바느질한 망토 등, 지금도 그의 가방을 뒤져보면 그 천들이 어지러이 자리하며 그는 내킬 때마다 그것들을 신학교의 신성한 망토 위에 두르고 다녀 뭇 학생과 사제의 질타 섞인 시선을 받고는 했다. 

  아그다는 턱을 치켜 올리고 걷는 자세를 고수한다. 그다지 큰 키도 아니면서 내려다보는 듯한 각도의 눈길을 자주 보내오며 체구는 마른 편이다. 뻔뻔한 말투가 외국어 - 그는 성국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 를 뚫고 문장마다 그 존재감을 거세게 세운다. 여유로우며 비웃음 섞인 미소, 머리카락을 넘기거나 삿대질할 때마다, 즉, 일상 중에 그 손짓을 통해 강조되는 과장된 우아함, 타인을 낮잡는 듯한 태도, 평소의 그는 교만을 형상화한 것만 같이 생겼다. 그러나 갑자기 표정을 지운다. 그저 가만히, 당신 곁의 허공을 노려본다. 그러나 갑자기 음울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갑자기 다정해진다. 부드러워진다. 그러나 별안간, 평소의 오만한 낯을 되찾는다. 그러나 갑자기 호의 섞인 몸짓을 이어간다. 춤이라도 추자는 듯이 잡아 끌던 손을 불현듯 거칠게 내친다. 그의 외견에는 여러 자세와 태도가 혼재되어 있다. 



비가 불이 되어 내린다. 불이 비가 되어 내린다. 


  그 다양한 낯을 만들어내는 얼굴은 면밀히 뜯어 보면 졸려 보이는 인상에 가깝다. 반만 뜬 듯이 눈꺼풀이 다소 내리감긴 눈매 때문에 그런 걸까. 치켜 올라간 굵은 눈썹은 앞머리에 가려져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양쪽 귀에는 치렁치렁한 금색 귀걸이를 매달고 다니는데, 누렇게 도색되어 있으나 순금은 아닌 듯하다. 마찬가지로, 목과 (모든) 손목에 금색 목걸이며 팔찌를 둘렀다. 이 낡은 장신구들은 모두 금이 아니다. 그래도 그 밝음이 크게 퇴색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가 풀무질을 할 때마다 빛을 화려하게 반사하고는 한다. 네 개의 팔이 두 개의 풀무를 잡고 두 바람을 만들어낸다. 법력이 바람에서 비로, 비에서 불로, 또는 바람에서 불로, 불에서 비로 화한다. 

  반면 하반신은 수수하달지, 검소하달지, 사제에게 어울리는 차림새랄지 - 낡은 짚신과 수련의 줄기를 엮어 만든 발찌를 제하면 큰 특징이 없다. 손에 들고 있던 풀무들을 발 옆 땅바닥에 꽂는다. 망토와 사제복을 너풀거리며 앞으로 걸어간다. 법행으로 만들어두었던 두 팔에서 팔찌를 뺀다. 법력을 거둔다. 팔처럼 기능하던 나뭇가지 두 개가 옆구리에서 떨어진다. 양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린다. 불꽃이 비처럼 내려오는 하늘을 삿대질한다. 목을 젖힌다. 내내 미소를 머금던 입이 외침으로써 세 번째 바람을 토해낸다. 표정을 지운다. 



  “모든 이는 사제를 더욱 더 찬미하라!”


……자기자신에게 취하기라도 한 걸까?

안면은 움직이지 않고

깔깔, 새된 목소리로 웃음을 줄줄 내뱉는다.

품행

[나한테 / 절해라 / 다양하게 / 심술궂은]

풀무들을 북과 채라도 되는 양 솜씨 좋게 흔들며 비파와 수금 소리에 귀 기울인다.

모든 악기가 일제히 울린다. 모인 이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춤추며 절을 올릴 시간이다.




나한테 / 자기중심적인, 탐욕스러운 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뭐야?! 내 죄를 나한테 묻지 마.”

파괴를 자초하는 짓에 거리낌이 없다. 

  • 그걸 왜 나한테 따져? 묻는 목소리가 뻔뻔했다. 자기 잘못을 제때에 인정한 적이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네 탓, 내가 배를 곯는 건 신 탓, 내가 아픈 건 세상 탓, 제 성미가 그다지 썩 곱지 않은 건 전생 탓이었다. 
    • 전생의 내가 못된 인간이었던 걸 왜 내 탓을 해? 먹을 것이건 공예품이건 슬쩍 가져가다가 걸리면 관찰력이 좋은 상대에게 그 잘못을 돌렸다. “당신이 너무 귀가 밝아서 지금 우리 모두 기분이 나빠졌잖아! 나는 돌려줄 생각이었단 말이지…… 오늘이 끝난 뒤에 바로.” 헛소리였다. 
  • 타인을 배려하거나 그에게 베풀 기회가 생기면 무시했으며, 약자를 가소로이 여겼다. 누군가가 사기꾼에게 당한다면 그 피해자를 비웃었고 귀족에게 탄압당하는 이가 보이면 양쪽 모두를 조롱했다. 길에서 그 어깨로 사람들을 아무렇게나 밀치고 다녔다. 시비를 걸어오는 듯한 신경질적인 말투는 거의 늘 무례했다. 약탈, 갈취, 절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이익 등을 늘 반겼다. 
    • ‘나는 잘나서’ 하지 않는 선행을 ‘멍청한 너’는 자행하고, 그것을 내가 간혹 도와주기도 하니 너는 내게 마땅히 고마워해야 한다는 식의 논지를 자주 내세웠다. 그러나 실상은- 물질적인 선행이건 정신적인 수행이건, 중간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거나 가로채는 일이 잦았다. 
    • 나한테 재물을 바쳐봐. 당신의 다음 생에서 고통이 덜어지길 기원해줄게. 열반? 하하…… 바랄 걸 바라지 그래! 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될지도 모르지? 당신의 전재산을 사원에 양도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꽤 그럴듯하지 않아?  
  • 한편으로 그는 이 같은 성정을, 그의 거취를 결정할 권력 있는 자들 앞에서는 철저히 감췄다. 어떻게든 대공의회에 더 오래 남아 있고자 애쓰는 것인지, 나름 세심히 신경써 입을 다물고 웃음을 자제했다. 법행을 ‘침착하게’ 갈고 닦았다. 참선에 말없이 집중했다. 역설적으로 그는 법행에 상당히 능하며 ‘우수한’ 이가 되었다. 


신두에서 보내던 일상, 그는 그 평범한 생을 파(破)하고자 몸부림쳤다. 

불살라라, 너 자신을 위해!



절해라 / 오만방자한, 교만한 불이 안하무인을 제멋대로 인도한다. 

“혹시 알아? 내가 신의 화신일지. 르타교의 그 수두룩한 영웅들일지.” 

신이 되고자, 드높은 이가 되고자,


  • 화신이 영웅이 되는 걸까, 영웅이어서 화신이라 불리우는 걸까? 묻는 목소리가 작았다. 신두 왕국은 그 문화의 가짓수 만큼이나 신이 많다. 화신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의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탓일까, 아그다는 종종 감히 신이 되고 싶노라 말해왔다. ‘브라민들은 열반에 다다르면 모든 업으로부터 해방되어 그 무한한 번뇌를 내려놓을 수 있다. 신이 될 수 있다.’ 그래, 그것이 그가 어려서부터 들어온 진리였다. 그 교리를 진실로 믿는지와는 별개로 - 그는 ‘무엇이건 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거칠게 흥분한 목소리로 토해내고는 했다. 자주. 그리고 그의 언행을 통해 판단해보건대 - 그는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듯하다.  
    • 그러니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해. 타인에게 명령조로 말하는 데에 익숙하고, 제 솜씨를 곧잘 뽐낸다. 상대가 자신과 어울려주지 않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말을 하면 왜 나를 따라주지 않는 거냐며 성을 내는 일도 빈번하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 우미카, 그는 그것을 뼛속 깊이 비웃는다. 일부러 ‘상층민’처럼 말하고 행동해버릇한다. ‘나’를 높이라고 모든 타인에게 끊임없이 강요해댄다. 집착적으로 타인과 기존 질서의 위에 서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물론, 죄다 실패한 지 오래다. 여러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왜 아직도 그대로인 걸까? 
    • 더불어…… 아무리 건방지게 굴고 의무를 뻔뻔히 무시해대도, 동료 사제들이며 친해진 이들을 언제나 이기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친히 져주는 건 줄 알아, 당신!” ……아그다의 꺾이지 않는 고집을 두고 한 사제는 이리 말했다. 저 완악한 자는 대관절 몇 년을 더 수행해야 하는 걸까? 
  • 그는 법행을 다룰 때, 효율 측면에서의 이로움도 있지만 그 자신의 오만을 위해 제 팔을 한 쌍 더 만들어내기도 하는 모양이다. 숱한 신상들이 그들의 신들은 팔이 많다고 증거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모방하여. 
    • 짚신과 발찌를 만들고 ‘남은’ 재료를 활용하거나 대장간에서 일하던 시절에 배운 기술로 금속을 녹여 신상을 많이 빚어냈다. 그 신상을 들고 다니며 그는 씩 웃었다. 묻기를, “절할래?” 손에 쥔 신의 자그마한 형상을 살살 흔드는 건 덤이었다. 
  • 한편, 그는 여전히 이 같은 성정을 그의 거취를 결정할 권력 있는 자들 앞에서는 철저히 감췄다. 


타인의 ‘아그다 느부라마나자’에 대한 인정을 갈구한다. 그것이 그를 유지하므로.

비를 역행시키며.



다양하게 / 변덕, 변칙, 변화, 그는 빗물이 섞여 만들어진 잿물을 옷에 흩뿌렸다.  

“도와줘? 내가 또…… 재주가 좀 많거든.” 

으스대는 말투였으나, 사뭇 다정하게 말했던가.


  • 빗방울 하나하나는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묻는 목소리가 여유로웠다. 신이 많은 나라에서 자란 탓인지, 그는 사람들의 다양한 성격과 언행을 아낀다. “혼란과 혼돈이 뭐가 나빠? 질서와 규칙에 매몰된 사람들은 겁쟁이일 뿐이야. 여러 종류의 바람이 한 데 모여 춤판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열려 있는 장이 아니라면, 세상의 그 어떤 수행이 참된 결과를 낳을 수 있을까.” 어떤 수업에서는 그리 발언했으며, “저질러버려! 과감한 한 수가 때로는 0을 무한으로 만들기도 하지.” 신두인처럼 말하다가도, 바람잡이처럼 주변 이들의 의무와 바람을 부추기길 좋아했다. “당신이 당신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영혼을 바쳐, 자아를 송두리째 내맡길 정도로 그 사람을 따를 가치가 있는 거야? 웃기다! 나는 영 모르겠단 말이지.” 불난 데 부채질이 아니라, 풀무질을 해버리기 일쑤였다. 
  • 타인의 다면적인 - 모종의, 복합성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것과 동시에, 그는 혼재된 옷차림 만큼이나 정신 없는 태도 변화를 늘상 보여왔다. 
    • 능글맞게 친절하기도 했다가 (“이런, 호의라고는 처음 받아보는 것처럼 반응하네. 이 과일을 그렇게 좋아했으면 미리 말 좀 하지 그랬어! 그러면 내가 신두에서 더 많이 가져왔을 텐데. 거짓말 같다고? 당신 혹시 속고만 살았어? ……당신이 어제 혼자 자고 있을 때 담요 가져다준 게 나인데도?”)
    • 바로 태도를 바꾸어 평소의 심술궂은 어투를 내보였으며 (“나를 그렇게 못 믿는다니! 내가 꺼져줘야 하겠어, 그렇지? 응? 나 따위가 준 음식도 맛있을 리가 없을 테니 도로 가져가고. 사과하면 용서는 해주겠어.”)
    • 우울하게 입을 딱 다물고 있기도 했다. (“……야단? 아니. ……오늘은 주의 받은 것도 딱히 없어. 당신 발을 밟게 해주면 기분이 조금 더 나아질 것 같긴 한데…….”)
    • 이 뿐이면 좋을 텐데, 온갖 기행을 종류를 가리지 않고 시도해대는 다양한 면모 또한 기숙사 동관 등지에서 종종 발견되고는 했다. 달리 말해,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볼 기회가 있으면 모험을 망설이지 않는다. 낯선 사람과의 인연, 위험한 실험, 마법 연구, 남 골탕먹이기, 신학교 지붕 꼭대기로 올라가보기, 불온하다 분류된 학자들의 사상을 탐구하기 등등 …… 당신이 만약 인생을 조금 위태롭게 바꿔보고 싶다면 그와 잠시 동행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 그는 그가 무엇이건 될 수 있는 존재인 것 마냥 행동한다. 하지만 이 같은 성정을 그의 거취를 결정할 권력 있는 자들 앞에서는 철저히 감췄다. 

춤추듯 몸을 돌린다. 강한 바람과 적색 머리카락 아래에 다시금 심술궂은 표정이 떠오른다.

아그다로서 일관되게

순환하는 화우(火雨) 속에 가지를 뻗어라.




누군가가 외쳐 묻는 목소리에 경쾌하게 답한다.

“그간 지은 업이 많아? 더 쌓아!”

안면은 움직이지 않고 깔깔, 새된 웃음을 줄줄 내뱉는다. 

불 붙은 낙엽이 흐느적거리듯 신상 앞에 과장되게 엎드린다.

물론, 옆에 대공의회와 관련된 깐깐한 이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이야기

같은 소절을 반복해 변주한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쳐 어깨 너머로 넘긴다. 

몇 번째인지 모를 동작을 되풀이한다. 끝없이.



신 / 태어나다

“원래는 무희가 될까 했었지. 떠돌이 무희!” 

과거를 논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다. 


  • 첫 번째 바람: 느부라마나자 일가는 아그다가 불의 신만큼 불멸하길 바랐다. 아그다는 자신이 가을에 태어난 마을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남쪽으로는 마을에 딱 달라붙은 산맥이 그 서늘한 기운을 흘려대고, 비스듬히 북서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 바다가 어렴풋이 보이는 황폐한 산골 마을이었어. 당신,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기는 해? 뭐… 하여간, 산에 반 걸쳐져 있고 그 아래쪽 평지 아닌 평지에 반 정도 걸친 내 고장에서 내가 주로 가던 곳은 마을 꼭대기의 사원이었어. 거기에서 내가 태어났다고 했거든, 우리 아빠가.” 사원으로부터 대각선으로 비탈길을 쭉 따라가노라면 마을의 죄인들이 갇힌 감옥이 나왔다. 
    • 마을: 데바살라야 산맥 북서부 끄트머리, 신의 거처의 끝 중의 끝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산 두어 개를 넘어가면 캄발라에 들어서게 된다는 점이 그나마 특징적인. 그럴듯한 행정적 지원은 전무했으나 당시 아그다의 걸음으로 이틀 정도 걸어가면 지방행정관이 기거하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긴 했다. “비가 자주 오는 편은 아니었어. 어디까지나 신두 남부 기준으로. 시르쉬, 그러니까, 북부 기준으로는 - ……당신이 알아오는 건 어떻겠어. 귀찮아졌단 말이지.” 
    • 사원: 르타교의 세 주신 중 파괴를 관장하는 신을 모시는 대중적인 - 그리고 아주 작은, 늙은 사제 한 명이 하품하며 자리를 지키는 사원이었다. 그는 명상을 핑계로 아그다가 사원에서 자고 가건 음식을 먹건 신경쓰지 않았고, 그렇게 사원은 아그다의 가장 그럴듯한 집 중 하나가 되었다. 
    • 출생: 지금도 아버지가 살아있긴 한 모양이다. 그는 바리였으며, 15년 전 친구였던 바리를 그의 무구로 살해한 뒤 자수했다. 그가 청한 형벌은 고향 마을의 감옥에 영원히 투옥되는 것이었고, 당시 지역을 관리하던 행정관은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같은 해 행상인이었던 모친이 신두 남부 지역에서 때 아닌 폭풍에 휘말려 사망했다. 그 무렵부터 ‘이변’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음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 되었으나, 신두 왕국 전역에 흔한 자연현상이 그의 죽음의 원인이었노라 - 15년 전의 느부라마나자 일가는 유해와 함께 전해 들었다. 그 뒤로 5살이 될 때까지 아그다는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조모가 타계한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며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 가족: 수업 사이사이 잡담을 나눌 때나 기숙사에서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려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당신이 만약 그와 해당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다면, 아비를 매우 싫어한다는 것, 전생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업과 윤회에 대해 논할 때면 비웃음 섞인 낯이 된다는 것 등을 쉬이 알 수 있으리라. 
  • 두 번째 바람: 마을 사람들은 그가 배를 심하게 곯길 바라지 않았다. 영유아가 쉬이 살아남을 수 없는 마을이었지만 어려서부터 기운이 참 거셌던 이 아이는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믿었고, 그래서 음식과 옷을 나눠주었다. 기도를 올리며 말을 가르쳤다. 
    • 폐허: 과거에는 산맥을 건너오는 사람들을 위한 휴식처가 든든하게 마련된 마을이었다. 여행객, 사제, 상인 등이 마을을 자주 오갔고 역사가 변함에 따라 마을 또한 쇠퇴했다. 지금은 산장의 낡은 터와 시장의 돌바닥만이 쓸쓸하게 평지로 이어진다. 
    • 아이: 아그다보다 나이가 많은 두 아이가 마을에 있었다. 그들은 셋이서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허드렛일을 도왔고 마을의 공동 육아 속에서 남매로 자랐다. 
      • “친구? 있거든?! 있다고! 사바타, 두르슈리, 나는 얘네랑 무려 의남매라고! 사회성도 친절도 황소 코딱지만큼도 없는 사람은 당신이겠지……!” - 철학 수업 도중, 논쟁이 말다툼으로 번진 뒤 서로의 머리카락을 잡은 두 학생 중, 아그다 느부라마나자曰. 
    • 방언: 당신이 만약 그와 말을 섞어 보았다면, 당신이 어느 곳에서 왔든지 쉬이 알아차릴 수 있었으리라. 그는 말씨에 방언이 세게 묻어나온다. 사라시어와 신두어를 말할 때도, 성국의 언어를 말할 때도. 다만 특이한 점은 방언이 신두 북서부에 한정되지 않고 이곳저곳 뒤섞여 있다는 점인데, 그가 흘린 이런저런 정보를 모아보면 - 그는 법행을 깨우친 뒤 14살이 될 때까지 데바살라야 산맥 너머 그 북부 지역을 이리저리 떠돌며 살았던 모양이었다. 동행인은 그 남매, 사바타, 두르슈리 달랑 둘 뿐이었다나 뭐라나. 
    • 대장간: 아그다가 홀랑 태워먹으며 징조를 깨우친 그 대장간은 아그다의 나이 14살 때 르타교 사제들의 지원으로 복구되었다. 
  • 세 번째 바람: 14살 가을, 시르쉬의 어느 르타교 사원에 정식으로 입적한다. 그 해 여름 어떤 만트리의 곳간과 저택의 3분지2가 불에 송두리째 탔다는 소문을 만약 당신 또한 신두 북부에 있었다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 네 번째 바람: 대공의회를 위해 카엘루마로 떠났다. ‘더 다양한 세상을 보고 싶다.’ 외에 딱히 밝힌 이유는 없다. 



신두에서 보내던 일상, 그는 그 평범한 생을 입에 자주 올렸고 상기한 모든 정보는 그다지 비밀이 아니다.

지난 2년 동안, 당신은 아그다 느부라마나자에 대해 어디까지 알게 되었을까.





인간 / 의무와 업을 쌓다 

“내가 꾼 꿈과 그 해석을 맞혀볼래? 해석만 맞히는 게 아니라, 꿈까지- 죄다. 어머, 자신 없어? 당신이 믿는 신께 부끄럽지도 않아?” 

그의 현재보다는, 당신이 어제 꾼 꿈이 차라리 더 정돈되어 있을 테다.  


  • 첫 번째 꿈: 성실한 학생은 아니지만 동작이 빠르고 법행을 행하는 과정에 망설임이 없다. ‘성행 실습’ 영역에 특히 두각을 드러내며 - 신학교의 사제들은 느부라마나자를 그리 평했다. ‘예의가 다소 부족한 듯하나 상급자 앞에서는 나름 언행에 주의를 기울이기는 함.’ ‘오만하지만 신성 모독은 아슬아슬하게 아닌 발언을 일삼음,’ ‘신의 존재와 권위를 의심하지는 않으나 건방짐.’ 
    • 언어: 반 년 정도는 계속 신두어를 사용했다. 성국어를 유창하게 쓸 수 있음에도 일부러 신두어로 홀로 말하고 있다는 게 티가 났다. 그러나 신두에서 온 동향인의 적응은 선뜻 도와주겠노라 나서는 일이 잦았다. ……조국을 아끼기라도 하는 걸까?
    • 교과 과정: 수학과 천문 시간에는 그럭저럭 잘 집중하였으나 유독 신학 시간에는 자주 졸았다. 철학 시간에는 흥미를 보였지만 토론할 때마다 상대를 업신여기는 그 태도로 인해 갈등을 자주 빚었다. 언어와 성행 이론은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나 어려움을 겪는 듯하고 실습은 타인이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학습하고 성찰했다. 
    • 교복: 기왕 성국까지 온 것, 성례의를 입고 싶었다고 한다. 다만, 수브타나와 로리카 등은 옷장 깊숙한 곳에 밀어넣고 좀처럼 꺼내지를 않는 것 같다. 이것 또한 그가 좋아하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법 중 하나인 걸까. 
    • 문신: 기왕 대공의회에 참여하는 것, “알-파티하의 대표적인 상징 또한 내 몸에 남기고 싶었어. 조국이 자랑스럽지? 내 낯에 새겨지다니……. 아, 내 발언이 좀 무례했나? 못마땅하다는 기색이네. 참아.” …이것 또한 그가 좋아하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법 중 하나인 걸까. 
      • 시술: 문신은 그가 법행으로 직접 새겼다. 그 바람에 일주일 정도는 낯에 붕대를 칭칭 감고 신학교 교정을 돌아다닌 적이 있었더랬다. 
  • 두 번째 꿈: 그는 뱀과 신상들을 좋아한다. 갖가지 신의 형상과 뱀을 한데 본떠 공예품을 만드는 일에 능하다. 
    • 취미: 춤을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불쑥불쑥 악기를 연주해달라거나 노래를 해달라며 청한 - 명령한 - 적이 많았다. 배워보고자 하는 생각은 있었던 듯하나 - 글쎄, 성질머리가 급해 죄다 학습 도중에 그만뒀다는 모양이다. 
      • 외출: 또 다른 취미는 외출인데, 외출 자제 권고를 듣고 약 한 달 동안 짜증을 낸 적이 있었다. 요즘은 몰래 나가는 방법을 열심히 탐색 중인 듯하다.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으나…… “함께할 영광을 당신에게 줄게. 혹시 담장 잘 넘어?” 
    • 재산: 금은보화는 물론이요 3국의 온갖 화폐를 긁어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재물을 탐할 ‘안전한’ 기회가 눈에 들어오면 바로 손이 나간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선물’을 늘상 요구하고 있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나 그거 줘.”와 같이 불쑥 말한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직접 만든 장신구나 공예품, 신상 등을 내밀며 물물교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 그러나: 대공의회에서 쫓겨나지 않고자, 즉, 큰 문제는 일으키지 않고자(당신의 기분을 너무 상하게 만들지는 않고자) 내심 세심하게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 세 번째 꿈: 나무는 왜 불에 타는가? 물은 왜 불이 될 수 없는가? 인간은 왜 팔의 개수를 자유자재로 늘리고 돈을 창조해낼 수 없는가? 사람은 왜 죽는가? 우미카와 윤회로부터 자유로운 왕국을 꿈꾸는 것은 반역인가? 
    • 풀무: 그는 풀무 너덧 개를 기숙사 동관의 제 방에 두고 있다. 주로 들고 다니는 건 갈색의 풀무 두 개다. 만약 당신이 이 풀무를 만져봤다면 - 매우 가벼우며 재료의 소재가 그다지 썩 좋지는 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으리라. 오로지 경량화에만 집중한 듯한, 아그다의 무기들이다. 
      • 형태: 풀무는 상자형이건, 그가 평소에 쓰는 것처럼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아 주머니 부분의 수축과 이완을 반복시키는 형태건 그 무엇이건 상관 없다. 무게 또한 마찬가지다. 가볍거나 무겁거나 - 망가졌거나 온전하거나 등 풀무의 상태와는 관계 없이, 일단 형상의 분류가 풀무이기만 하면 징조의 조건이 충족되는 모양이다.  
      • 휴대: 아무래도 풀무는 양손을 써야 하며 동작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기에, 아그다는 법행 하나하나를 내부적으로 길게 늘여가며 연쇄를 일으키는 것도 선호하지만 아예 팔을 한 쌍 더 늘려 풀무 또한 하나를 더 들고 다니는 걸 택했다. 첫 번째 풀무로 바람을 불어 나뭇가지(혹은, 각목) 두 개 - 기본적으로 휴대하는 준비물이 퍽 많은 편이다. - 를 사람의 팔과 손 형태로 바꾼다. 양 옆구리(경우에 따라, 어깨)에 붙어 늘어난 팔로 풀무를 하나 더 움직여 두 번째 바람을 만든다. 숨을 여유롭게 내쉰다. 그리하여 하나의 바람이 세 개의 바람을 더 낳는다. 세 개의 바람이,
  • 법행: 세상의 근원과 이치에 닿고자 발버둥친다. 
    • 습관: 주로, 풀무를 하늘로 향한 채 바람을 불어넣는 편이다. 구름을 흔들어 불로 만든 비를 땅에 쏟아붓는 짓을 즐겨 한다. 비를 불로 변환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순전히 변화며 다양성이며 귀에 딱지가 얹을 듯이 그가 강조해댄 그의 취향 탓으로 추정되며, 수업 중에는 바닥에서 지펴 하늘로 올려보내는 평범한 불보다는 불꽃으로 이루어진 호우가 조금 더 넓고 멋지다는 이유를 대고는 했다. 
    • 어떻게?: 그는 대체 어떻게 대공의회에 선발된 걸까? “당신은 내가 잠깐동안 얌전한 척도 못할 것 같아?” 그가 기거하던 사원은 그의 수련을 도와주던 동료 사제 서너 명만 기거하는 작은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었고, 동료 사제들은 그가 조금이라도 더 ‘브라민답게’ 행동하길 바랐기에 - 마가다에서 파견 온 사제가 사원에 방문했을 때 아그다의 얌전한 척을 고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대공의회 행이 결정되고 카엘루마행 선박에 오를 때까지 약 석달 간 성실하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뭍에서의 지난한 심사 과정 중, 법행을 행함에 있어 다소 ‘급하다’는 점이 우려 사항으로 꼽혔으나 범위나 세기의 조절에 능하고 법력의 다채로운 활용에 익숙해 어찌어찌 무사히 배에 올랐다. 
    • 실상: 치유나 회복과 관련된 마법에는 유독 골머리를 앓는 편이다. 
  • 네 번째 꿈
    • 호불호: 호 - 향이 강한 음식, 화려한 색감이나 무늬, 비 오는 날, 숲, 돈 등 | 불호 - 귀족, 화재, 민무늬, 강요, 잔소리, 등등 …… 너무 많다.
    • 호칭: 많은 형태로 불릴수록 더 많이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당신이 무어라 부르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 최근: 근래 반복해 꾸는 어떤 꿈이 있는 모양이다. 예지몽일까? 



결국 지금도 타인과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를 유지하므로.

꿈을 불태우며. 





영웅 / 서사시를 쓰고 듣는다 

“이변을 해결하는 난세의 영웅은 과연 누가 될까? 성황? 하하! ……그 누구도 될 수 없을 거야, 그런 건.”

건방진 지칭, 그리고 삐딱한 미래를 제멋대로 예언한다. 


  • 첫 번째 불: 신학을 공부할 때마다 - ‘종말’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는 눈을 상당히 반짝이는 편이었다. 
    • 이변: 그는 이변과 재앙에 흥미를 느끼는 듯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대? 앞으로 어떤 이변이 더 발생할까? 피해가 큰 지역을 원래대로 돌려낼 방안은 - 아, 그래, 우리가 알아내러 가야 하지? 
    • 성황: 대공의회의 모두가 전달 받은, 테레사와 라데군다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숙지하고 있으나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깊이 캐묻는다면, 
  • 두 번째 불: 가끔, 아주 가끔, 세계 정세와 역사에 ‘아그다 느부라마나자’가 개입할 방법을 묻기도 한다. 
    • 불씨: 이변도, 계승도 모두 세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불씨라고 볼 수 있다. 파괴와 창조는 뒤섞여 존재한다. 뱀이 허물을 끊임없이 벗듯이. 바람직한 수행자라면 그러한 ‘자연적인’ 일에 자신의 개인적인 바람을 섞는 행위를 꺼려해야 할 테지만 - 
    • 아그다: 정치, 전쟁, 통치 등과 관련된 세속적인 지식을 경전을 탐독하는 만큼 깊이 탐구한다. 
    • 카엘루마로 오던 길: 당신이 만약 동향인이라면, 신학교까지 오는 길에 그가 담당자에게 이변을 다 몰아내면 어떻게 되는지, 공이라는 걸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목소리를 오밤중에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 바람: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던가. 그는 상기했듯, 신의 화신이 되고자 한다. 변화와 반항을 자처하며. ……대체 그 어떤 신이 그를 좋아할까? 



나무가 내일 자랄 씨앗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그다 느부라마나자, 바로 나 외에는 그 누구도 말이야! 으하하하!”

순환하는 업과 징벌이 불의 고리를 이룬다.






신두 왕국의 어떤 사원 마당,

허리를 젖힌 채 

안면은 움직이지 않고 깔깔, 세찬 웃음을 줄줄 내뱉는다. 

……동료 사제가 다가와서는 그의 귀를 붙잡아 끌고 간다. 

지금도 같은 소절을 반복해 변주한다.

"모든 변화가 우리 안에 있나니."
아그다 느부라마나자
Agda Neburamanaja
신두 왕국  ✶ 182cm  ✶ 58kg  ✶  25y
Teresa

“마하라자에게 벌써부터 밉보이고 싶지는 않거든. 나는 아직 지지세력이 더 필요해.”


제가 바라는 사회를 만들 기반 - 즉, 정치적인 입지를 더 단단히 다지기 위해 내린 결정으로, 라데군다가 아그다 느부라마나자의 행보에 도움을 줄 가능성보다는 테레사 측의 기득권층이 대공의회 소속 브라민들에게 접촉을 시도해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모든 일은 연결되어 있으므로 - 아그다도 결국에는 뼛속 깊이 왕국 사람이다. - 그는 내심 테레사 쪽을 응원한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성국과의 인연을 통해 제게 무언가, 권력이나 재물이라도 굴러 들어올지……. 


“……이상한 일이지. 뻔하지 않은 삶을 자유로이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려면, 뻔한 짓을 해야 해. ……짜증나! 그래도, 뭐…… 솔직히, 라데군다의 대처는 신두 사람 입장에서는 꽤 공포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어. 단정짓지 말라고? 싫어.” 


전신
※이미지 출처:지인 지원

징조

〈풀무질〉

손에 쥔 풀무로 바람을 일으킨다.
데바살라야 산맥 북서부 구석, 상인도 잘 오지 않는 고적한 마을에 자그마한 대장간이 있었다. 그곳은 머나먼 지역의 바리에게 바칠 무구를 만들어내는 흔한 장소였고 당시 10살이었던 아그다가 허드렛일을 하며 입을 것과 먹을 것을 구하던 임시 거처 중 하나였다. 7월, 비가 내린다. 신두 남부 우림에 내리는 비보다는 다소 약하고, 알-파티하의 모래 위에 흩뿌려지는 비보다는 거세다. 대장간 화로에서 불이 지펴진다. 폐허 인근 나무들이 물을 흡족히 빨아들인다. 땔감이 타오른다. 아그다가 죄인의 딸이었기에 거할 곳이 없다는 사실은 그의 풀무질을 늘상 신경질적으로 부추겼고 그는 그날도 거칠기 짝이 없게 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죄인의 딸은 죄인의 우미카와 업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하는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언제까지? 왜? 그렇게 그가 황폐한 생각 속에서 이 사회의 뿌리 깊은 ‘우미카’와 주변 이들을 태우고 부수고 욕하기에 이르렀을 때, “어?” 불길이 갑자기 커져 대장간 반쪽을 모조리 집어삼켰다. 불살라진 대장간에서 빠져나온 대장장이는 녹아내린 르타교 신상이며 무구들을 보며 차분히 말했다. 내가 너에게 식사를 잘 챙겨주지 않은 업이 이렇게 돌아오는 모양이구나. 기침이 연신 토해진다. 빗물을 맞으며, 아그다는 허공을 향해 풀무를 들어 올렸다. 바람이 빠져나온다. 빗줄기가 일부 역행한다. 한 번 더, 쉭, 물방울이 불티로 변한다. 명백한 법행이었다.이리하여 첫 번째 바람은 파괴를 낳았으며 사제 아그다라는 창조를 그 답으로 내놓았다. 마치 르타교의 교리처럼, 세상의 섭리처럼. 아이가 새된 목소리로 웃으며 거리로 뛰어간다. 몸짓이 춤추듯 가볍다. 그는 마을에서 성격이 그다지 좋지 않기로 유명했고, 대장장이는 아그다가 사람을 해칠까 두려워져 황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가난한 대장간, 나무로 만들어진 그 집을 불이 재로 화하게 한다. 그리 세상 속에 유지시킨다. 바람보다도 더 가볍게.

인상착의

그러니 어찌 아니 즐거울 수 있을까.


  머리띠가 흔들거린다. 불을 닮은 적색 머리카락, 짐승의 갈기처럼 생긴 뒷머리가 바람 중에 거칠게 흩날린다. 옛적보다 길이가 훨씬 더 길어졌다. 허리까지 떨어지는 머리카락의 일부는 때때로 - 타랑메나르의 등대지기가 묶고 다니던 것처럼 땋여져 있기도 했으며, 마가다와 자르부미의 부유한 이들 앞에 나설 때는 단정하게 정돈되어 금색 장신구에 꽂혀 있기도 했다. 현재는 그저 자유분방하게 풀어헤친 상태로, 콘스탄티노파 행이 완전히 결정되자마자 두피의 반절을 시원하게 바짝 깎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추측할 수 있을 만한 어떤 사소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그는 한 브라민의 7년 전을 떠올리며 심술궂게 웃었다. 


  뒷머리의 궤적이 만들어내는 모양새는 여전히, 시시각각 달라져서 그의 끔찍하게 변덕적인 성격 마냥 종잡을 수 없이 마구잡이로 흐트러진다. 머리 꼭대기 일부를 한층 더 붉게 염색했다. 시뻘건 염료를 골라내 하라데이의 가장 솜씨 좋은 이에게 맡긴다고 했던가. 평범한 신두인보다 다소 짙게 그을린 피부를 지녔으며 얼굴을 이루는 살갗 정가운데 - 즉, 코 위에, 알-파티하의 문양을 문신으로 새겨두었다. 앞머리 아래에는 문신의 색과 엇비슷한 금색 눈이 자리한다. 호리호리한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공중에 흔든다. 옷과 장신구를 제하고 본다면 그는 마치 땅, 또는 나무 위에 불꽃이 새빨갛게 붙어버린 듯한 형상이다. 불이야!


  이마를 장식하는 푸른 머리띠는 테레사를 지지하는 성기사들을 모방하기 위해 착용했다. 이제는 입지 못하는 흑색 성례의 대신일까. 금색 눈동자 아래의 진한 그림자가 피로와 함께 뭉개진다. 



부드럽게 웃고자 벌어졌던 입이 별안간 굳게 다물린다. 


  그리고 화마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초록색의 사제복이 몸을 감싼다. 이번 집결을 위해 제공받은 사제복을 제 취향대로 뜯어 고쳐 입었다. 허리의 금색 띠 아래에서 다리까지 이어지는 초록 천은 그 길이를 종아리까지 늘이고 끄트머리에 금으로 만든 장식을 호화스레 매달았다. 심지어, 표면에 마치 공작새가 떠오르는 듯한 금색 무늬를 솜씨 좋게 새겨놓았다. 와중에 몸 전체를 감싸는 천에는 비슈바카르마 각지의 수공예업자들로부터 ‘선물받은’ - 몇 개는 강도들에게서 강제로 빼앗아왔다나 뭐라나 - 각종 천을 이리저리 덧붙이고 기우고 이어두어 뭇 구도자의 의아함 어린 시선을 받고는 했다. 대표적으로, 오른쪽 어깨에 해당하는 부위에는 검은 천을 붉은 실로 박음질해두었다. 왜 그런 우스꽝스러운 차림을? “듣자 하니, 예니센이고 성기사들이고 다들 검정색을 좋아하는 눈치길래.” 이외에도 겹겹이 늘어진 천들과 더불어 썩 깔끔하지는 않은 차림새지만, 그 자신은 만족하는 눈치다. 


  갈색 신발은 짚과 엮어 발목에 단단히 고정하였으며 바지의 통은 평균보다 다소 넓다. 갈색 각반은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길이를 조금 줄이는 것으로 타협했다. 히죽, 기분 나쁘게 웃으며 당신을 본다. 이내 어머, 당신, 아직도…… 나보다는 옷 입는 감각이 부족한 모양이야, 제멋대로 중얼거린다. 옷가지들을 키와 덩치에 딱 맞게 갖춰 입는 편이며, 사바타가 지어준 베일, 안자가가 남는 천들을 조각조각 기워 만들어낸 숄, 두르슈리가 바느질한 망토 등, 지금도 그의 가방을 뒤져보면 그 천들이 어지러이 자리하며 그는 내킬 때마다 그 낡은 것들을 두르고 다녀 뭇 브라민의 걱정 어린 눈길을 받고는 했다. 곧 찢어질 것 같다며. 잘 좀 관리하지 그랬냐며. 


  아그다는 턱을 치켜 올리고 걷는 자세를 고수한다. 내려다보는 듯한 각도의 눈길을 자주 보내오며 체구는 마른 편이다. 뻔뻔한 말투가 다양한 언어 - 비슈바카르마에서 그가 사용하지 못하는 언어는 이제 없다고 보아도 된다. - 를 뚫고 문장마다 그 존재감을 거세게 세운다. 여유로우며 비웃음 섞인 미소, 머리카락을 넘기거나 삿대질할 때마다, 즉, 일상 중에 그 손짓을 통해 드러나는 우아함, 타인을 낮잡는 듯한 태도, 평소의 그는 교만을 형상화한 것만 같이 생겼다. 그러나 갑자기 표정을 지운다. 그저 가만히, 당신 곁의 허공을 노려본다. 그러나 갑자기 음울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갑자기 다정해진다. 부드러워진다. 그러나 별안간, 평소의 오만한 낯을 되찾는다. 그러나 갑자기 호의 섞인 몸짓을 이어간다. 춤이라도 추자는 듯이 잡아 끌던 손을 불현듯 거칠게 내친다. 그의 외견에는 여러 자세와 태도가 혼재되어 있다. 



비가 불이 되어 내린다. 불이 비가 되어 내린다. 


  그 다양한 낯을 만들어내는 얼굴은 면밀히 뜯어 보면 졸려 보이는 인상에 가깝다. 반만 뜬 듯이 눈꺼풀이 다소 내리감긴 눈매 때문에 그런 걸까. 치켜 올라간 굵은 눈썹은 - 이제는 좀 잘 보이는 편일까? 마른 뺨의 양옆, 양쪽 귀에는 치렁치렁한 금색 귀걸이를 매달고 다니는데, 누렇게 도색되어 있으나 순금은 아닌 듯하다. 한쪽 귀에 (제국산 몰약의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가문의 - 즉, 북두칠성과 닮은 오아시스에서 왔던 그이에게 받은) 가넷 귀걸이를 가공한 붉은 귀걸이를 매달고 다닌다. 코걸이와 빨간 귀걸이는 그의 소유 중 유이한 진품이다. 한편, 목과 손목에는 당신에게도 익숙할 금색 목걸이며 팔찌를 칭칭 둘렀다. 이 장신구들은 모두 금이 아니다. 그래도 그 밝음이 크게 퇴색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가 풀무질을 할 때마다 빛을 화려하게 반사하고는 한다. 여덟 개의 팔이 네 개의 풀무를 잡고 네 바람을 만들어낸다. 법력이 바람에서 비로, 비에서 불로, 또는 바람에서 불로, 불에서 비로 화한다. 오른팔의 거동이 다소 불편한 듯, 움직임에 부자연스러운 지연이 있다. 그를 아주 자세히 뜯어본다면, 머리와 목만 빼고 몸 전체에 흉터가 남았되 특히 오른팔에 집중적으로 상흔이 많았음을 눈치챌 수 있을 테다. 


  손에 들고 있던 풀무들을 발 옆 땅바닥에 꽂는다. 천자락들을 너풀거리며 앞으로 걸어간다. 법행으로 만들어두었던 팔들에서 팔찌를 뺀다. 법력을 거둔다. 팔처럼 기능하던 나뭇가지들이 옆구리에서 떨어진다. 양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린다. 불꽃이 비처럼 내려오는 하늘을 삿대질한다. 목을 젖힌다. 내내 미소를 머금던 입이 외침으로써 바람을 토해낸다. 표정을 지운다. 




  “모든 이는 다함께! 즐겁게 살아라!”

……취하기라도 한 걸까?

안면은 움직이지 않고

깔깔, 새된 목소리로 웃음을 줄줄 내뱉는다.

곧 배고프다며 배를 움켜잡았지만.


품행

[내 말을 / 들어라 / 다양하게 / 심술궂은]

풀무들을 북과 채라도 되는 양 솜씨 좋게 흔들며 실실 웃는다. 도적들에게서 빼앗아온 무기를 휘두른다.

모든 악기가 일제히 울린다. 

“당신, 먹을 건 있어?”

불의 신의 축일이 코앞이다. 비가 그치지 않아 큰일이지만,

모인 이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춤추며 절을 올릴 시간이다.




내 말을 / 자기중심적인, 탐욕스러운 나무가 뿌리를 염려한다. 

“뭐야?! 내 죄를 나한테 묻지 마. 그럴 시간에 가서 식사나 해.”

파괴를 자초하는 짓에 거리낌이 없다. 

  • 그걸 왜 나한테 따져? 묻는 목소리가 뻔뻔했다. 자기 잘못을 제때에 인정한 적이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잘못한 것도 네 탓, 내가 배를 곯는 건 신 탓, 내가 아픈 건 세상 탓, 제 성미가 그다지 썩 곱지 않은 건 전생 탓이었다. 
    • 전생의 내가 못된 인간이었던 걸 왜 내 탓을 해? 먹을 것이건 공예품이건 슬쩍 가져가다가 걸리면 관찰력이 좋은 상대에게 그 잘못을 돌렸다. “당신이 너무 귀가 밝아서 지금 우리 모두 기분이 나빠졌잖아! 나는 돌려줄 생각이었단 말이지…… 오늘이 끝난 뒤에 바로.” 헛소리였다. 
    • 그러나 커가며 보는 눈이 점점 많아짐에 따라, 체면치레를 챙기는 일이 아주 조금은 많아졌다. 
  • 타인을 배려하거나 그에게 베풀 기회가 생기면 무시했으며, 약자를 가소로이 여겼다. 누군가가 사기꾼에게 당한다면 그 피해자를 비웃었고 귀족에게 탄압당하는 이가 보이면 양쪽 모두를 조롱했다. 길에서 그 어깨로 사람들을 아무렇게나 밀치고 다녔다. 시비를 걸어오는 듯한 신경질적인 말투는 거의 늘 무례했다. 약탈, 갈취, 절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이익 등을 늘 반겼다. 
    • ‘나는 잘나서’ 하지 않는 선행을 ‘멍청한 너’는 자행하고, 그것을 내가 간혹 도와주기도 하니 너는 내게 마땅히 고마워해야 한다는 식의 논지를 자주 내세웠다. 그러나 실상은- 물질적인 선행이건 정신적인 수행이건, 중간에 끼어들어 훼방을 놓거나 가로채는 일이 잦았다. 
    • ……내가 말하는 것도 꽤 웃기다는 생각을 하긴 하는데 말이야, 사람들은 서로를 도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는 여전히 모순에 가득 차 있다. 
  • 한편으로 그는 이 같은 성정을, 그의 권력 있는 자들 앞에서는 철저히 감췄다. 어떻게든 눈밖에 나지 않고자 애쓰는 것인지, 비굴할 정도로 세심히 신경써 입을 다물고 웃음을 자제했다. 법행을 ‘우아하게’ 갈고 닦았다. 참선에 말없이 집중했다. 역설적으로 그는 법행에 상당히 능하며 ‘친절한’ 이가 되었다. 


신두에서 보내던 일상, 그는 그 평범한 생을 파(破)하고자 몸부림쳤다. 

불살라라, 너 자신을 위해!





들어라 / 오만방자한, 교만한 불이 안하무인을 제멋대로 인도한다. 

“귀족들이 나를 참 좋아해. 저 사람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지? 말 안 해도 알아.”

한층 더 오만해진 이가 음식이나 돈 좀 나눠달라며 손짓한다. 눈보라 속을 한참 걸어왔다나 뭐라나.

  • 화신이 영웅이 되는 걸까, 영웅이어서 화신이라 불리우는 걸까? 묻는 목소리가 작았다. 신두 왕국은 그 문화의 가짓수 만큼이나 신이 많다. 화신 또한 마찬가지다. 아그다는 종종 감히 신이 되고 싶노라 말해왔다. ‘브라민들은 열반에 다다르면 모든 업으로부터 해방되어 그 무한한 번뇌를 내려놓을 수 있다. 신이 될 수 있다.’ 그래, 그것이 그가 어려서부터 들어온 진리였다. 이와는 별개로, 그는 ‘무엇이건 가능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거칠게 흥분한 목소리로 토해내고는 했다. 자주. 
    • 그러니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해. 타인에게 명령조로 말하는 데에 익숙하고, 제 솜씨를 곧잘 뽐낸다. 상대가 자신과 어울려주지 않거나, 자신이 싫어하는 말을 하면 왜 나를 따라주지 않는 거냐며 성을 내는 일도 빈번하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 우미카, 그는 그것을 뼛속 깊이 비웃는다. 일부러 ‘상층민’처럼 말하고 행동해버릇한다. ‘나’를 높이라고 모든 타인에게 끊임없이 강요해댄다. 집착적으로 타인과 기존 질서의 위에 서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물론, 죄다 실패한 지 오래다. 여러 이유로 말이다. ……그런데 왜 아직도 그대로인 걸까? 
    • 더불어…… 아무리 건방지게 굴고 의무를 뻔뻔히 무시해대도, 동료 사제들이며 친해진 이들, 그리고 저 왕성과 저택에 앉아있는 이들을 언제나 이기며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 정말이지, 불합리해.” ……아그다의 꺾이지 않는 고집을 두고 한 사제는 이리 말했다. 저 완악한 자는 대관절 몇 년을 더 수행해야 하는 걸까? 
  • 이제 더는 ‘절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제 주장을 펼칠 때 나름 열심히 ‘논리’라는 걸 그럴싸하게 끌어오고자 노력한다. “어머, 나한테 절해주려고? 절해. 그리고 그 상태로 머리를 땅에 찧어. 왜 같은 인간에게 절을 하려는 건데? 부모한테도 그 허리를 숙이지 마! 내 신상한테는 하든가 말든가. 근데 할 거면 돈 내고 해.” 
  • 그는 법행을 다룰 때, 효율 측면에서의 이로움도 있지만 그 자신의 오만을 위해 제 팔을 몇 쌍 더 만들어내기도 하는 모양이다. 숱한 신상들이 그들의 신들은 팔이 많다고 증거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모방하여. 
    • 신상을 많이 빚어냈다. 그 신상을 들고 다니며 그는 씩 웃었다. 묻기를, “절할래?” 손에 쥔 신의 자그마한 형상을 살살 흔드는 건 덤이었다. 이전과의 차이점은 ‘절을 할 거면 내게 일단 돈을 바치고 하라’는 것이었다. 훨씬 더 사기꾼 같아졌다. 
  • 한편, 그는 여전히 이 같은 성정을 신두의 권력 있는 자들 앞에서는 철저히 감췄다. 



타인의 ‘아그다 느부라마나자’에 대한 인정을 갈구한다. 그것이 그를 유지하므로.

비를 역행시키며.





다양하게 / 변덕, 변칙, 변화, 그는 빗물이 섞여 만들어진 잿물을 옷에 흩뿌렸다.  

“도와줘? 내가 또…… 재주가 좀 많잖아.” 

으스대는 말투였으나, 사뭇 다정하게 말했던가.

  • 빗방울 하나하나는 같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묻는 목소리가 피곤에 찌들어 있다. 그는 사람들의 다양한 성격과 언행을 아낀다. 질서와 규칙보다는 자유로운 혼란과 혼돈을 좋아했으며, 전쟁으로 인한 구속보다는 축제의 춤판이 비슈바카르마에 가득하길 바랐다. 당신이 더 마음껏 살 수 있도록, 그로 인해 자신도 바람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주변 이들을 부추기길 좋아하는 성미는 변하지 않았다. 불난 데 부채질이 아니라, 풀무질을 해버리기 일쑤였다. 다만, 당신의 삶에 대해 논하는 자세는 조금 덜 요란해졌다. “당신의 삶에 대해 더 들려줘. ……싫어? 왜? 어째서!”
  • 타인의 다면적인 - 모종의, 복합성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것과 동시에, 그는 혼재된 옷차림 만큼이나 정신 없는 태도 변화를 늘상 보여왔다. 
    • 뻔뻔스레 친절하기도 했다가 (“그래그래, 나 빼고 또 누가 당신을 챙겨주겠어…….”)
    • 바로 태도를 바꾸어 평소의 심술궂은 어투를 내보였으며 (“나를 그렇게 못 믿는다니! 내가 꺼져줘야 하겠어, 그렇지? 응? 나 따위가 준 음식도 맛있을 리가 없을 테니 도로 가져가고. 사과하면 용서는 해주겠어.”)
    • 우울하게 입을 딱 다물고 있기도 했다. (“……나쁜 작자 같으니…….”)
    • 이 뿐이면 좋을 텐데, 온갖 기행을 종류를 가리지 않고 시도해대는 다양한 면모 또한 마가다와 자르부미 이외의 지역에서는 바람 잘 날 없이 그대로였다. 신경질적으로 숱한 이변들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갔으며,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볼 기회가 있으면 모험을 망설이지 않는다. 낯선 사람들과의 인연, 위험한 개척, 마법 연구, 정치적인 줄타기, 남 골탕먹이기, 사원 지붕 날려먹기, 싸우기, 양배추로 괴식 만들어 먹기 등등…… 당신이 만약 인생을 조금 위태롭게 바꿔보고 싶다면 그와 잠시 동행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 그는 그가 무엇이건 될 수 있는 존재인 것 마냥 행동한다. 하지만 이 같은 성정을 신두의 권력 있는 자들 앞에서는 철저히 감췄다. “오셨습니까? 저와 함께 들어가시죠. 아, 자네……. 그건 거기에 놓아두어도 된다네.” 정치 세력의 환심을 사고자 노력하는 이 종교인은 제국의 어떤 부유한 이를 따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말투가 예스러웠던, 돈이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던 그 사람을. “뭘 봐?” 물론, 당신 앞에서는 여전히 귓구멍이나 파고 있지만. 



춤추듯 몸을 돌린다. 강한 바람과 적색 머리카락 아래에 다시금 심술궂은 표정이 떠오른다.

아그다로서 모순되게

순환하는 화우(火雨) 속에 가지를 뻗어라.






누군가가 외쳐 묻는 목소리에 경쾌하게 답한다.

“그간 지은 업이 많아? 더 쌓아!”

코웃음친다. 기득권, 그들의 암묵적인 전략, 그들의 지위, 제 처지, 이 모든 게 그는 역겨웠다. 

불 붙은 낙엽이 흐느적거리듯 신상 앞에 과장되게 엎드린다.

그 몸짓에는 단 한 점의 거리낌도 엿보이지 않는다.


이야기

장대비 아래에서 잔해를 태운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쳐 어깨 너머로 넘긴다. 

몇 번째인지 모를 동작을 되풀이한다. 끝없이.




신 / 태어나다

“성국 사람들을 보며 내가 깨달은 게 있어. 국적보다는 힘이 제일이다.” 

과거를 논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다. 

 

  • 다섯 번째 바람: 그는 고향에 가지 않은 지 몇 년이 지났는지 세다가 포기했다. 느부라마나자 일가는 아그다가 불의 신만큼 불멸하길 바랐다. 아그다는 자신이 가을에 태어난 마을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남쪽으로는 마을에 딱 달라붙은 산맥이 그 서늘한 기운을 흘려대고, 비스듬히 북서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 바다가 어렴풋이 보이는 황폐한 산골 마을이었어. 당신,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기는 해? 뭐… 하여간, 산에 반 걸쳐져 있고 그 아래쪽 평지 아닌 평지에 반 정도 걸친 내 고장에서 내가 주로 가던 곳은 마을 꼭대기의 사원이었어. 거기에서 내가 태어났다고 했거든, 우리 아빠가.” 사원으로부터 대각선으로 비탈길을 쭉 따라가노라면 마을의 죄인들이 갇힌 감옥이 나왔다. 

    • 마을: 데바살라야 산맥 북서부 끄트머리, 신의 거처의 끝 중의 끝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산 두어 개를 넘어가면 캄발라에 들어서게 된다는 점이 그나마 특징적인. 그럴듯한 행정적 지원은 전무했으나 당시 아그다의 걸음으로 이틀 정도 걸어가면 지방행정관이 기거하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긴 했다. “비가 자주 오는 편은 아니었어. 어디까지나 신두 남부 기준으로. 시르쉬, 그러니까, 북부 기준으로는 - ……당신이 알아오는 건 어떻겠어. 귀찮아졌단 말이지.” 

    • 사원: 르타교의 세 주신 중 파괴를 관장하는 신을 모시는 대중적인 - 그리고 아주 작은, 늙은 사제 한 명이 하품하며 자리를 지키는 사원이었다. 그는 명상을 핑계로 아그다가 사원에서 자고 가건 음식을 먹건 신경쓰지 않았고, 그렇게 사원은 아그다의 가장 그럴듯한 집 중 하나가 되었다. 

    • 출생: 지금도 아버지가 살아있긴 할지…… 아그다는 따로 소식을 알아보지 않았다. 행보에 방해가 되면 됐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듯해 더더욱. 그는 바리였으며, 22년 전 친구였던 바리를 그의 무구로 살해한 뒤 자수했다. 그가 청한 형벌은 고향 마을의 감옥에 영원히 투옥되는 것이었고, 당시 지역을 관리하던 행정관은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같은 해 행상인이었던 모친이 신두 남부 지역에서 때 아닌 폭풍에 휘말려 사망했다. 그 무렵부터 ‘이변’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음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 되었으나, 신두 왕국 전역에 흔한 자연현상이 그의 죽음의 원인이었노라 - 22년 전의 느부라마나자 일가는 유해와 함께 전해 들었다. 그 뒤로 5살이 될 때까지 아그다는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조모가 타계한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며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 가족: 잡담을 나눌 때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당신이 만약 그와 해당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다면, 아비를 매우 싫어한다는 것, 전생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업과 윤회에 대해 논할 때면 비웃음 섞인 낯이 된다는 것 등을 쉬이 알 수 있으리라. 

  • 여섯 번째 바람: 마을의 소식을 듣지 못한 것도 꽤 오래되었다. 일부러 알아보지 않는 것은 아니고, 일종의 두려움이 있는 모양. 마을 사람들은 그가 배를 심하게 곯길 바라지 않았다. 영유아가 쉬이 살아남을 수 없는 마을이었지만 어려서부터 기운이 참 거셌던 이 아이는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믿었고, 그래서 음식과 옷을 나눠주었다. 기도를 올리며 말을 가르쳤다. “다 망했으면 어떡해? 다 떠났으면 차라리 다행이지, 굶어 죽었으면 어떡해?” 

    • 폐허: 과거에는 산맥을 건너오는 사람들을 위한 휴식처가 든든하게 마련된 마을이었다. 여행객, 사제, 상인 등이 마을을 자주 오갔고 역사가 변함에 따라 마을 또한 쇠퇴했다. 지금은 산장의 낡은 터와 시장의 돌바닥만이 쓸쓸하게 평지로 이어진다. 

    • 아이: 아그다보다 나이가 많은 두 아이가 마을에 있었다. 그들은 셋이서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허드렛일을 도왔고 마을의 공동 육아 속에서 남매로 자랐다. 

      • “내 친구들? 아, 걔네? 가족 같이 잘 지냈지. 그런데 옛적에 죽었어. 말 나온 김에, 당신 나랑 꽃이나 꺾으러 갈래?” - 하라데이, 이름 모를 주민의 장례식에서, 아그다 느부라마나자曰. 

    • 방언: 당신이 만약 그와 말을 섞어 보았다면, 당신이 어느 곳에서 왔든지 쉬이 알아차릴 수 있었으리라. 그는 말씨에 방언이 세게 묻어나온다. 사라시어와 신두어를 말할 때도, 성국의 언어를 말할 때도. 다만 특이한 점은 방언이 신두 북서부에 한정되지 않고 이곳저곳 뒤섞여 있다는 점인데 그가 흘린 이런저런 정보를 모아보면 - 그는 어릴 적에도, 신학교의 수확철에도, 최근에도 여러 곳을 떠돌며 살아온 모양이다. 그러나 동행인이 있었던 적은 손에 꼽았으며 그가 이야기를 가장 많이 꺼내는 동행인들은 그 남매, 사바타와 두르슈리 뿐이다. 마가다와 자르부미에서는 되도록 정석적인 어휘를 구사하고자 노력한다. 높으신 분들이 그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 대장간: 아그다가 홀랑 태워먹으며 징조를 깨우친 그 대장간은 아그다의 나이 14살 때 르타교 사제들의 지원으로 복구되었다. 

  • 일곱 번째 바람: 하라데이로 떠났다. 그는 우기에는 왕국 이곳저곳을 활보하며 이변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쓴다. 주로 활동하는 지역은 캄발라와 하라데이 일대이며 하라데이의 사원에 적을 둔다. 건기에는 마가다나 자르부미 중심 도시의 권력자들과 어울린다. 그러나, 그 자신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라고 분류하는 건 또 아닌 모양이다. 

    • 호신: 딱 봐도 화려해 보이는, 그리고 홀로 다니는 브라민을 노리는 도적은 많았다. 형편 없이 말라 보였으므로 더더욱. 그런 이들에게는 평균 5개의 칼날이 날아들고는 했는데…… “매번 검술 연무장에 틀어박혀 있던 그 인간들이랑 싸우면, 내가 몇 분이나 버틸 수 있을지 날이 가면 갈수록 궁금해지고 있어.” 

    • 이동: 자르부미에서 하라데이까지 오고 가려면, 산맥을 통과하건 배로 가건 왕복 300일~400일 정도가 걸린다. 이에, 아그다는 걸어가면 40일 정도 걸리는 거리를 단번에 이동하는 법행에 본의 아니게 능숙해졌다. 다만… 이 법행은 한 번 사용하면 사흘 정도는 꼼짝 않고 걷기만 해야 하는 부작용이 있으며, 동행인이 있을 시 이동 가능한 거리가 ‘40일 거리’가 ‘20일 거리’로 줄어드는 정직한 면모 또한 지닌다. 

    • 14살 가을, 시르쉬의 어느 르타교 사원에 정식으로 입적한다. 그 해 여름 어떤 만트리의 곳간과 저택의 3분지2가 불에 송두리째 탔다는 소문을 만약 당신 또한 신두 북부에 있었다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 여덟 번째 바람: 캄발라 사람들을 그 지역 안에서 최대한 빼내오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신두 사람들의 성미를 잘 알기에, 거주민들을 최대한 지원하는 것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하라데이~캄발라 지역에 산재한 광석을 틈날 때마다 주워와 사원의 창고에 쌓아둔다. 만일을 대비해 광석들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성국과 제국의 연구자들이 왕국에 올 때마다 슬쩍슬쩍, 당신의 소식을 묻고는 했다. 

 

신두에서 보내던 일상, 그는 딱히 비범하지 않은 생을 살아왔다. 출세를 했는가, 집을 구했는가, 토지를 샀는가, 무엇을 했는가……. 관직조차 얻지 못하고 그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브라민이 되었을 뿐이다. 

지난 7년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인간 / 의무와 업을 쌓다 

“내가 꾼 꿈과 그 해석을 맞혀볼래? 해석만 맞히는 게 아니라, 꿈까지- 죄다. 어머, 자신 없어? 왜!” 

그의 현재보다는, 당신이 어제 꾼 꿈이 차라리 더 정돈되어 있을 테다.  

 

  • 다섯 번째 꿈: 1393년, 대공의회가 와해된 이후 자르부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베파트해로 향했다.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데 한 번 보고 오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냐며. 듣기로는 얼마 가지도 못하고 배가 난파되어 선원들과 함께 헤엄쳐 돌아왔다고. “……전원 생환했잖아. 그러면 된 거지, 뭐…….” 그는 세계로부터 분리되지 못한 일개 인간 하나일 뿐이다. 

    • 1394년: 신두의 마하라자는 성국 그리고 제국과 무역을 계속해왔다. 당신, 혹시 성국 또는 제국의 항구에서 법행으로 잘 감춰두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지는 행인을 본 적은 없는가. 그는 밀항한 브라민이자 - 카엘룸인, 또는 신두인이었다. 헤자즈어는 아직 완벽히 익히지 못해 제국 사람인 척은 도무지 시도하지 못했다나 뭐라나……. 

    • 1395년: 마하라자의 내부 도로 정비 공사가 시작되며, 그는 성국과 제국의 이들을 점점 잊어갔다. 당신의 호불호에 대한 기억보다는 땅을 파내다가 쓰러진 이가 당장 먹을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더 중요했다. 그는 변동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건기에 보고했으나, 이듬해 우기, 그다지 변하지 않은 실정에 실성한 듯이 웃어댔다. 

    • 1397년: 독립 전쟁의 소식을 듣고 예니센들을 걱정하였으나, 캄발라 근처에서 사자에게 오른팔을 크게 다쳤다. 당시 발생한 이변(폭풍)과 저체온증 등으로 인해 기절, 응급처치가 늦어 팔을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무리 법행에 더 능숙해졌다 하더라도 그는 치료와 관련된 법력의 운용에는 상대적으로 미숙했고 인체의 구조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적었다. 거동은 가능하지만 잔떨림, 경직, 동작의 지연 등이 발견된다. 다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팔을 여러 개 제작해내는 법행에는 능했다. 일상생활 중에 아주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 1398년: 만약 그를 이때 만났다면, 술을 앞에 두고 ‘나라를 타아카트 광산으로 쓰는 건 정말이지 반겨주질 못하겠는 사고방식인데…….’라고 중얼거리는 왕국인이자 캄발라의 사제를 볼 수 있었을 테다. 과도한 혼란은 죽음이라는 질서를 낳는 법이기에. 

    • 1400년: 점점 침체되던 낯을 펴고 콘스탄티노파로 즐겁게 달려갔다. 

    • 전반적인 생활: 그는 하라데이의 다양한 언어 사용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욕설을 가장 먼저 배웠다. 행인이 성미 더럽고 괴팍한 사제를 찾노라 말하면, 하라데이의 모두가 그 행인을 아그다에게 잘 안내해주었다. 바람 잘 날 없는 지역에서 바람 잘 날 없는 성질로 잘 살아온 모양. 최근에는 상단들이 점차 적게 오는 것을 불만스레 여기고 있었다. 

    • 전반적인 사교: 귀족이 우아하고 친절한 사제를 찾노라 말하면, 사원의 사제들은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그를 아그다에게 잘 인도해주었다. 그는 이제 언행을 나름 ‘잘’ 다듬는다. 

    • 전반적인 설법: ‘변동’이 발생한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리고 높으신 이들과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일반 국민의 다양한 교육의 기회 보장, 시르쉬와 캄발라 지역 지원 확대, 자아 개념의 개혁, 가변적이고 유연한 공동체, 계급의 타파, 신과 윤회, 가족과 우미카로부터 자유로운 ‘나’의 재구성, 생득적인 역할의 파괴, 해탈 개념의 재정립, 이기심과 탐욕의 장려 등 - 을 간접적으로 주장하고 다니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그의 활동은 창조, 파괴, 유지 중 파괴에 극단적으로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 여섯 번째 꿈 

    • 재산: 금은보화는 물론이요 3국의 온갖 화폐를 긁어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재물을 탐할 ‘안전한’ 기회가 눈에 들어오면 바로 손이 나간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선물’을 늘상 요구하고 있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나 그거 줘.”와 같이 불쑥 말한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직접 만든 장신구나 공예품, 신상 등을 내밀며 물물교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 긁어모은 돈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에 대해 그는 마가다와 자르부미 방향을 가리켜 보이고는 했다. 가끔은 캄발라 방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 그는 뱀과 공예품들을 좋아한다. 이제는 신상들을 꼴도 보기 싫어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기에 자주 만들어내는 듯하다. 사적 자금이 궁할 때면 직물들을 팔고 오기도 했다. 혹은…… 다른 비밀스러운 수단을 사용하거나. 

  • 일곱 번째 꿈: 나무는 왜 불에 타는가? 물은 왜 불이 될 수 없는가? 인간은 왜 팔의 개수를 자유자재로 늘리고 돈을 창조해낼 수 없는가? 사람은 왜 죽는가? 우미카와 윤회로부터 자유로운 왕국을 꿈꾸는 것은 반역인가? 

    • 풀무: 그는 풀무 열 몇 개를 짐가방에 넣어 왔다. 주로 들고 다니는 건 허벅지 어드메에서 흔들거리는 - 허리의 가죽 끈으로 매단 갈색의 풀무 네 개다. 만약 당신이 이 풀무를 만져봤다면 - 매우 가벼우며 재료의 소재가 그다지 썩 좋지는 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으리라. 대공의회 시절보다도 더한 경량화를 거쳤다. 

    • 법행: 세상의 근원과 이치에 닿고자 발버둥친다. 동시에, 관심이 없다는 양 군다. 

      • 습관: 우기는 그의 계절이다. 풀무를 하늘로 향한 채 바람을 불어넣는다. 구름을 흔들어 불로 만든 비를 땅에 쏟아붓는다. 물방울을 불씨로 바꾼다. 평범한 비보다는, 불꽃으로 만든 호우가 더 멋지다며 주장하며 - 취향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 실상: 변환, 붕괴, 분해, 폭발, 살생 등 무언가를 바꾸거나 없애는 데에는 능하지만… 대공의회 시절, 눈치챘을까, 그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법행은 쉽사리 잘 시도하지 않는다. 직접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 여덟 번째 꿈: 지금도 춤을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불쑥불쑥 악기를 연주해달라거나 노래를 해달라며 청한 - 명령한 - 적이 많았다. 배워보고자 하는 생각은 있었던 듯하나…… 글쎄, 성질머리가 급해 죄다 학습 도중에 그만뒀다는 모양이다. 

    • 호불호: 호 - 향이 강한 음식, 화려한 색감이나 무늬, 비 오는 날, 숲, 돈 등 | 불호 - 귀족, 화재, 민무늬, 강요, 잔소리, 등등 …… 너무 많다.

    • 브라민: 만약 당신이 그간 신두에서 그를 본 적이 있었다면, 당신은 그가 평소에 ‘조각나고 바느질한, 화려한 패턴의’ 옷을 선호하는 취향이 있음을 알 가능성이 높다. 물론, 수입한 옷가지며 시르쉬와 마가다 등 각지의 의복들을 마구잡이로 섞어 입은 적이 많다는 것도. 하루는 카엘루마 사람처럼 보이고, 또 다른 하루는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차림새였다가, 또 어떤 날에는 한 장의 천으로 이루어진 평범한 옷을 걸친다. 종합하자면, 우기와 건기의 그는 어깨 위에 복잡한 패턴의 초록색 천을 길게 걸치는 것 외에는 딱히 브라민다워 보이지 않았다. 

    • 호칭: 많은 형태로 불릴수록 더 많이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당신이 무어라 부르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 최근: 근래 반복해 꾸는 어떤 꿈이 있는 모양이다. 누군가가 말한 대로, 예지몽일까? 

 

결국 타인과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를 유지하므로.

꿈을 불태우며. 





영웅 / 서사시를 쓰고 듣는다 

“이변을 해결하는 난세의 영웅은 과연 누가 될까? 테레사? 하하! ……그 누구도 될 수 없을 거야, 그런 건.”

건방진 지칭, 그리고 삐딱한 미래를 제멋대로 예언한다. 

 

  • 세 번째 불: 이변을 종식하고자 늘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지만, 점점 지쳐가는 듯하다. 

    • ……또 무슨 일이 일어났대? 앞으로 어떤 이변이 더 발생할까. 제국과 성국은 또 무슨 짓을 저지를까……. 피해가 큰 지역을 원래대로 돌려낼 방안은 - 아, 그래, 우리가 알아내러 가야 하지? 가자고. 

  • 네 번째 불: 세계의 역사에 아그다 느부라마나자가 개입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자존심으로 감출 수 없는 환멸감과 초조함이 노골적으로 엿보인다. 

    • 불씨: 이변도, 계승도 모두 세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불씨라고 볼 수 있다. 파괴와 창조는 뒤섞여 존재한다. 뱀이 허물을 끊임없이 벗듯이. 바람직한 수행자라면 그러한 ‘자연적인’ 일에 자신의 개인적인 바람을 섞는 행위를 꺼려해야 할 테지만 - 

    • 아그다: 정치, 전쟁, 통치 등과 관련된 세속적인 소식을 아주 깊이 탐구한다. 

    • 화장: 딱 한 번, 떠돌아다니던 중에 마을의 갓 태어난 아이의 이마를 만진 적이 있다. 딱 두 번, 결혼식을 법력으로 축복해준 적이 있다. 여러 번, 죽은 이를 우주 속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그 관습을 우스꽝스럽다고 여기며 제 능력은 이런 사소한 일에 낭비되지 말아야 한다고 꿍시렁댔지만, 풀무불을 만들어낼 기회를 거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 소지품: 법행에 필요한 여타 장비들을 제하고도 허리춤, 즉, 초록색 사리로 감춰지는 부분에 주머니를 하나 매달아놓았다. 그 안에는 더 작은 백색 주머니 하나와 여분의 모후르가 들어 있다. 

  • 바람: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던가. 그는 제 바람이 신두의 나무와 모래 - 그는 어떤 비크람을 신두의 사막에 데려가보고 싶다는 꿈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 에 스치는 모든 이변을 종식시킬 수 있길 바란다. 그래야 이 - 엉망인 지역이 좀 사람 살기 좋게 변할 테니까. 사람들이 다양한 삶을 살아갈 테니까. 저 또한 그렇게 살 수 있을 테니까! 지붕 위에 쌓인 눈을 기함하며 털어낸다.  

 

그의 오늘을 위해 타오른다.

“아그다 느부라마나자의 다음 생은 없어. 으하하하!”

순환하는 업과 징벌이 불의 고리를 이룬다.



콘스탄티노파,

허리를 젖힌 채 

안면은 움직이지 않고 깔깔, 세찬 웃음을 줄줄 내뱉는다. 

동료를 발견하고 인사 차원에서 빗물을 끼얹는다.

지금도 같은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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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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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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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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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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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VENTORY


STORY

  • 멜키오레 곤차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하여, 위대한 자는 답해주지 않는다. 곤차가를 풀무로 겨누면 어떻게 될까? 멜키오레 곤차가는 팔을 내어‘주었고,’ 아그다의 풀무불에 징조 없이 장작을 던져넣어 ‘주었다.’ 느부라마나자는 그 답을 들으며 멜키오레가 간파한 철자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그 팔에 새겨 넣었다. 언젠가 돌아와, 완성해‘주겠노라’ 다짐하며. 여기에서 뭇 학자는 물을 테다. ‘나’의 완성은 무엇을 뜻하는가? 아그다가 속으로 그림을 그려본다. 멜키오레의 알쏭달쏭한 뱀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완성된 자였을까? 어린 멜키오레를 붙들고 신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지던 – 그래, 그 재수 없는 신학자처럼 궁금한 점이 많았을 것 아닌가. 학자라면 말이다. -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판자 위에 새긴 잘난 이의 형상을 모닥불에 던져 넣는다. 옆에서 하라데이의 사람이 묻는다. 장례식은 내일 거행하기로 했다네. 준비는 되었는가? 아그다가 답한다. 쓰러지기 직전인 저 집들만큼이나. 캄발라에서 온 이가 묻는다. 이 땅이 모두 불타면 무엇이 남을까요? 르타의 사람들이 답한다. 내가 남소. 1400년, 허무한 문장들과 해석을 밟고 선다. 흥미만이 불이 되어 누군가를 불태울 준비를 시작한다. 7년간 알게 모르게 기대하고 기다려온, 전능한 자를 노리며.
  • 샤키라 빈트 라시드 빈 달랄 알 미르자데

    배가 아프지 않겠는가? 안 그래도 나라 안팎으로 소란스러운 때에, 부유하고 콧대 높으며 똑똑한, 그리고 2년이나 보고 지내 그 성정이 어떤지도 서로 잘 아는 – 어떤 ‘친구’가 저는 그 가치를 알아보지도 못했던 아주 좋은 숲을 사들였다면. 그것도, 그 친구가 외국의 다른 이에게나 충성하지, 아그다 자신이나 그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헌신적인 사람도 아니라면, 더더욱.
    배가 아프지 않겠는가? 앞에서 친근하게 굴고 그가 등을 돌려 집으로 떠나간 순간 그의 숲을 태워버리면.
    그래서 아그다 느부라마나자는 1395년, 쌓여 있던 짜증과 화를 풀 겸, 배도 아픈 겸, 샤키라가 지닌 침향목 우림의 반의 반절 정도에 불을 질렀다. 그 뒤 미르자데의 반응을 살피다가, 이제 5년이나 지났으니 더 태워볼 때가 됐다 – 싶었는데……
    1400년, 2차 대공의회 집결을 위해, 그리고 샤키라의 표정을 보기 위해 그는 즐겁게 콘스탄티노파로 향했다. 곧 제 배가 얼마나 아파질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 에리다누스 아케르나르

    우연은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운명? 업? 다음 생의 인연? 아그다는 그 모두를 부정한다. 우연이라는 전제 또한 거부한다. 당신과의 만남은 내가 의도하였기에, 특히, 저번 만남은 '내가' 밀항하여 밀라나로 향했기에 이루어졌다. 당신이 나를 알아차린 것은 내가 내 말씨를 구태여 꾸미지 않았기 때문임을 당신 또한 안다. 제멋대로 허공에 외친다. 재수 없는 작자! 어떻게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 수가 있지?! 파도가 철썩거리며 고함을 먹어치운다.
    아그다 느부라마나자는 에리다누스 아케르나르가 일전에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던 미래를 실현에 옮기고자 밀라나로 발걸음을 옮겼다. 결과적으로, 아그다는 에리다누스의 예상과는 달리 그의 고향, 멘톤 마을에 몰래 가는 것에 성공하였으며 1394년의 적금색 머리카락과 깃털, 멘톤 마을의 얇은 돌을 갈취해 1400년의 갈색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다. 이것들은 정량적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성직자의 고집을 꺾는 데에는 실패했다. 다시 기술하자면, 그는 홀로 돌아가고 있다. 어디로? 미래로. 이 사실은 아그다에게 있어, 에리다누스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미래, 루치 앞에 솔직한 당신은 또 나를 혼자 보낼까? 여전히 사이에 유리를 둔 듯한 구분을 둘까. 오기로 똘똘 뭉친 시선이 경계선을 녹여내고 깨버릴 기회를 노린다.
  • 자르갈

    자르부미, 다른 말로는 시르쉬. 그곳에서 어떤 만트리의 곳간이 불탔다. 그리고 자르부미의 어떤 골목에서 아그다는 어떤 이와 어깨를 부딪쳤다. 뛰고 또 뛰어 화재 현장으로부터 벗어나던 중에 생긴 일이었다. “불이야!” 외치는 소리에 상대가 제가 아닌 불에 신경이 쏠렸음을 – 확인했던가, 아니던가……. 당시의 기억은 아그다에게 있어서도 정신없는 연기와 바람과 불에 휩싸여 있어 확실치 않다.
    스쳐지나가듯 이루어진 첫 만남 이후, 대공의회 선발 당시, 한 가지가 아그다의 머릿속에서만 명확해졌다. 상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당신을 기억한다. 이것은 처음인가 두 번째인가? 자르갈은 자르부미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 나름 반가운 - 친구이지만, 동시에 그때 부딪친 어깨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 존재로서 현재에 자리 잡는다. 이것도 전생의 업이 만들어낸 흐름 중 하나인 걸까? 같지만 다른 우미카를 아그다가 풀무를 들고 바라본다.

    7년, 우리는 같지만 다른 땅에서 어떤 교감을 이루었던가 – 아그다가 하라데이의 호우에 시달리며 분을 터뜨린다. 방금 들을 수 있었던 어떤 소문 때문이었다. 글쎄, 여러 언어에 대한 해박한 이해 덕에 마가다의 마하라자께 부름을 받기도 했던 어떤 브라민이 하라데이의 아그다에 대해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다지 않나. 물론, 이는 와전된 소문이며 자르갈이 제 부탁을 잘 들어주었으리라 아그다는 믿었다. 당신, 내가 멋진 사람이라고 잘 퍼뜨려주고 있는 거지? 베파트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항상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카흐나, 다른 말로는 데바살라야 산맥의 한가운데, 홍수가 불을 먹어치운다. 생명을 휩쓸어간다. 아그다는 그곳에서 마주친 미적지근한 어떤 브라민이 반가운 동시에 싫었다. 왜 하필 얘야? 의견을 부딪치고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고 또 뛰고 – 이제는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몇 번째일지 모를 대화를 나눈다. 살아갈 마땅한 장소가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둘은 잘 알았다. 각자의 우미카가 무어라 호통을 치건, 카흐나의 사람들은 터전을 떠나 근처 괜찮은 곳 – 아그다는 제 사심을 담아, 하라데이를 추천했다. 지지자가 늘어날 것 아닌가……. - 에 집을 지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같지만 다른 땅에서 어떤 동료로서 살아가는가.
    아그다가 풀무를 흔들어 불을 일으킨다. “알 게 뭐야! 다 태워버리면 끝나는 일인데. 걸리적거리면 당신 꽁무니에도 불붙여버릴 줄 알아!” 자르갈은 동의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정말이지.
  • 브리하날라 나로탐 스리바스타바

    세상 모든 브라민 가운데 가장 먼저 만난 브라민, 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법행을 다룰 줄 아는 브라민 중에서는 가장 처음 된 자가 맞다. 그리고 ‘계속 신경 거슬리게 굴고 싶은’ 사람이라는 말도 …… 맞는 듯하다. 아그다에게 그렇게 느껴지지 아니하는 자가 대체 누구 있겠냐 싶지만, 브리하날라는 그중에서 으뜸이다.
    첫 만남은 아그다가 의남매 둘과 함께 방랑 생활을 하던 중에 이루어졌다. 슈웨타란야로 향하던 길이었다. 어떤 초록색 옷 두 개와 프라티크샤의 옷 하나, 즉, 아그다에게는 다소 달갑지 않은 일행과 길이 겹친 어떤 날, 특별하지 않은 사건, 늘 그래왔듯 덤덤한 신두의 일상. 그런데 갑작스러운 이변으로 인해 길을 원만히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산사태로 좁아진 길 위로 밤이 다가온다. 누가 봐도 가장 현명한 선택지는 야영이었으며 아그다 느부라마나자는 일행을 이끌고 평소처럼 땅에 몸을 던지고자 했다. 그때 법행이 시야에 들어섰다. 초록 옷의 누군가가 불을 지피고 자리를 정돈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그다는 그 사람을 눈에 똑바로 담았고 모닥불을 향해 돌진했다. 상대 일행 중 어른에 해당하는 브라민이 브라민의 의무니 역할이니 뭐라 말하며 귀를 아프게 했지만, 그는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브리하날라를 빤히 보다가 묻길, 음식을 달라. 음식을 손에 넣은 뒤로는 또 묻길, 또 말을 붙이길, 앞과 옆과 뒤에서 어지러이 괴롭혀대길, 너는 누구냐. “이봐. 당신 눈에는 내가 어때 보여?” 어때, 나는 누구인가. 그는 슈웨타란야에 도달해 일행 사이 길이 갈라질 때 브리하날라에게 풀무로 바람을 불어넣은 그 순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묻고 있다. 네 눈에 나는 무엇으로 보이지?
    시간은 르타교에서 말하듯 끝없이 흐른다. 대공의회에서 아그다가 브리하날라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음으로 함축된다. 계속 거슬리게 굴고 싶어지는 ‘브라민.' 과연 이 둘의 길이 언제까지 겹치고 갈라질지…… 그는 제멋대로 궁금해 한다.

    시간은 르타교에서 말하듯 끝없이 흐른다. 과연 우리의 길이 언제까지 겹치고 갈라질지…… 삶을 방랑하는 그는 제멋대로 궁금해 한다. 7년, 그리고 오늘이 지나가는 내일까지도. 2차 대공의회에서 아그다가 브리하날라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음으로 일축된다. “내가 신경 쓰이지? 어때, 이제 네 눈에는 내가 어떤 이로 보이지?” 당신이 이쪽을 보지 않는다면, 다시 멱살을 잡아 끌어오면 된다는 마음이 이 브라민의 마음 어딘가에 자리한다.
    아그다가 브리하날라를 자주 보고 싶어 하는 실로 이기적인 욕심과는 별개로, 브리하날라가 아그다에게 이야기를 잘 내어주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둘은 나름 가까운 사이의 브라민‘들’이다. ……라고, 아그다는 생각한다. “걔가 내 팔도 치료해줬다니까! 실력은 나랑 거의 비슷한지 별로 달라진 점은 없었지만. 표정에 고생이 다 드러나면서 칸찰로차나나 스리바스타바에 대한 이야기라고는 거의 한 줄도 해주지 않았지만.” 거짓말이었으며, 그는 나로탐의 이름을 기억했고 첸나이 부근에서 브리하날라를 마주친 뒤로 오른팔의 상태가 조금은 나아졌노라 회고했다. 누군가는 슈웨타란야로 향하던 길이었다. 1397년, 아그다에게는 다소 달갑지 않은 여정이었고 특별하지 않은 변동이자, 늘 그래왔듯 덤덤한 신두의 일상이었다. 누군가는, 어지럽던 정신에 퍼뜩, 낯익은 질문을 끼워 넣을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누구인가? 초록색 인사 둘이 첸나이에 들어선다. 아그다가 브리하날라의 여비를 손으로 튕기며 미소 짓는다.
    “오늘은 너 자신에게 절하는 하루가 되길 바랄게, 친구.” 이 말에 답하는 상대를 보지 않고, 유황불을 일으키고자 브라민은 사구를 향해 뛰어갔다. 모래가 쉼 없이 모양을 바꿔댄다. 그러나 단 한 가지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 아그다가 세상 모든 브라민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신경 거슬리게 굴고 싶은 브라민, 그 이름은 -
  • 안비타 샨프라하리

    타랑메나르는 여행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 1, 2년 정도나 되었을까. - 아그다 느부라마나자의 눈에 매우 흥미로이 다가온 구조물이었다. 그래서 일행을 데리고 찾아가 하룻밤 재워달라며 다짜고짜 요청했다. 샨프라하리가 열어준 문 안에서, 그는 잠을 푹 …… 잤다면 좋았을 텐데, 내부를 돌아다니지 말라는 말을 무시하고 슬금슬금 등대를 올랐다. 위로, 더 위로, 몰래몰래 올라간 꼭대기에서 그는 화로와 화로를 지키는 소년을 만났다. 옆에 뻔뻔히 앉아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에게 졸음이 찾아왔고 그는 이에 순응하여 그가 생각하기에 지루하기 짝이 없는 불과 바다를 등지고 밑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당신, 비밀 지켜줄 거지?” 그렇게 헤어지고 머리를 눕히고 나서야 드는 상념은, 이름을 묻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던가.
    이후에 ‘가문’이라는 거창한 집단의 한 일원, 즉, 아그다 느부라마나자와는 삶의 거리가 꽤 긴 그이와 법행 대련과 수련을 함께하게 된 것은 꽤 미래의 일이다. 그가 생각하길, 안비타 샨프라하리가 피워내는 불은 그가 닮고 싶지 않은 우직하고 ‘미련한’ 불이다. 신두의 불이다. 가까운 거리에 불을 비처럼 내려도 그는 겁에 질리지 않는다. 그에 심통을 내면서도 그는 다음을 안다. 다음에도 우리는 법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테다. 이 세상을 이루는 것들에 대하여 논하고 풀무와 부지깽이를 마주하리라.

    마주 보던 풀무와 부지깽이가 같은 곳을 향한다. 1393년, 4월의 들판을 걸어간다. 산맥을 향해, 강줄기가 시작되는 곳을 바라보며 둘이서 함께. 아그다는 그간 그가 걸어온 모든 곳을 거처이되 거처로 삼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언젠가 ‘자신만의’ 영역을 손에 얻게 되면, 그곳을 집이라 부르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이미 타랑메나르를 제 돌아갈 곳으로 인지한다. 2주의 짧은 여행을 끝내고 안비타를 등대에 도로 데려다준 뒤, 그 길로 자르부미를 떠나 하라데이로 거점을 옮긴 아그다는 그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사뭇 자주 타랑메나르 꼭대기에 몰래몰래 들이닥쳤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늘 환영해줄 등대지기가 그곳에 있다는 걸 알기에, 추억 어린 장소가 되어버렸음을 인정하기에, 언젠가는 3주의 여행을 핑계로 밖으로 끌고 나온 뒤 다시 데려다주지 말아야지 – 하는 속셈을 키우며. 1397년, 아그다는 이 해에 대체 무슨 업이 이리도 많았는지 떨떠름하게 회상한다. 파나지에 함께 놓아버린 맞불이 화재를 일부나마 밀어낸다. 6월 말, 외로이 부지깽이를 떠올린다. 뜨거운 감각이 떠나지 않는 오른팔에서 피가 식어간다. 안비타, 여기도 봐주면 안 될까? 지금 당장. 당신의 불이 여기에 필요해. 1399년, 섬이 번개와 불에 휩싸인다. 서로 다른 불덩이 같은 두 인물이 물을 일으킨다. 마주 보던 풀무와 부지깽이가 서로의 변화를 알아차린다. 캄발라의 파나지, 그때 느꼈던 법행과는 달라진 법력이 이변과 맞서 싸운다.
    추가로, 아그다는 루드락을 꽤 질투하고 시샘하게 되어버렸다. 아니 글쎄, 어떤 작자가 선수를 친 건지, 안비타가 ‘외부의 정치적인 행사’에 제가 아닌 ‘다른 이’와 걸음 한 것이다……. 하지만 분노는 분노, 질투는 질투, 탐욕은 탐욕, 그는 이 기회 아닌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안비타에게 어디 갈 때마다 제 칭찬을 해달라고 뻔뻔스레 부탁했고, 신두 북부에서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타랑메나르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미련한 자가 재차 여행길에 나선다. 7년을 떠돌아다녀도 부족한 제 이기심을 채우고자, 제 눈에 흥미롭게 다가온 사람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더 구하고자, 다시 만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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