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발타자르 벨라르미노
Balthazar Bellarminus
카엘루마 성국
171cm  , 60kg  ,  19y

✦징조
〈기도〉
간절히 바라는 형태를 취하니 원하는 것이 이루어졌다.
8살 겨울, 그가 동생들과 함께 마을의 얼어붙은 호수에서 놀던 중 얼음이 깨졌고, 막내가 물에 빠졌다.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건져 올렸으나 깨어날 기미가 없던 차, 동생을 끌어안고 울던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에 와서는 ‘간단한 치유 마법’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동생의 목숨을 살린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고, 발타자르의 운명 역시 바뀌었다.
전신
※두상 출처:@CMSgaenam

인상착의

붉은 피부, 채도가 낮은 녹색 눈, 어두운 곳에서는 아주 옅은 금발로 보이기도 하는 백색의 머리칼.


늘 미소 짓는 낯은 굵거나 거친 부분이 없다. 약간의 고집이 드러나는 눈썹 역시 이마를 덮는 앞머리에 가려져 두드러지지 않는다. 어깨에 겨우 닿을 길이의 머리칼은 끝이 가지런하게 모여있다. 속눈썹을 포함하여 모든 털이 가늘고 촘촘하지만 답답한 느낌은 없다. 처진 눈매와 호선을 그리는 입매, 아직 젖살이 남아있는 뺨 덕분에 그저 순한 인상이다. 그 무엇도 튀지 않고 적당한 비율로 자리 잡은 탓에 오히려 인상이 흐려 보일 지경이다.


교복 역시 본래 신학교의 학생이었던 자 답게 흐트러진 부분 없이 평범하게 챙겨 입었으며, 체구 역시 그리 크지 않고 말라보여 학생들이 우르르 나올 때 즈음 인파에 섞이면 찾기 어렵다. 조금 더 자세히 뜯어 본다면, 더 클 걸 예상한 건지 손등을 살짝 덮는 소매와 오래 신은 티가 역력한 신발 따위가 눈에 들어오지만, 보통은 그 누구도 그를 이렇게까지 뜯어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은 발타자르 자체보다 그가 으레 들고 다니는 꽃에 눈길이 가기 마련이다. 가시를 손질하여 아마포로 싼 장미라든지, 가을의 끝물에 피어난 코스모스라든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온실에서 기숙사로, 기숙사에서 온실로 나르곤 한다. 때문에 보통은 그를 ‘꽃을 들고 다니는 누군가’로 기억하거나, ‘백발의 누군가’로 기억한다.

품행

상냥한 / 온건한 / 가벼운 / 회의적인?

다른 이의 상태를 살피는 태도가 체화되어 있으며 웬만해서는 언성을 높이는 일이 없다. 매사에 유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고수하며 섣불리 결론짓기보다는 충분히 듣고 판단한다.

그러나 그의 상냥하고 온건한 태도는 저와 상대 사이의 거리에서 온다. 늘 일정 거리를 두고 사람을 대하다 보니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편할 수는 있지만, 유의미하지는 않다. 오래도록 대화해도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 없이 무난하고, 별다른 감상 없이 쉽게 잊힌다. 매사에 진중한 화제를 피하는 경향이 있으며 가벼운 대화가 주를 이룬다. 필요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다 온건하고 부드러운 낯을 거둔다면, 드러나는 속내는 그리 밝지만은 않다.

입에 발린 소리는 잘 하지만 주관을 묻는다면 퍽 회의적인 소리를 내뱉는다. 다른 이의 일에는 이상적인 소리를 늘어놓을 수 있지만 제 일에서는 체념이 빠르고 현실적이다. 지나치게 낙관이 없고 평가가 박해 최악의 상황에는 잘 대비하지만, 그보다 잘될 것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그런 성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속내를 잘 내비치지 않는다. 해보기도 전에 초 치는 소리를 좋아할 사람은 몇 없으므로.

이야기

벨라르미노(Bellarminus,Bellarmino)

알-파티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엘루마 동부의 지명이자 그 지역을 대대로 다스려왔던 가문의 이름,

…이었으나 현재 벨라르미노 백작령은 벨라르미노에서 분리된 ‘페레이라’가 다스리고 있다.

본래 페레이라는 벨라르미노의 방계였지만, 백여 년 전 제국의 성장기에 당시 벨라르미노 공작, 이그나시오 벨라르미노가 이 알-파티하와 내통하여 독립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떠올랐다. 결국 진상 조사 끝에 해당 사건이 진실로 밝혀졌으며, 다스리던 영지의 모든 통치권을 박탈당한다. 이후 주인을 잃은 통치권은 당시 조사에 큰 도움을 주었고 방계로서 지역에서도 인망이 두텁던 페레이라에게로 넘어갔으며, 벨라르미노는 사실상 이름만 남은, ‘귀족이었던’ 평민에 가까운 위치가 되었다.


더하여 벨라르미노 공작령 역시 이후 동일한 사태의 방지를 위해 영지가 분할되었고, 현 벨라르미노 백작령은 공작령 당시 벨라르미노의 중심에 해당한다. 백작령이 되었지만 여전히 지리적 특성상 국경 수호의 의무는 여전한 상태로, 중앙에서 성기사단이 ‘파견’되고 일시적으로 벨라르미노 백작이 그 군권을 위임받는 형태로 의무를 수행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기사단이 주둔하는 동안 드는 비용 일체는 벨라르미노 백작이 부담하며, 이를 두고 페레이라가 몇십 년 째 벨라르미노 가문의 죄를 대신 씻고 있다고 보는 동정의 시선도 존재한다.

보통 가문으로서의 벨라르미노(Bellarminus)와 지역으로서의 벨라르미노(Bellarmino)는 표기를 달리하여 구분한다. 


현 벨라르미노의 구성원은 발타자르의 친권자인 이시도르 벨라르미노와 발타자르, 그리고 발타자르의 네 동생이 전부다.

또한 이시도르 벨라르미노와 현 벨라르미노 백작, 페레이라가 형제 관계인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전대 벨라르미노 백작, 루치아 페레이라가 사고로 자식을 모두 잃은 후 과거 벨라르미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당시 성력이 발현하여 신학교에 입학 직전이었던 이시도르의 동생, 마리아를 자신의 후계로 인지했다. 마리아는 신학교 졸업 이후 환속하여 백작위를 이어받았지만, 페레이라는 벨라르미노와의 ‘공식적인’ 관계를 인정한 적이 없다. 그 이후로 벨라르미노와 페레이라 간의 교류는 전무했으며, 그나마 발타자르가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간간히 그가 마리아 페레이라와 소식을 주고받는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퍼졌다.


현재 마리아에게는 성력이 발현하지 않은 자식이 하나 있으며, 발타자르보다 3살이 많다.



발타자르

8살에 성력이 발현하였고, 이전까지는 평범하게 이시도르를 도와 농사를 짓고 동생들을 돌보며 생활해 왔다. 시기가 맞물리지 않아 신학교에는 9살에 입학하였다. 현재 이름은 생일(10월 10일)이 같은 성인에게서 따온 세례명이며, 세례는 입학 직전에 받았다. 어쩐 일인지 동부가 아닌 중앙신학교에 입학하였는데, 품행이 단정하고 신앙심이 깊은 덕에 이전 ‘벨라르미노’의 행적과 얽혀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적었다. 물론 그와 가까운 이들은 발타자르 스스로가 그런 이유로 언급되지 않기 위해 유독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는 평을 내리기도 한다. 뭐가 됐든 명예로운 일은 아니었으니 당연한 대처이기도 하다.


벨라르미노나 발타자르가 일반적인 호칭이겠지만, 흔히들 벨라르미노라 하면 지명 혹은 벨라르미노 백작과 헷갈리기 때문에 보통은 발타자르로 부른다. 일단 입학 이후 쭉 지켜본 사람들에 의하면 애칭이 있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가족에게 전하는 서신을 보낼 때는 늘 짤막한 이름을 쓰는 듯한데, 이를 들여다볼 만큼 가까운 이는 없었다.


대공의회로 처음 그를 만난 이들은 모르겠지만, 중앙 신학교에서 계속 함께 지내온 이라면 그가 11살 무렵 학교를 비웠던 일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유독 혹독했던 겨울, 주양육자였던 발렌티나가 폐병으로 사망하여 그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웠으며, 장례에 대한 일을 숨기지는 않았으나 크게 드러내지도 않았다.


외에는 별다르게 특이한 점은 없었다. 입학 이후 처음 글을 배웠음에도 성적은 꾸준하게 좋은 편이었고 학교 내에서의 평 역시 ‘우수한 신학생’취급이다. 여전히 성례의을 입을 때 모든 기도문을 외우며 단추를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오는 등의 꼼수 역시 부리지 않는다.


지난 훈련 기간 역시, 종교가 다르다 하더라도 크게 적대하지 않고 유순한 태도를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보고 익힌 것이 있으니 은연중에라도 거부감을 보일 법도 하건만, 일부러 깔끔하게 도려내기라도 한 것 마냥 평범하게 대하곤 했다. 오히려 그런 점에서 위화감을 느껴 멀리한 이들도 있었을 터다.



대공의회

10학년으로 재학 당시 중앙신학교 사제들의 추천을 받아 선발되었으며, 선발 사유는 ‘뛰어난 전력’이라는 사유였다. 본래 성기사단을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공격적인 성행에 유독 특출난 재능을 보여 적법한 인재라는 평을 받았고, 본인 역시 큰 이견 없이 승복하여 현재까지 훈련을 받고 있다.

선발이 확정된 시점 이후로 타국 언어를 익히는 데에 전념하여 막 도착한 이들을 그들의 언어로 맞이해준 몇 안 되는 인원이기도 했다. 급하게 공부한 것 치고는 괜찮은 실력이었지만 소통의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었기 때문에 손짓발짓은 물론이고 귀한 양피지를 희생해 가며 그림을 그려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기타

좋아하는 것: 휴식, 높은 곳, 꽃

싫어하는 것: 느끼한 음식, (어쩌면)책

취미: 꽃 손질 | 특기: 성행 전반, 암기


  •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신학교의 공부는 혹독해서 머리를 쉬어줄 필요가 있다나 뭐라나, 성적은 좋지만 딱히 이론적인 영역과 학문에 친숙한 성정은 아닌 모양이었다. 시험을 잘 보는 것 역시 이해력이 높다기보다는 많은 양을 통째로 외워서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답을 적어내는 쪽에 가깝다. 책 역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잘 읽지 않는다. 여타 (보통의)’귀족’출신 이들과 비교하면 교양이 부족하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음에도 가까이하는 일이 영 어려운지 난색을 표하곤 한다.

  • 반면 실전에는 강하다. 가장 성적과 평이 좋은 것 역시 ‘성행 실습’이며, 징조가 비교적 무난한 조건인 것도 장점 중 하나지만, 사용과 활용법의 고안에 있어 본능적인 영역의 ‘감’이 있다. 때문에 꽤 광범위하고 파괴적인 성행을 성공하고도 이를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설명하지 못해 빈축을 산 일도 종종 있었다. 섬세한 성행 역시 뛰어난 편으로, 이론적으로는 영 이해를 못 한 것처럼 보여도 이상하게 구현만은 제대로 해내곤 한다. 그러나 11년의 과정을 마치고 본래는 부제시험을 준비해야 했을 지금의 시기에 와서는 다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그간 오래 매달렸는데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걸 어쩌겠는가, 결과라도 좋으니 다행이었다.

  • 어디든 탁 트인 곳을 좋아한다. 게 중에도 높은 곳을 선호해 종종 지붕에 올라간다는 소문이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실제로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 신학교 곳곳에 있는 화단과 온실 관리를 종종 돕는다. 성행으로 쉽게 물을 주고 벌레를 관리하거나 온도를 조절할 수 있으니 꽤나 환영받는 모양. 그에 대한 답례로 꽃을 받아오면 기숙사에서 곱게 말린다. 

  • 말린 꽃은 제 동생들에게 보내는 듯하다. 발렌티나의 생전에도 발렌티나와 이시도르에 대한 이야기는 잘 하지 않았지만 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해왔다. 그들 중 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도 있는 건지 종종 인편으로 비싸게 값을 치르고 꽃과 편지를 보내곤 한다. 본래는 잘 훈련된 전서구, 페페가 있어 달에 한 번은 연락했지만, 페페가 나이가 들어 재작년에 죽은 이후로는 서너 달에 한 번 연락을 하고 있다.

  • 느끼한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여전히 낯설고 입에도 잘 맞지 않는다는 듯. 

  • 목소리 톤은 차분한 편, 약간 높은 감이 있지만 음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부러 높여 말하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 입학 이후로 아주 느리게 커 왔다. 지금은 다 큰 건지 아닌 건지… 입은 모양새가 크게 어색하지는 않지만 조금 더 자랄 걸 염두에 둔 듯 약간 긴 소매나 큰 신발 등이 눈에 들어온다. 그 외에도 그의 모든 물건은 오래 아껴온 티가 난다.

  • 휴식기에도 보통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중앙에 머물렀다. 동생들을 그렇게 아끼면서도 보고 싶은 건 아니었던 건지 의아한 행동이었으나… 그 시기에 밀라나에 머물렀던 이들이라면 그가 마리아와 만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을 터다. 이제 와서 조카를 챙기는 걸까?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벨라르미노와 페레이라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건 분명했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을 가져와."
발타자르 페레이라
Balthazar Pereira
카엘루마 성국  ✶ 178cm  ✶ 85kg  ✶  26y
Radegund
발타자르는 테레사의 승작 권유 당시 아래와 같은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성황의 부르심으로 비옥함의 은혜를 받은 벨라르미노에서 주님의 종 된 자, 성황의 검 된 자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발타자르, 톨로사의 대주교에게 인사드립니다. 이곳에는 오늘도 주님과 루치의 은혜와 영예를 위하여 우리에게 약속된 땅을 지키고 말씀을 퍼뜨려 우리의 성국을 지켜내고자 분투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중략) …이교도와의 분쟁이 빈번한 지역에 기사단을 둔다는 것은 곧 칼을 겨눔이오,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지닌 것을 지키고자 하고 날붙이 앞에 평정을 유지하지 못하니 이는 곧 내실을 다져야 할 시기에 우리 울타리 안의 어린양들을 떨게 하고 불안을 증폭시키는 일이 될 것입니다… (중략) …하여 부디 추진하시는 바를 미뤄주시기를 청합니다. 불안하고 흔들리는 이 땅이 굳건히 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고자 아량을 베풀고 고려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리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저, 발타자르뿐만 아니라 벨라르미노의 만백성은 위에 말씀드린 모든 상황과 조건을 따져 주십사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이 청의 진실됨을 증명하는 증인으로 남고자 합니다. 벨라르미노 주교 그라체, 제 11 성기사단장…(후략)”

그는 테레사가 바라는 ‘확장’이 시기상조라 여기고 있으며, 불안한 정세를 이용해 기회로 삼기보다는 내부적인 결속과 통치의 내실을 다지는 일이 우선이라 생각한다. 발타자르는 라데군다와 비슷하게 ‘제 울타리 안을 지키는 자’이며, 이러한 생각은 이변의 해결에 있어서도 다름없기에 대공의회에 대해서도 미온한 태도를 보인다. 이미 논의된 협력에는 협조적이나, 그뿐이다.

“어찌하여 안의 일을 바깥과 논한단 말입니까?”

전신

징조

〈입술에 물체가 닿는다〉
끝내 포기하고 작별인사를 건넬 때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다.
8살 겨울, 그가 동생들과 함께 마을의 얼어붙은 호수에서 놀던 중 얼음이 깨졌고, 당시의 막내가 물에 빠졌다.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건져 올렸으나 깨어날 기미가 없던 차, 동생을 끌어안고 울던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지금에 와서는 ‘간단한 치유 마법’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동생의 목숨을 살린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고, 발타자르의 운명 역시 바뀌었다.

인상착의

시시때때로 변하는 낯은 그의 입보다 수다스럽다. 고집 있는 눈썹은 허튼소리 하나에도 쉽게 한쪽이 치솟았고 젖살이 빠져 마른 뺨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잘게 떨렸다. 그러나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쪽이냐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으므로, 결국 그의 모든 '신호'는 의도된 바가 분명했다.

길어져 날개뼈를 겨우 덮는 머리는 관리를 하긴 하지만 썩 단정하지는 않다. 그나마 본래 타고난 머리가 얌전한 편이라 미친 말의 갈기 꼴이 되는 걸 면했을 뿐이지 누가 봐도 애써서 관리한 티는 나지 않는다.

시선은 늘 상대를 향했고, 굽히는 법이 없었다. 뜯어보면 어릴 적과 크게 인상이 달라지지 않았으나 어딘가 위압감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껄끄러움이 생겼다는 건, 그를 만난 이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감상이었다.

상품으로 칠 법한 망토의 원단이나 루비가 박힌 예도 등은 전과 다르게 수수하지만은 않다. 체격 역시 제법 건장해져 얼핏 봐도 단단함이 느껴진다.

그는 더 이상 군중 속에 숨을 수 없다.

품행

강직한 / 거침없는 / 묵묵한 / 회의적인?


과거 유순하고 쉽게 굽히던 모습과 다르게 신학교 졸업 이후로는 굽히는 일이 없어졌다. 그가 의견을 굽히는 건 주의 뜻이 아니라 생각될 때뿐이니 주변에서는 그가 더 신실해졌다 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공의회에서 일부가 보았듯이 그는 신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는다. 오직 제 주관대로 행동하며, 주의 뜻을 끌어오는 건 그를 정당화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그가 강직하다 평받는 건 ‘성국의 눈으로 보았을 때’ 부정한 일을 저지른 적 없고, 늘 맡은 바에 충실하며, 헌신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성황의 검으로 기능했으며, 주어진 자리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성국이 허락한 자리에 서 있으되 흔들리지 않았다는 건, 그를 흔들려한 것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변이든, 분쟁이든, 혹은 정치적 공작질이든, 어떤 일이든 제 영역 내의 일이라 생각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으며,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뛰어들어 성하지 않을 곳에 발 들이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고, 울타리 밖의 사람을 진창에 내다 꽂는 일 역시 꺼리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든 했다. 무언가 하나라도 남기기 위해서, 물려주기 위해서, 발목을 잡는 건 잘라냈고 앞을 막는 건 불태웠다.


끊임없이 분투하면서도 불평 한 줄 하지 않았다. 함께 배속된 이들이 어차피 처지가 비슷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에게 털어놓을 것이 아니라 생각한 건지. 기사단 내에서도 그저 우직한 사람으로 통했으며, 벨라르미노 내에서도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사람’으로 통했다. 처음 발령 당시 그가 그 ‘벨라르미노’임이 알려진 후 영지 내에서는 그가 그의 어린 시절 받았던 수모를 갚아주려 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들끓었으나, 그는 ‘발타자르’가 되기 전의 일을 아예 지워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언급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친절했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의 뜻을 따르는 자답게, 사제는 아니지만 세속인으로 분류될 수 없는 자답게.


입에 발린 소리는 어지간히 높은 사람이 아닌 이상 그만뒀고, 더 이상 타인의 일에 이상적인 소리를 얹지도 않는다. 그러나 마냥 부정적으로 변하였는가? 스스로에 대한 회의적인 말 역시 그만뒀으니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속없는 소리를 들어왔던 이들에게도, 밑바닥에서부터 긁어낸 진득한 소리를 들어왔던 이들에게도 낯선 변화였다. 하지만 진실로 어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여전히 낙관하지 않는지, 스스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되었는지,… 그는 그 무엇도 답하지 않는다.


이야기

연도 사건
1393 2월: 신학교 졸업, 성기사 지원
8월: 6개월만에 훈련 완료, 대공의회 기간을 감안하여 최단기간 수료
9월 초: 첫 발령으로 벨라르미노 파견 예정
9월 중: 파견에 대한 조직 내 일부의 반대 의견 제시로 논란 발생, 대성전에서 2주간 구류 및 해당 기간 동안의 충실한 해명과 신앙의 증명으로 정식 발령 진행
10월: 벨라르미노 행
1394 2월: 막내(발렌티노)의 성력 발현으로 중앙 신학교 입학(10세)
11월: 남은 친권자(이시도르) 사망(44세)
12월: 페레이라에게 첫째 동생(미카엘라)과 함께 입양됨
1395 1월: 테레사의 벨라르미노 백작 승작 제안
2월: 발타자르 탄원서 제출, 벨라르미노 백작의 승작 거절
5월: 테레사 추천(보복성)으로 벨라르미노에 파견된 제 11 기사단 기사단장에 임명
6월: 셋째 동생(제노베파) 포이오 공작 휘하 기사단의 종자로 뒤늦게 입단(16세)
11월: 벨라르미노 영지 북부 이변 심화 및 추가 발생, 농사가 어려워지면서 주민들을 그라티움 채집 및 밀라나로의 운송을 위한 인력으로 활용 시작. 상업 중심 도시로 변화 시작
1396 - 동부 접경지대에 발생하는 이변의 선점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
5월: 그간 채굴된 그라티움을 모두 밀라나로 전달 완료, 지속적인 납품 조건으로 이동시설 설치
1397 5월: 둘째 동생(체칠리아)과 페레이라 상속자(발레리아노)의 귀천상혼, 발레리아노의 상속권 박탈
1398 10월: 이변으로 인한 인근 지역의 생활고로 (구)벨라르미노 영지 재통합 조짐
1399
1400 2차 대공의회 참여


벨라르미노(Bellarmino)

 알-파티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카엘루마 동부의 지명으로, 백 년 이상 페레이라가 다스려 온 곡창지대이자 동부의 군사적 거점이지만, 점차 이변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그러나 이변의 조치를 위한 추가적인 인력 파견은 없는 상태로, 본래 파견된 성기사단이 알-파티하와의 분쟁 대응과 이변 대응을 모두 처리하고 있다.


 점차 충돌의 수위가 높아지는 동시에 이변 역시 심해져 사태의 효율적인 해결과 안전을 위해 5년 전, 톨로사의 테레사가 연례회의에서 벨라르미노 백작의 승작을 제안하기도 하였으나, 얼마 안 가 승작과 함께 추진되는 기사단 구성을 반대하는 탄원서가 제출된다. 당시 잃을 것 없던 발타자르를 대표로 벨라르미노 주교와 성기사단, 지역민들의 이름이 적힌 탄원서에 벨라르미노 백작 본인의 거부가 더해지며 승작과 기사단 구성은 무산된다.


 현 벨라르미노 백작은 마리아 페레이라로, 슬하에 자식이 하나밖에 없어 주변에서도 걱정이 많았으나 6년 전 발타자르와 발타자르의 동생인 미카엘라를 입양하며, 조금 기이하긴 해도 시름을 덜었다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3년 전 상속권을 가진 발레리아노가 발타자르의 둘째 동생인 체칠리아 벨라르미노와 결혼하며 결국 또 페레이라의 상속권은 오리무중 상태가 되었다.


 입양한 자식 중 세속인이며, 영지의 일을 꾸준하게 도와온 미카엘라가 상속을 받으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마리아 역시 환속하여 작위를 상속받은 경우이기 때문에 발타자르의 환속 가능성 역시 제시되고 있다.

보통 이변의 영향을 받은 지역이라면 기존의 경제가 대부분 무너져 환속은 꿈도 못 꿀 상황이겠으나, 벨라르미노는 이변의 영향 속에서 대공의회 참여 경험이 있는 발타자르의 주도로 5년 전부터 발 빠르게 움직여 ‘그라티움’을 밀라나로 보내며 이변 속에서도 혼란이 미미할 정도의 부를 축적했기 때문에, 발타자르의 환속 역시 가능성이 없지 않다.


 끊임없이 분쟁이 발생하나 라데군다의 허가 아래 성벽의 보수가 상당 부분 진행되었고, 파견된 제 11 성기사단의 대응이 적극적이며, 본래 주민 대다수가 생업으로 삼던 농사 대신 다른 활로를 찾은 덕에 ‘접경지’치고 벨라르미노의 성벽 안쪽은 현재까지도 다른 지역에 비해 평화로운 편이다. 그 때문에 2년 전부터는 유지가 어려워진 인근 지역과의 통합이 논의되기도 했으며, 단순히 소문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미카엘라와 발타자르는 인근 지역의 자제들과 혼담이 오가는 상황이다.



행적

 대공의회가 와해하자 마자 졸업시험을 보고 신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그 길로 성기사가 되기 위한 훈련에 임했다. 6개월 만에 이례적인 최단기간으로 훈련을 수료하고 벨라르미노로 발령이 나는 듯했으나, 성기사단과 대성전은 발령을 ‘검토’ 단계에서 유보한다. 과거 벨라르미노의 독립 시도와 그 지역이 무관하지 않은 점, 성기사가 현재 해당 지역에 파견된 목적이 ‘치안유지’인 점을 근거로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으며, 발타자르는 이에 대한 해명을 위해 대성전에 2주 간 구류되며 그들을 설득해야 했다.


 “제 이름은 발타자르이며, 이 이름은 밀라나로 와 중앙신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받은 이름입니다.

주님의 종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 밀라나임이 분명한데,

어찌하여 여즉 벨라르미노를 제 연원으로 여긴단 말입니까?”


 결국 절차가 중단된 지 한 달 만에 발타자르는 벨라르미노로 향한다. 처음부터 중앙과 먼 한미한 자리로의 발령이면서도 마찰을 피하지 못했으나, 발타자르는 이 과정 중에 아무런 불만도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기 위해 애썼으며, 이에 대한 신의 보답인지 이듬해에는 막냇동생인 발렌티노가 성력을 발현하여 중앙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기쁨도 잠시, 유일하게 남은 친권자인 이시도르 벨라르미노가 사망한다. 하지만 정말 불행이 맞았을까? 그는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질 나쁜 사과주를 퍼마시고 과거의 영광만을 논하며 가계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사실상 첫째 동생인 미카엘라가 모든 걸 책임지고 있었기에, 오히려 군입이 줄어든 셈이었다. 이시도르는 발렌티나와 비슷하게 벨라르미노 성당 묘지 부지의 가장 바깥쪽에 묻혔다.

그럼에도 발타자르는 그의 장례식에서 난생처음으로 우는 모습을 보였다.


 장례를 마친 후, ‘본래 그래야 했다는 것처럼’ 마리아는 발타자르와 미카엘라를 입양한다. 잡음이 없지 않았으며, 어찌 보면 발타자르가 대성전에서 했던 말과도 다소 어긋난 상황이었으나, 마리아가 워낙 완고했고, 벨라르미노 주교 역시 이를 반대하지 않았기에 잡음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물론 논란이 금방 사그라든 건, 농번기에도 굳이 밀라나로 걸음 해 조카를 만나는 마리아의 행보에서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이가 없었던 탓이 크다. 오히려 미카엘라까지 입양한 것이 변수라면 변수였다.


이후로는 지난한 한 해였다.


 테레사의 승작 제안을 반대한 일에 대한 보복성 인사로 명예라고는 없는, 그저 의무와 책임뿐인 제 11 성기사단의 단장으로 임명되어 은퇴 전까지 중앙에 발령 난 경험 없이 한미한 자리에 머무를 위기에 처했으며, 제 어머니를 앗아갔던 이변은 점차 심해져 벨라르미노 북부의 모든 작물이 얼어 죽는 지경에 이른다. 더군다나 접경지라는 특성상 ‘성 밖’에서 발생하는 이변과 이로부터 발생하는 ‘부산물’ 문제로 끊임없이 싸워야 했고, 급기야 국지전으로 양상이 발전하자 추가 인력이 없는 상태에서 모든 전투에 나서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얼어 죽을 뻔했던 셋째 동생이 포이오 공작 휘하의 기사단에 종자로 입단하는 등 소소한 기쁨이 있기는 했으나… 객관적으로 평탄한 나날은 아니었다. 본래 자라던 밀은 고사하고 호밀조차 얼어붙었으며 순무 역시 먹을 수 없는 수준이 되자 결국 벨라르미노 백작은 발타자르의 의견을 받아들여 결단을 내린다.


‘생계가 어려운 이들은 성기사단이 이변을 처리한 후 나오는 투명한 광물을 주워 백작저로 갖고 오라.’


 영지의 생계가 그라티움에 달리게 되자, 발타자르는 어쩔 수 없이 수성을 중시하던 기조를 버리고 ‘성 밖’으로 나서게 된다. 제국의 제마아트와 충돌이 있건, 없건,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지역이건, 아니건, 닥치는 대로 이변을 제압하고 그라티움을 긁어모았다. 긁어모은 그라티움은 모두 밀라나로 향했으며, 카엘루마의 길이 보수가 늦어져 교통이 불편하다는 의견과 청원을 라데군다가 받아들여 벨라르미노에는 콘스탄티노파로 향하는 이동시설이 설치된다. 덕분에 영지의 사정이 크게 나아지고 결국 구 벨라르미노령이었던 지역들의 재통합까지 노릴 수 있게 되었으나…

 다른 관점으로는, 책임이 더욱 막중해졌다. 이곳이 뚫리면 밀라나는 아니더라도 콘스탄티노파로 곧장 향할 수 있게 된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는가? 단순히 그 대의 페레이라가 파문당하고 후손이 9대째 소작을 얻지 못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러나 발타자르는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이 땅이 살길은 이뿐이다.’



평판

 현재 영지 내에서는 그를 미카엘라와 함께 진정한 면죄를 위해 벨라르미노에게 다시 주어진 기회라 칭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과거 세례조차 받지 못했던 시절 온갖 일이 있었으니 이에 대한 보복이 이루어질 거라는 여론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발타자르는 ‘발타자르’가 되기 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페레이라가 된 후에는 더욱이. 지금의 발타자르 페레이라는 묵묵하고 충직한 성기사일 뿐이다. 더군다나 이변이 심해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활로를 마련해줬으니 평은 더욱이 좋아졌다. 그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에 제 몸을 아끼지 않는다. 아직 불안정한 곳에 성력이 없는 이가 가게 두지 않는다.

 그는 늘 처음 걸음하고, 마지막에 빠져나오는 이였다.

 상속에 관한 일에서도 태도는 일관된다. 늘 미카엘라를 앞에 세우며 그 뒤를 지킨다. 그야 이 모든 건 성기사로서의 그가 굳건해야 이어질 수 있는 일이었으니 당연했다. 환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과 별개로, 그가 과거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벨라르미노의 주인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한편 적들에게는 골치 아픈 상대였다. 인근 지역의 제마아트 부대에게는 ‘공훈 세워서 여기를 뜨지도 못하게 하는 마귀 놈’ 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라티움’에 대한 집착은 말할 것도 없어서 빵 대신 ‘라힘’을 먹는다는 헛소문까지 돌았다. 성기사단이 먼저 침범한 상황에도 민가는 건드리지 않았으나, 예니센의 검을 보는 순간 태도는 달라졌다.


과연 주께서 사람을 해하고 말씀을 전하라고 이 힘을 내렸을까?

발타자르는 대답한다. ‘그깟 옹졸하고 무도한 것이 신일리 없으니 이 힘 역시 신의 힘이 아니다.’

물론 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기타

좋아하는 것: 향유

싫어하는 것: 느끼한 음식

취미: - | 특기: 성행 전반


  • 여전히 학문적인 영역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흔히 귀족들이 교양이라 일컫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음악은 길거리의 것이 익숙하고, 춤 역시 모닥불 앞에서 모인 이들의 몸짓이 익숙하며, 식사 역시 거칠고 단순한 것이 편하다.
    • 그나마 갈고 닦은 것은 말과 문장으로, 적어도 어디 가서 책잡히지는 않는다. 신앙은 여전하다. 다들 신실하다 일컫지만 결국 진실로 믿지는 못한다. 이제는 얼렁뚱땅 그린 듯한 답변을 하고 넘기기보다는 침묵을 택한다. 과거보다는 말수가 줄었으니 이상하게 여기는 이도 없었다.

  • 여전히 기도를 드리고 성행을 사용하나, 급한 상황에서는 장갑이든 옷이든 무언가를 입에 댄 후 성행을 쓰는 것이 드러나며 숨길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신실하다는 ‘인상’이 필요하다 생각하는지 전투에 나설 일이 많아진 후로는 묵주라도 챙겨 다닌다.

  • 주로 사용하는 성행 역시 변하지 않았다. 광범위하고 파괴적인 동시에 세심함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섬세하다. 애매한 지역의 이변을 처리한 후 제마아트와 시비가 붙었을 때 용케 밭의 작물만 피해 사람을 고꾸라뜨리는 것만 봐도 그렇다. 공격적인 성행이 특기인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단장이면서도 사실 제 휘하에 있는 성기사들을 지켜주는 일에는 익숙하지 않아서, 차라리 본인이 가장 선봉에 선다. 실력이 출중해 실질적으로 ‘지켜주는’ 효과를 내기는 했으나… 치료 전담 인원의 불만이 적지 않다.

  • 여전히 탁 트인 곳과 높은 곳을 선호하지만, 더는 올라갈 지붕이 없다. 벨라르미노의 종탑은 밀라나의 것과 같이 높지 않으니.

  •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더 어려워진 가계를 지탱하기 위해 몰래 온실의 약초를 빼돌린 세월이 꽤 되어, 지금까지도 약초와 식물에 대한 지식은 수준급이다. 어차피 온실을 담당하던 신부 역시 모든 걸 알면서 눈감아준 것이었기에 졸업 전에는 감사를 표하고 떠났다. 하지만 더는 꽃에 관심을 두는 ‘척’을 하지 않는다. 먹을 수도 없는 것에 관심을 가져봤자 무엇에 쓴단 말인가?

  • 그러면서도 향유는 사용한다. 값이 비싸 펑펑 쓰는 수준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챙긴다. 막 전투에서 복귀한 후 체칠리아가 ‘어릴 적에 자던 마구간의 말똥 냄새보다도 지독한 냄새가 난다.’라고 말했던 게 충격이었다고 한다.
    • 그런 아이가 6살이나 차이 나는 제 사촌이자 형제와 결혼하겠다 했으니, 머리가 뒤집어졌다. 계승권에서 분명한 우위를 점하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끝내 곱게 보내주지 못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건지 발레리아노는 여전히 발타자르를 피해 다닌다.

  • 목소리 톤은 차분하고, 약간 낮다. 중앙 신학교에 있을 때는 그래도 밀라나의 억양에 가까웠으나, 고향에 돌아온 후로는 완전히 동부인의 억양으로 돌아왔다. 오랜 관리와 탄압에도 여전히 지역민들이 특정 단어에는 서부 헤자즈어를 섞어 사용하듯이, 그 역시 이따금 헤자즈어를 사용하는 일이 있다.

  • 훈련을 받으며 키가 조금 컸다. 움직일 일이 많아서였는지, 아니면 크는 시기가 늦게 온 건지. 몸 역시 꽤 단단해졌다. 웬만해서는 완력으로 밀리지 않는다. 성행이 더해진다면 더욱이. 검은 꾸준히 갈고 닦고 있으나, 실전에서는 쓰지 않는다. 늘 패용하는 검 역시 지휘용이다.

  • 공개적으로 라데군다를 지지한다. 애초에 벨라르미노 태반이 그렇다. 주교며 영주며, 파견된 성기사단이며… 싸움을 좋아하는 이가 있던가? 확장은 침범을 동반하고, 침범은 곧 충돌이다. 접경지의 사람들에게 충돌은 지긋지긋한 일이다. 여기에 어떠한 명분까지 더해진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주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성전을 막을 자신 있나? 나는, 아니.”
  • 그러나 대공의회의 소집에는 별말 없이 응했다. 이미 협력하기로 결정한 것에는 응해야 함이 첫 번째 사유, 응하지 않는다 해도 실익이 없고 오히려 손해라는 것이 두 번째 사유.

  • 인근 지역의 자제들과 오가고 있는 혼담의 결정 역시 사실상 윤곽이 잡혔으나, 확정은 대공의회가 끝난 후로 미루기로 했다. 애초에 그가 성기사인 한, 미카엘라의 혼인보다 제 혼인이 중요하지는 않을 터다.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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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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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력
5 / 10
완력
9 / 10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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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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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오
0 / 10
집중
0 / 10
신앙
0 / 10
근면
0 / 10
민첩
1 / 10
재주
8 / 10
인내
5 / 10
설계
2 / 10
화술
0 / 10
관찰
0 / 10
사교
62 / 999
도덕
29 / 999
0 / 999

INVENTORY


STORY

  • 이스락 베예

    이스락의 접경지 배치로 지난 7년간 마주칠 일이 종종 있었다. 본격적으로 분쟁이 발생하기 전에는 정찰 중 마주치면 인사를 나눌 정도는 되었으나, 국지전이 빈번해진 이후에는 서로의 자리에 충실하여 칼을 겨눴다.
    1399년 에안쿠르 평야에서도 마주친 적이 있으나, 충돌은 없었다. 발타자르는 당시 상황에 대해 '상황 인지 후 후발대로 지원하려 했으나, 사전에 아군과 전략이 협의되지 않아 위치 특정이 어려웠다.'고 보고했다.
  • 멜키오레 곤차가

    작은 다툼 후 연락할 거냐는 말에 어찌 거부도 못하고 착실하게 서신을 주고받고 있다. 국경에서 제국으로의 입국을 거절당하고 있던 때에는 마침 접경지인 김에 거처를 제공했고, 이후 재판에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는 마침 이동시설도 설치했겠다, 바로 콘스탄티노파를 거쳐 밀라나로 향했다. 어디 공적인 자리에서 함께 성국을 위하는 것이 아닌 이상 '포이오 공작'을 언급하는 일은 없지만, 사적으로는 꽤 가까이 여기고 있는 모양. 동생이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니 적대할 이유가 없기도 하지만, 이리 관계가 변한 건 그보다 더 이전의 일이다.
  • 페레슈테흐 이븐 나임 알 슈베츠

    지평선 너머로 지겹게 보이던 빨간 머리. 왜 광대버섯이 해 쨍쨍한 들판에서 나는 건지, 아직도 발타자르는 의문이다. 성행은 상대하기 까다롭고 부대원을 활용하는 방식 역시 저가 하지 않을 방법만 골라서 하니 예측하기 쉬운 동시에 지극히 어렵다. 1399년 페레슈테흐가 잠시 사라졌을 때, 발타자르와 대치하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는 소문이 접경지에 알음알음 퍼져있다. 이후 다시 페레슈테흐가 접경지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발타자르는 홀로 '형은 멀쩡하던데…' 라고 중얼거렸다는 설이 있다.
  • 샤키라 빈트 라시드 빈 달랄 알 미르자데

    접경지에서 자주 보던 사이. 분명 대공의회에서는 다소 사막의 별천지 같은 소리를 하기는 했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는데, 그 성정 그대로 커서 적으로 마주하니 곤란하기 그지없었다. 잔인하기 그지없는 전술은 차치하고 이곳저곳에 파디샤의 깃발을 올려대니 동부의 성기사인 이상 협상 자리에서 계속 마주쳐야 했다. 거기에 어느 날은 샤키라에게 잡혀 분명 어디 하나가 잘려서 돌아올 거라 생각했던 제 단원이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오니,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말이 잘못 퍼지는 걸 막기 위해 돌아온 이를 어찌하기라도 해야 하나 고민했으나, '일단은' 조용히 넘어갔다. 한 2년이 지난 후에나 미르자데에 익명의 선물이 도착했으나, 정작 보낸 이는 선물의 행방을 알지 못한다.
  • 라데타 이븐 나디르

    실체를 알지 못한 채 느낀 어떤 동질감, 일그러져 약간은 다른 상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모습에 미약한 기대로 후일을 기약하였으나, 결국 내뱉은 시간보다 빨리 바라던 형태로 만났다. 교전 상태에서는 무르게 구는 일이 없었으며, 협상 자리에서도 절차에 맞게 합당한 것을 요구하며 건조하다면 건조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사적으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음에도 발타자르는 라데타의 소식을 꿰고 있다. 또한 평원을 떠난 적 없는 발타자르는 바다를 알지 못하고, 그들 사이에는 여전히 유효한 약속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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