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착의
(익명의 지인 커미션)
리본과 함께 땋은 갈색머리 / 금안 / 왼쪽 눈가의 점 / 푸른 리본 / 부지깽이
- 작은 체구에 유순한 인상은 타고난 것이라지만 입가의 애매한 미소는 분명 자의로 걸치고 있다. 저 나름대로 친근하게 보이려는 노력이라는데 타고난 부분으로 충분하지 않나? 어느 누가 와서 봐도 위협적인 외형은 못되니 말이다.
- 성례의를 흠 없이 차려 입은 중에 눈에 띄는 구석이라면 옆구리에 매달린 부지깽이다. 이게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종종 무해함을 피력하는 데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는 말이 괜히 존재하는 게 아니다.
- 등대의 돌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린 덕분에 보기보다 단단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여있으며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를 희미한 화상자국도 군데군데 남아있다.
- 금속으로 된 부지깽이는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텔레스코픽 구조. 기존에 사용하던 측량도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특별히 제작된 물건으로 휴대가 용이하다. 성례의 허리띠 안쪽에 부지깽이를 매달고 다닐 수 있는 끈이 있어 평소에는 허리춤에서 달랑달랑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끝부분은 최대한 뭉툭하게 만들었다.
품행
요령 없는 끈질김 / 어리숙함 / 골몰하는 너그러움
단순히 성실하다고 축약하기에 안비타는 진득하고 미련한 구석이 있다. 타고난 성정과 어린 날의 교육이 만든 결과물에 요령 없음이 더해져 소년의 단단한 부분을 구성한다. 그런 면모가 평가하는 입장에선 꽤 긍정적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실제로 대공의회 파견 인원에 선발된 가장 큰 이유였다.
물론 또래 사이에서 평가는 다른 법이다. 왜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악의는 없는데 눈치가 모자라거나, 쓸데 없이 진심이라 분위기를 요상하게 만들고 마는 사람이… 본인은 아직 이 문제를 자각하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고집스럽거나 딱딱한 분위기를 풍기진 않는다. 구태여 불화를 만들지 않고, 다수나 대표의 의견에 동조하는 등 공동체가 원활하게 굴러가는 쪽에 초점을 맞춘다. 그 과정에서 의사 표현이 약해지는 건 별수 없는 일이겠지.
유년시절을 폐쇄적인 환경에서 보냈지만 결국 르타교의 신도인 덕분일까. 많은 부분에 있어 포용적이며, 더 나아가 이를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상황이 잘못되었을지언정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개인의 평화에서 나아가 타인의 평화를 이루길 바란다. 깨어있는 밤에는 사위가 캄캄하여 들여다볼 것이라곤 자신의 내면뿐이니 일찍이 성찰과 명상을 이어온 셈이다.
환경과 달리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모양인지 소년은 여전히 높은 탑 위에서 화로를 지키는 게 전부인, 그 고요하고 분주한 날들에 머무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세계는 소년을 기다려줄 것인가?
이야기
[ 출신 / 성장배경 ]
- 자르부미의 등대, 타랑메나르(Tarangmeenar)
- 120m가 넘는 높이를 자랑하는 견고한 건축물. 꼭대기에는 거대한 반사경이 있어 햇빛과 불빛을 반사해 바다를 비춘다. 말과 사람이 오를 수 있도록 나선형의 길과 계단이 나 있으며, 내부에는 연료 따위를 저장하는 창고와 다수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방이 존재한다.
- 아탄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정황은 있지만 명확한 기록은 없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1세기경 화재가 발생하여 한 차례 보수가 진행되었다는 것뿐. 그 때문인지 일부 장식에서 당시의 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 목적을 가진 이들(수양을 위해 찾아오는 브라민, 관측 기록물을 열람하기 위해 찾아오는 학자 등)과 정해진 날짜에 물자를 운반하는 인원을 제외하면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다. 등대 내의 시설로 숙식이 가능한 덕분도 있고, 안전을 위해 출입 가능한 사람을 제한한 탓도 있다.
- 고요한 파수꾼, 샨프라하리
- 본래는 타랑메나르를 관리하는 이들의 통칭이었으나 핏줄을 따라 세습되면서 자연스럽게 가문으로 자리 잡았다. 그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등대지기라는 업의 특성 때문인지 지역 내에서 입김이 강하지 않다. 인내를 소양으로 삼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성실한 일꾼이라는 게 대외적인 인상. 그중에서도 뱃사람들은 등대의 덕을 보고 있기 때문에 샨프라하리의 이름을 존중하는 분위기다.
- 등대를 관리하기 위한 비용은 국가의 예산, 즉 지방을 관리하는 귀족에 의해 편성된다. 경우에 따라 터무니 없이 적은 예산을 받기도 하지만, 타랑메나르는 이들의 자부심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유지해왔다.
- 인력이 많이 드는 일이다보니 대부분의 샨프라하리는 타랑메나르를 벗어나지 않지만 드물게 가업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간 이들도 있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는 안비타의 손위인 디크샤가 그 경우였다.
- 그들은 등대 전반의 관리와 더불어 천체와 바다, 날씨 등을 관측해 14일 주기로 기록한다. 이를 위해 14일 동안의 변화를 기억하는 기록 담당관이 따로 있으며, 기억의 용이성과 지면 활용을 위해 자체적인 기호로 이것을 남겨왔다.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규칙성 있는 암호처럼 보이는 정도. 단, 과거의 화재로 그 이전 기록은 대부분 소실된 상태다.
- 기록과 경험, 구전을 통해 쌓인 노하우로 날씨를 예측하고, 때에 따라 이를 알리는 것 또한 그들의 업무다. 보통 등대 바깥에 큰 깃발을 달아 표시하는데 색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꽤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지만 최근에는 이변 때문에 빗나가기도 하는 모양. 그러나 이들에게 있어 이변이란 또 다른 관측 대상일 뿐이다.
- 그래, 설령 이 바다 또한 베파트해와 같이 되더라도. 샨프라하리는 불을 밝히고, 관측하며, 기록할 것이다.
- 불을 지키는 소년
- 타랑메나르 꼭대기에 위치한 화로는 밤 내내 타올라야 하기 때문에 전담 인원이 배치된다. 그들은 더 뛰어난 인내심과 어둠에 지지 않는 대담함, 명민한 시야를 갖출 것을 요구받는다. 안비타는 어릴 때부터 성실함과 끈기를 인정받아 밤을 밝히는 일을 물려받았다.
- 그의 형제인 디크샤 샨프라하리가 가업을 뒤로하고 떠난 탓에 안비타는 훨씬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몸가짐을 바르게 할 것, 큰 소리를 내지 않을 것, 르타교의 교리를 잊지 않을 것.
- 캄캄한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 파도가 부서지는 울림, 뺨과 코끝에 맺힌 열기와 그을음… 소년의 세계는 온통 그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엄격한 부모님의 지도 하에 타랑메나르를 벗어난 일이 드물었고 그마저도 심부름을 위해 인근 항구를 오가는 게 전부. 안비타는 그 좁고 견고한 세상에서 평생을 살 줄 알았다.
- 법력을 깨우친 후엔 다루는 법을 익히려 가장 가까운 사원에 머물렀지만, 그 직후 타랑메나르로 돌아왔다. 이후에도 종교적인 이유로 사원을 찾아 머물곤 했지만 타랑메나르를 완전히 떠나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 대공의회
- 파견 인원에 선발되었을 때 안비타는 이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라 생각하고 수긍했다. 잘 해낼 자신이 있었는가 하면 그건 아니었지만… 자신이 선발된 데에는 더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사정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 새로운 곳으로 떠난다는 설렘보다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늘 자신의 곁을 채우고 있던 불꽃과 사람들이 그리울지도 모르겠다는 아쉬움이 더 크게 남았다. 등대에겐 달아날 다리가 없으니 나는 끝내 이곳으로 돌아올거라고. 꼭 그렇게 믿고 있다.
[ 안비타 ]
- 법력
- 초반에는 주로 불의 형상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그의 법력을 불에 비유하자면 균일한 화력과 긴 지속시간에 강점을 갖는다. 이를 다양하게 응용하는 방면에 있어선 수련이 더 필요하겠지만 법력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부터 기본이 갖추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말투
- 공부 머리가 없는 편이라 성국어를 배우느라 고생깨나 했다. 그 과정에서 어휘력이 부족으로 누군가에게 무례를 끼치지 않도록 정중한 표현 위주로 익히다 보니 아예 입에 붙어버린 모양. 이 때문에 성국어로 대화할 땐 본인이 의도한 것보다 나긋하고 공손해지는 편이다. 여담이지만 모국어인 사라시어를 사용하면 엄청 빠르게 말할 수 있다.
- 사원을 오가며 신두어를 익힌 덕분에 성국어보다는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
- 호불호 / 취미 / 특기
- 사실 이렇다 할 취향이 없다. 타랑메나르의 생활은 빈말로도 유복하지 않았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불행해질 뿐이니까. 그런 면에 있어 안비타는 보기 드문 바닷새를 발견하는 것만으로 기뻐할 줄 아는 소박한 인간이다.
- 특기는 오래 앉아 있기, 잠들지 않고 깨어있기, 불이 꺼지지 않도록 유지하기… 더 나열할 필요는 없겠지. 취미도 그 고만고만한 선상을 유지하고 있다. 무언가 관측하고 기록하는 것 자체를 즐겨 자연과학 계열과 수학에 흥미를 두고 있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