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방어〉
주먹쥔 손 그대로 양팔을 제 눈높이로 들어올린다.
허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녹발을 대충 한 갈래로 묶어 늘어트렸다. 정돈되지 않은 잔머리가 여러가닥 뻗쳐있다. 항상 반으로 접혀있는 나른한 눈매에 송곳니가 두드러진다. 처음 지급받은 그대로 신학교의 정복을 갖춰입었다. 가슴과 허리의 검집을 고정하는 띠를 차고 흰 검집을 패용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라고는 없지만 검집에 색색의 유리조각이 달린 금줄만이 유일하게 화려하다. 오색빛이긴 하되 그다지 값비싸보이진 않는다. 검은 가죽신을 신었다.
영대는 본인의 것이 아니라 옆 학우가 걸치고 있는 것을 멋대로 가져와 두르곤 한다. 감촉이 마음에 든다나. 나름대로 허락은 받긴 한다. 없으면 없는대로 다닌다.
표정이랄 것 없이 시큰둥하니 뚱한 낯. 만사에 무관심해 보이기도 한다. 나이에 비해 조금 더 들어보이는 청년다운 외관에 탄탄한 체격. 햇빛에 살짝 탄 피부. 양손에는 굳은살과 거의 보이지 않는 희미한 잔상처들이 자리한다. 동작은 느릿하고 목소리는 느슨하다. 자세는 올바르되 어깨에서 힘을 빼고 다닌다.
시큰둥한 / 의욕 없는 / 명확한 선
확실히 어디에서건 적극적으로 나서는 부류는 아니다. 무리가 모여있으면 맨 뒷줄이나 적당히 중간 조금 뒤 즈음에서 묻혀있다. 그래도 이런 걸 선호한다 뿐이지 앞으로 나오는 걸 두려워하진 않는다. 쉽사리 놀라지 않고, 감정의 변화폭이 좁을 뿐더러 잘 드러나지 않아 좋게 말해 차분하고 침착하다 볼 수 있다.
매사 이런 식으로 굴 것 같지만 본인이 가깝다 여기는 사람들에겐 스스럼없이 잘 웃고 농담도 던진다. 거리감의 경계가 아주 뚜렷하다. 다만 멀다고 해서 불쾌감을 주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갈등을 피하고자 하며 예의와 존중의 의도를 내비친다.
신념 없는 맹목 / 미지근한 성실 / 떠넘긴 의사결정
시키면 한다! 그게 무엇이 됐든간에,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더라도 몸을 혹사시키고서라도 해내고야 만다. 해내지 못한다면 조언을 구하거나 다른 방도를 여러가지로 알아본다. 포기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야 고르는 선택지다. 다만 이 모든 행위에는 열정이 부재한다. 자신만의 기준이나 줏대 따위 없이 그저 하라 했기에 따른다. 목적, 목표, 혹은 신념 없이 그저 누군가 가리키는 대로 걸어갈 뿐이다. 즐겁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라면 한다.
깊고 복잡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한다. 단순히 학문적인 부분이라면 글줄을 꿰면 그만이라지만 인간관계나 정세 등 헤아릴 것이 다양해지고 무거워지면 거기서 상념을 잘라버린다. 자기 주장이 없는 건 아니지만 타인의 의사나 결정을 우선시해 별 사감 없이 수긍한다. 무언가를 선택해야 할 때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옆구리를 찔러 고르라고 하고 그에 따라가는 일이 태반이다.
모두에게 그러진 않는다. 제국, 상급자, 학우 등―신뢰할 수 있다 싶은 대상을 선별하고, 본인 대신 생각하라고 떠넘긴다는 표현이 맞겠다. “너는 생각하고, 나는 행동하고. 간단한 셈법이지?” 딱히 부채감은 없다. 오히려 상호 이득 아닌가 여기는 중.
알-파티하 제국, 아우다리크 출신. 군 소속 병사로서 문지기 업무를 맡았던 부친은 5년 전 허리 통증이 심해져 은퇴했다. 모친은 인근 유리공예 공방에서 잡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중이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도 풍요롭지 않은 집안이지만 가정은 화목하다. 외동아들. 하나뿐인 자식이라 부모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부친, 제레브 베예는 대단한 노력가로 오랜 시간 예니센을 동경해왔으나 타고난 재능과 신력의 부재로 일개 병사에 머무른 채 더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이웃 주민들은 그의 이름을 들으면 비웃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식이 예니센에 들어갔으니 염원을 이뤄준 셈이 아니겠느냐며 축하를 건넸다. 실제로 이스락이 처음 징조를 발현했을 때, 제레브는 대단히 기뻐하며 그를 곧장 궁정학교로 보냈다. 집안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기숙 생활을 하며 장학 제도의 도움을 쭉 받아왔다. 검집에 두른 유일한 장신구는 떠나기 전 어머니가 무사안위를 기원하며 쥐여준 것.
나름 모범생 반열에 들어가있다. 상급자에게 깍듯하고 명령이나 훈련에 사족 달지 않고 수행하며, 차분하고 유연한 태도로 조율에 능하다… 라는 것이 대외적인 평가다. 이러한 품성을 높이 사 대공의회에 선발되었고 역시나 이견 없이 이에 따랐다. 물론 우수한 실력 역시 근거에 뒷받침이 되었다.
신력의 사용법 등 여타 교과목에 소홀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체술 및 무기술 단련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열의를 보였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조금 더 선호하는 정도. 처음 대공의회에 파견됐을 때 검집의 소지만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아쉬워했다.
한낮에는 이따금 햇살 아래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낮잠을 좋아해 식사 시간을 버리고서 잠을 자기도 한다. 훈련 시간이나 성적 평가 때까지 졸음이 침범하는 경우 억지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깨어있는데, 이때 수면 부족인 마냥 눈밑 그늘이 짙어지곤 한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아무 곳에나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잠깐 동안 눈을 감고 있는 습관이 있다.
긴 이름은 부르기 힘들다며 멋대로 줄여부르곤 한다. 하지만 상대가 불쾌해하면 곧장 철회한다. 학우들에게는 평대로 일관하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말을 바꾸기도 한다. 밀라나로 넘어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점에는 성국어가 익숙지 않아 더욱 말이 짧았으나 지금은 익숙해졌다.
당연하지만 헤자즈교 교도. 독실하다고는 못하나 예배와 심시작은 어디에 있든 습관적으로 지킨다.
〈자기방어〉
주먹쥔 손 그대로 양팔을 제 눈높이로 들어올린다.허리까지 길게 내려오는 녹발을 뒷목 어림에서 대충 반절 묶어두었다. 정돈되지 않은 잔머리가 여러가닥 뻗쳐있다. 항상 반으로 접혀있는 나른한 눈매에 송곳니가 두드러진다. 처음 지급받은 그대로 예니센의 정복을 갖춰입었다. 왼쪽 허리 가까이에 파디샤에게 하사받은 단검을, 조금 더 아래에 장검을 찼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신구라고는 없다.
표정이라 할 것 없이 차분하고 덤덤한 낯. 만사에 무관심해 보이기도 한다. 제 나이다운 청년다운 외관에 탄탄한 체격. 햇빛에 살짝 탄 피부. 양손에는 굳은살과 자잘한 잔상처가 자리한다. 오래되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것도, 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명한 것도 있다. 옷으로 덮여 보이지 않는 흉터들이 늘었다. 동작은 느릿하고 목소리는 나른하다. 자세는 올바르되 어깨에서 힘을 빼고 다닌다.
무덤덤한 / 명확한 안과 밖 / 관성적인 맹목 / 떠넘긴 의사결정?
확실히 어디에서건 적극적으로 나서는 부류는 아니다. 무리가 모여있으면 맨 뒷줄이나 적당히 중간 조금 뒤 즈음에서 묻혀있다. 그래도 이런 걸 선호한다 뿐이지 앞으로 나오는 걸 두려워하진 않는다. 쉽사리 놀라지 않고, 감정의 변화폭이 좁을 뿐더러 잘 드러나지 않아 좋게 말해 차분하고 침착하다 볼 수 있다.
매사 이런 식으로 굴 것 같지만 본인이 가깝다 여기는 사람들에겐 스스럼없이 잘 웃고 농담도 던진다. 거리감의 경계가 아주 뚜렷하고, 이전에 비해 더욱 세분화되었다. 내 가족, 내 친우, 내 동료, 제국과 나의 파디샤―제 선 안에 둔 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은 관성에 가깝다. ‘잃고 싶지 않다’는 감각은 목표보다는 안간힘이다. 시야에 보이는 영역이라도 감당해보려 필사적으로 손을 뻗는 것. 다만 멀다고 해서 불쾌감을 주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갈등을 피하고자 하며 예의와 존중의 의도를 내비친다.
시키면 한다! 그게 무엇이 됐든간에, 일견 불가능해 보이는 지시더라도 몸을 혹사시키고서라도 해내고야 만다. 해내지 못한다면 조언을 구하거나 다른 방도를 여러가지로 알아본다. 포기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야 고르는 선택지다. 다만 이 모든 행위에는 열정이 부재한다. 자신만의 기준이나 줏대 따위 없이 그저 하라 했기에 따른다. 목적, 목표, 혹은 신념 없이 그저 누군가 가리키는 대로 걸어갈 뿐이다. 즐겁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이라면 한다.
깊고 복잡한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했으나… ‘본래의 너는 생각이 많은 편이었을지도 몰라. 적어도 내게는 하려면 할 수 있지만 피하고 있다는 식으로 들렸거든.’ 친구라 불러본 적 없는 친우가 화내는 걸 본 뒤로, 이스락은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입 밖에 내는 건 별개의 일이더라도 상념의 잔가지를 쳐내지 않고 뻗어보기로 한다. 타인의 의사나 결정을 우선시하는 것도, 옆에 있는 사람의 선택을 따라하는 버릇도 여전하지만 전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게 되었다.
크게 변한 바 없는, 어쩌면 당신이 알고 있을 이스락.
1. 알-파티하 제국, 아우다리크 출신
- 군 소속 병사로서 문지기 업무를 맡았던 부친은 12년 전 허리 통증이 심해져 은퇴했다. 모친은 인근 유리공예 공방에서 잡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중이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도 풍요롭지 않은 집안이지만 가정은 화목하다. 외동아들. 하나뿐인 자식이라 부모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 부친, 제레브 베예는 대단한 노력가로 오랜 시간 예니센을 동경해왔으나 타고난 재능과 신력의 부재로 일개 병사에 머무른 채 더 위로 올라가지 못했다. 이웃 주민들은 그의 이름을 들으면 비웃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식이 예니센에 들어갔으니 염원을 이뤄준 셈이 아니겠느냐며 축하를 건넸다. 실제로 이스락이 처음 징조를 발현했을 때, 제레브는 대단히 기뻐하며 그를 곧장 궁정학교로 보냈다. 집안의 지원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기숙 생활을 하며 장학 제도의 도움을 쭉 받아왔다. 떠나기 전 어머니가 무사안위를 기원하며 쥐여준 장신구는 전투에 나가지 않을 때만 검집에 둘러감고 다닌다.
2. 궁정학교 졸업 이후 7년
- 1393년, 정식 예니센으로 선발된 이후 성국-제국 접경지(사르디카) 인근의 제 1 제마아트 부대로 배치되었다. 1396년, 접경지의 분쟁이 심화됨에 따라 파견된 베이릭 부대 휘하에서 국지전에 동원되었다. 이후 약 4년간 크고작은 전투에 참전하였고, 몇몇 작전과 7여 년간 근속한 이력을 토대로 공을 인정받아 1399년 9월, 베이릭 제 7 부대로 변경 배치되었다. 1400년 현재, 콘스탄티노파 대공의회가 베이릭으로서의 공식적인 첫 활동인 셈이다.
- 공로를 인정받게 된 대표적인 계기는 1399년 2월의 ‘에안쿠르 평야 야습 작전’이다. 에안쿠르 평야는 카엘루마 방면과 조금 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넓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개활지로 사람 키 높이의 들풀이 무성히 자라나있다. 제국의 국경에서 평야를 가운데에 끼고 더 나아가면 평야의 이름을 딴 에안쿠르 숲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나무와 수풀이 우거져있다. 여기에 카엘루마의 2개 소대가 물자와 함께 잠복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고, 이에 알-파티하는 1개 분대를 조직해 보낸다. 주요 목적은 정찰이되 사실로 판명되면 분대원 판단 하에 적절히 행동하라는 지시와 함께였다. 본인을 포함한 예니센 셋, 일반 군인 다섯과 파견된 분대는 소대의 존재를 확인한 즉시 물자를 불태우고 퇴각했다. 그러나 퇴각 중 동료 예니센의 실수로 위치가 발각되었고, 에안쿠르 평야에서 수차례 접전이 일어났다. 절대적인 수의 부족으로 몰이당한 분대는 그대로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이틀 뒤, 이스락은 의식을 잃은 예니센 둘, 일반 군인 셋과 두 구의 시신을 끌고 부대로 복귀했다. 사망한 둘을 제외하고 전원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물자 소각 및 적 소대 절반의 목숨을 앗았다는 임무의 성공을 보고하고 나서야 이스락은 기절했고 사흘 뒤에 의식을 차릴 수 있었다. 이 작전으로 인해 보급이 끊긴 인근의 기사단이 지역에서 철수했으며, 작전에 참여한 분대원들은 모든 공을 이스락에게 돌렸다.
- 제마아트로 복무하는 동안 사적인 물품들은 작은 함에 전부 몰아넣어 두고 다녔다. 유리조각 장신구나 나무색 식기, 묵주 및 머리끈 등을 쌓고 최상단에는 미리 적어둔 유서를 놓은 뒤 뚜껑을 덮었는데, 작전에서 돌아온 이후에나 한번씩 열어보고 자주 확인하진 않았다. 대공의회 소집으로 콘스탄티노파로 향하는 길에도 가져왔다.
3. 기타
- 그 모든 일과 시간이 지나갔음에도, 간격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재회한 대공의회 일원들을 대하는 태도는 7년 전과 비슷하다. 호칭도 그대로다. 다만 성국-제국 접경지 부근 분쟁과 관련된 주제에서는 지극히 사무적으로 임한다.
- 한낮에는 이따금 햇살 아래 멍하니 시간을 보내거나 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식사 시간을 버리고서 잠을 자기도 한다. 피치 못할 상황에 졸음이 침범하는 경우 억지로 간신히 깨어있는데, 이때 수면 부족인 마냥 눈밑 그늘이 짙어지곤 한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아무 곳에나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 잠깐 동안 눈을 감고 있는 습관이 있다.
- 할 것 없을 때 나무토막을 깎는 취미가 생겼다. 쉴 적 동료가 하는 걸 보고 따라하기 시작했는데, 나름 손재주가 있어 알아볼만한 형태다.
- 시야 바깥의 갑작스러운 접촉에 날카롭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반사적으로 손을 쳐내거나 검을 움켜쥐다가도 상대를 확인하면 다시 느슨한 낯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