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질〉
손에 쥔 풀무로 바람을 일으킨다.그러니 어찌 아니 즐거울 수 있을까.
후드가 벗겨진다. 불을 닮은 적색 머리카락, 사자 갈기처럼 생긴 뒷머리가 바람 중에 거칠게 흩날린다. 그 궤적이 만들어내는 모양새는 시시각각 달라져서 그의 끔찍하게 변덕적인 성격 마냥 종잡을 수 없이 마구잡이로 흐트러지고는 했다. 머리 꼭대기 일부를 한층 더 붉게 염색했다. 시뻘건 염료를 골라내 고향 시장의 가장 솜씨 좋은 이에게 맡겼다고 했던가. 평범한 신두인보다 다소 짙게 그을린 피부를 지녔으며 얼굴을 이루는 살갗 정가운데 - 즉, 코 위에, 알-파티하의 문양을 문신으로 새겨두었다. 앞머리 아래에는 문신의 색과 엇비슷한 금색 눈이 자리한다. 호리호리한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공중에 흔든다. 옷과 장신구를 제하고 본다면 그는 마치 땅, 또는 나무 위에 불꽃이 새빨갛게 붙어버린 듯한 형상이다. 불이야!
호탕하게 웃고자 벌어졌던 입이 별안간 굳게 다물린다.
그리고 화마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초록색의 사제복이 몸을 감싼다. 왕국의 의상이 상체를 감싸고 그 끝단은 종아리 중간까지 부드럽게 내려온다. 와중에 신학교의 것도 섞어 착용해 뭇 구도자의 의아함 어린 시선을 받고는 했는데, 어깨를 감싸는 펠레그리나, 그 뒤쪽의 만텔로네, 금색 술과 함께 바람 중에 나부끼는 스톨레, 그리고 장식천까지, 성례의의 상하의만 빼고 전부 야무지게 챙겨 입는다. 팔레차는 “아, 그거? 수놓고 싶은 문양이 없어서- 그냥 버렸어.” 히죽, 기분 나쁘게 웃으며 키득거린다. 눈을 가늘게 뜨고 당신을 뚫어져라 살핀다. 이내 어머, 당신, 나보다는 옷 입는 감각이 부족한 모양이야, 제멋대로 중얼거린다. 옷가지들을 키와 덩치에 딱 맞게 갖춰 입는 편이며, 본국에서는 성례의의 망토 대신 화려하게 염색하고 수를 놓은 색색의 천들을 사제복 위에 휘감고 다녔다. 사바타가 지어준 베일, 안자가가 남는 천들을 조각조각 기워 만들어낸 숄, 두르슈리가 바느질한 망토 등, 지금도 그의 가방을 뒤져보면 그 천들이 어지러이 자리하며 그는 내킬 때마다 그것들을 신학교의 신성한 망토 위에 두르고 다녀 뭇 학생과 사제의 질타 섞인 시선을 받고는 했다.
아그다는 턱을 치켜 올리고 걷는 자세를 고수한다. 그다지 큰 키도 아니면서 내려다보는 듯한 각도의 눈길을 자주 보내오며 체구는 마른 편이다. 뻔뻔한 말투가 외국어 - 그는 성국 사람이 아니니 말이다. - 를 뚫고 문장마다 그 존재감을 거세게 세운다. 여유로우며 비웃음 섞인 미소, 머리카락을 넘기거나 삿대질할 때마다, 즉, 일상 중에 그 손짓을 통해 강조되는 과장된 우아함, 타인을 낮잡는 듯한 태도, 평소의 그는 교만을 형상화한 것만 같이 생겼다. 그러나 갑자기 표정을 지운다. 그저 가만히, 당신 곁의 허공을 노려본다. 그러나 갑자기 음울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갑자기 다정해진다. 부드러워진다. 그러나 별안간, 평소의 오만한 낯을 되찾는다. 그러나 갑자기 호의 섞인 몸짓을 이어간다. 춤이라도 추자는 듯이 잡아 끌던 손을 불현듯 거칠게 내친다. 그의 외견에는 여러 자세와 태도가 혼재되어 있다.
비가 불이 되어 내린다. 불이 비가 되어 내린다.
그 다양한 낯을 만들어내는 얼굴은 면밀히 뜯어 보면 졸려 보이는 인상에 가깝다. 반만 뜬 듯이 눈꺼풀이 다소 내리감긴 눈매 때문에 그런 걸까. 치켜 올라간 굵은 눈썹은 앞머리에 가려져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양쪽 귀에는 치렁치렁한 금색 귀걸이를 매달고 다니는데, 누렇게 도색되어 있으나 순금은 아닌 듯하다. 마찬가지로, 목과 (모든) 손목에 금색 목걸이며 팔찌를 둘렀다. 이 낡은 장신구들은 모두 금이 아니다. 그래도 그 밝음이 크게 퇴색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가 풀무질을 할 때마다 빛을 화려하게 반사하고는 한다. 네 개의 팔이 두 개의 풀무를 잡고 두 바람을 만들어낸다. 법력이 바람에서 비로, 비에서 불로, 또는 바람에서 불로, 불에서 비로 화한다.
반면 하반신은 수수하달지, 검소하달지, 사제에게 어울리는 차림새랄지 - 낡은 짚신과 수련의 줄기를 엮어 만든 발찌를 제하면 큰 특징이 없다. 손에 들고 있던 풀무들을 발 옆 땅바닥에 꽂는다. 망토와 사제복을 너풀거리며 앞으로 걸어간다. 법행으로 만들어두었던 두 팔에서 팔찌를 뺀다. 법력을 거둔다. 팔처럼 기능하던 나뭇가지 두 개가 옆구리에서 떨어진다. 양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린다. 불꽃이 비처럼 내려오는 하늘을 삿대질한다. 목을 젖힌다. 내내 미소를 머금던 입이 외침으로써 세 번째 바람을 토해낸다. 표정을 지운다.
“모든 이는 사제를 더욱 더 찬미하라!”
……자기자신에게 취하기라도 한 걸까?
안면은 움직이지 않고
깔깔, 새된 목소리로 웃음을 줄줄 내뱉는다.
[나한테 / 절해라 / 다양하게 / 심술궂은]
풀무들을 북과 채라도 되는 양 솜씨 좋게 흔들며 비파와 수금 소리에 귀 기울인다.
모든 악기가 일제히 울린다. 모인 이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춤추며 절을 올릴 시간이다.
나한테 / 자기중심적인, 탐욕스러운 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뭐야?! 내 죄를 나한테 묻지 마.”
파괴를 자초하는 짓에 거리낌이 없다.
신두에서 보내던 일상, 그는 그 평범한 생을 파(破)하고자 몸부림쳤다.
불살라라, 너 자신을 위해!
절해라 / 오만방자한, 교만한 불이 안하무인을 제멋대로 인도한다.
“혹시 알아? 내가 신의 화신일지. 르타교의 그 수두룩한 영웅들일지.”
신이 되고자, 드높은 이가 되고자,
타인의 ‘아그다 느부라마나자’에 대한 인정을 갈구한다. 그것이 그를 유지하므로.
비를 역행시키며.
다양하게 / 변덕, 변칙, 변화, 그는 빗물이 섞여 만들어진 잿물을 옷에 흩뿌렸다.
“도와줘? 내가 또…… 재주가 좀 많거든.”
으스대는 말투였으나, 사뭇 다정하게 말했던가.
춤추듯 몸을 돌린다. 강한 바람과 적색 머리카락 아래에 다시금 심술궂은 표정이 떠오른다.
아그다로서 일관되게
순환하는 화우(火雨) 속에 가지를 뻗어라.
누군가가 외쳐 묻는 목소리에 경쾌하게 답한다.
“그간 지은 업이 많아? 더 쌓아!”
안면은 움직이지 않고 깔깔, 새된 웃음을 줄줄 내뱉는다.
불 붙은 낙엽이 흐느적거리듯 신상 앞에 과장되게 엎드린다.
물론, 옆에 대공의회와 관련된 깐깐한 이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
같은 소절을 반복해 변주한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쳐 어깨 너머로 넘긴다.
몇 번째인지 모를 동작을 되풀이한다. 끝없이.
신 / 태어나다
“원래는 무희가 될까 했었지. 떠돌이 무희!”
과거를 논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다.
신두에서 보내던 일상, 그는 그 평범한 생을 입에 자주 올렸고 상기한 모든 정보는 그다지 비밀이 아니다.
지난 2년 동안, 당신은 아그다 느부라마나자에 대해 어디까지 알게 되었을까.
인간 / 의무와 업을 쌓다
“내가 꾼 꿈과 그 해석을 맞혀볼래? 해석만 맞히는 게 아니라, 꿈까지- 죄다. 어머, 자신 없어? 당신이 믿는 신께 부끄럽지도 않아?”
그의 현재보다는, 당신이 어제 꾼 꿈이 차라리 더 정돈되어 있을 테다.
결국 지금도 타인과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를 유지하므로.
꿈을 불태우며.
영웅 / 서사시를 쓰고 듣는다
“이변을 해결하는 난세의 영웅은 과연 누가 될까? 성황? 하하! ……그 누구도 될 수 없을 거야, 그런 건.”
건방진 지칭, 그리고 삐딱한 미래를 제멋대로 예언한다.
나무가 내일 자랄 씨앗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그다 느부라마나자, 바로 나 외에는 그 누구도 말이야! 으하하하!”
순환하는 업과 징벌이 불의 고리를 이룬다.
신두 왕국의 어떤 사원 마당,
허리를 젖힌 채
안면은 움직이지 않고 깔깔, 세찬 웃음을 줄줄 내뱉는다.
……동료 사제가 다가와서는 그의 귀를 붙잡아 끌고 간다.
지금도 같은 소절을 반복해 변주한다.
“마하라자에게 벌써부터 밉보이고 싶지는 않거든. 나는 아직 지지세력이 더 필요해.”
제가 바라는 사회를 만들 기반 - 즉, 정치적인 입지를 더 단단히 다지기 위해 내린 결정으로, 라데군다가 아그다 느부라마나자의 행보에 도움을 줄 가능성보다는 테레사 측의 기득권층이 대공의회 소속 브라민들에게 접촉을 시도해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모든 일은 연결되어 있으므로 - 아그다도 결국에는 뼛속 깊이 왕국 사람이다. - 그는 내심 테레사 쪽을 응원한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성국과의 인연을 통해 제게 무언가, 권력이나 재물이라도 굴러 들어올지…….
“……이상한 일이지. 뻔하지 않은 삶을 자유로이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려면, 뻔한 짓을 해야 해. ……짜증나! 그래도, 뭐…… 솔직히, 라데군다의 대처는 신두 사람 입장에서는 꽤 공포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어. 단정짓지 말라고? 싫어.”
〈풀무질〉
손에 쥔 풀무로 바람을 일으킨다.그러니 어찌 아니 즐거울 수 있을까.
머리띠가 흔들거린다. 불을 닮은 적색 머리카락, 짐승의 갈기처럼 생긴 뒷머리가 바람 중에 거칠게 흩날린다. 옛적보다 길이가 훨씬 더 길어졌다. 허리까지 떨어지는 머리카락의 일부는 때때로 - 타랑메나르의 등대지기가 묶고 다니던 것처럼 땋여져 있기도 했으며, 마가다와 자르부미의 부유한 이들 앞에 나설 때는 단정하게 정돈되어 금색 장신구에 꽂혀 있기도 했다. 현재는 그저 자유분방하게 풀어헤친 상태로, 콘스탄티노파 행이 완전히 결정되자마자 두피의 반절을 시원하게 바짝 깎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추측할 수 있을 만한 어떤 사소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그는 한 브라민의 7년 전을 떠올리며 심술궂게 웃었다.
뒷머리의 궤적이 만들어내는 모양새는 여전히, 시시각각 달라져서 그의 끔찍하게 변덕적인 성격 마냥 종잡을 수 없이 마구잡이로 흐트러진다. 머리 꼭대기 일부를 한층 더 붉게 염색했다. 시뻘건 염료를 골라내 하라데이의 가장 솜씨 좋은 이에게 맡긴다고 했던가. 평범한 신두인보다 다소 짙게 그을린 피부를 지녔으며 얼굴을 이루는 살갗 정가운데 - 즉, 코 위에, 알-파티하의 문양을 문신으로 새겨두었다. 앞머리 아래에는 문신의 색과 엇비슷한 금색 눈이 자리한다. 호리호리한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공중에 흔든다. 옷과 장신구를 제하고 본다면 그는 마치 땅, 또는 나무 위에 불꽃이 새빨갛게 붙어버린 듯한 형상이다. 불이야!
이마를 장식하는 푸른 머리띠는 테레사를 지지하는 성기사들을 모방하기 위해 착용했다. 이제는 입지 못하는 흑색 성례의 대신일까. 금색 눈동자 아래의 진한 그림자가 피로와 함께 뭉개진다.
부드럽게 웃고자 벌어졌던 입이 별안간 굳게 다물린다.
그리고 화마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초록색의 사제복이 몸을 감싼다. 이번 집결을 위해 제공받은 사제복을 제 취향대로 뜯어 고쳐 입었다. 허리의 금색 띠 아래에서 다리까지 이어지는 초록 천은 그 길이를 종아리까지 늘이고 끄트머리에 금으로 만든 장식을 호화스레 매달았다. 심지어, 표면에 마치 공작새가 떠오르는 듯한 금색 무늬를 솜씨 좋게 새겨놓았다. 와중에 몸 전체를 감싸는 천에는 비슈바카르마 각지의 수공예업자들로부터 ‘선물받은’ - 몇 개는 강도들에게서 강제로 빼앗아왔다나 뭐라나 - 각종 천을 이리저리 덧붙이고 기우고 이어두어 뭇 구도자의 의아함 어린 시선을 받고는 했다. 대표적으로, 오른쪽 어깨에 해당하는 부위에는 검은 천을 붉은 실로 박음질해두었다. 왜 그런 우스꽝스러운 차림을? “듣자 하니, 예니센이고 성기사들이고 다들 검정색을 좋아하는 눈치길래.” 이외에도 겹겹이 늘어진 천들과 더불어 썩 깔끔하지는 않은 차림새지만, 그 자신은 만족하는 눈치다.
갈색 신발은 짚과 엮어 발목에 단단히 고정하였으며 바지의 통은 평균보다 다소 넓다. 갈색 각반은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길이를 조금 줄이는 것으로 타협했다. 히죽, 기분 나쁘게 웃으며 당신을 본다. 이내 어머, 당신, 아직도…… 나보다는 옷 입는 감각이 부족한 모양이야, 제멋대로 중얼거린다. 옷가지들을 키와 덩치에 딱 맞게 갖춰 입는 편이며, 사바타가 지어준 베일, 안자가가 남는 천들을 조각조각 기워 만들어낸 숄, 두르슈리가 바느질한 망토 등, 지금도 그의 가방을 뒤져보면 그 천들이 어지러이 자리하며 그는 내킬 때마다 그 낡은 것들을 두르고 다녀 뭇 브라민의 걱정 어린 눈길을 받고는 했다. 곧 찢어질 것 같다며. 잘 좀 관리하지 그랬냐며.
아그다는 턱을 치켜 올리고 걷는 자세를 고수한다. 내려다보는 듯한 각도의 눈길을 자주 보내오며 체구는 마른 편이다. 뻔뻔한 말투가 다양한 언어 - 비슈바카르마에서 그가 사용하지 못하는 언어는 이제 없다고 보아도 된다. - 를 뚫고 문장마다 그 존재감을 거세게 세운다. 여유로우며 비웃음 섞인 미소, 머리카락을 넘기거나 삿대질할 때마다, 즉, 일상 중에 그 손짓을 통해 드러나는 우아함, 타인을 낮잡는 듯한 태도, 평소의 그는 교만을 형상화한 것만 같이 생겼다. 그러나 갑자기 표정을 지운다. 그저 가만히, 당신 곁의 허공을 노려본다. 그러나 갑자기 음울한 미소를 짓는다. 그러나 갑자기 다정해진다. 부드러워진다. 그러나 별안간, 평소의 오만한 낯을 되찾는다. 그러나 갑자기 호의 섞인 몸짓을 이어간다. 춤이라도 추자는 듯이 잡아 끌던 손을 불현듯 거칠게 내친다. 그의 외견에는 여러 자세와 태도가 혼재되어 있다.
비가 불이 되어 내린다. 불이 비가 되어 내린다.
그 다양한 낯을 만들어내는 얼굴은 면밀히 뜯어 보면 졸려 보이는 인상에 가깝다. 반만 뜬 듯이 눈꺼풀이 다소 내리감긴 눈매 때문에 그런 걸까. 치켜 올라간 굵은 눈썹은 - 이제는 좀 잘 보이는 편일까? 마른 뺨의 양옆, 양쪽 귀에는 치렁치렁한 금색 귀걸이를 매달고 다니는데, 누렇게 도색되어 있으나 순금은 아닌 듯하다. 한쪽 귀에 (제국산 몰약의 독점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가문의 - 즉, 북두칠성과 닮은 오아시스에서 왔던 그이에게 받은) 가넷 귀걸이를 가공한 붉은 귀걸이를 매달고 다닌다. 코걸이와 빨간 귀걸이는 그의 소유 중 유이한 진품이다. 한편, 목과 손목에는 당신에게도 익숙할 금색 목걸이며 팔찌를 칭칭 둘렀다. 이 장신구들은 모두 금이 아니다. 그래도 그 밝음이 크게 퇴색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가 풀무질을 할 때마다 빛을 화려하게 반사하고는 한다. 여덟 개의 팔이 네 개의 풀무를 잡고 네 바람을 만들어낸다. 법력이 바람에서 비로, 비에서 불로, 또는 바람에서 불로, 불에서 비로 화한다. 오른팔의 거동이 다소 불편한 듯, 움직임에 부자연스러운 지연이 있다. 그를 아주 자세히 뜯어본다면, 머리와 목만 빼고 몸 전체에 흉터가 남았되 특히 오른팔에 집중적으로 상흔이 많았음을 눈치챌 수 있을 테다.
손에 들고 있던 풀무들을 발 옆 땅바닥에 꽂는다. 천자락들을 너풀거리며 앞으로 걸어간다. 법행으로 만들어두었던 팔들에서 팔찌를 뺀다. 법력을 거둔다. 팔처럼 기능하던 나뭇가지들이 옆구리에서 떨어진다. 양손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린다. 불꽃이 비처럼 내려오는 하늘을 삿대질한다. 목을 젖힌다. 내내 미소를 머금던 입이 외침으로써 바람을 토해낸다. 표정을 지운다.
“모든 이는 다함께! 즐겁게 살아라!”
……취하기라도 한 걸까?
안면은 움직이지 않고
깔깔, 새된 목소리로 웃음을 줄줄 내뱉는다.
곧 배고프다며 배를 움켜잡았지만.
[내 말을 / 들어라 / 다양하게 / 심술궂은]
풀무들을 북과 채라도 되는 양 솜씨 좋게 흔들며 실실 웃는다. 도적들에게서 빼앗아온 무기를 휘두른다.
모든 악기가 일제히 울린다.
“당신, 먹을 건 있어?”
불의 신의 축일이 코앞이다. 비가 그치지 않아 큰일이지만,
모인 이들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춤추며 절을 올릴 시간이다.
내 말을 / 자기중심적인, 탐욕스러운 나무가 뿌리를 염려한다.
“뭐야?! 내 죄를 나한테 묻지 마. 그럴 시간에 가서 식사나 해.”
파괴를 자초하는 짓에 거리낌이 없다.
신두에서 보내던 일상, 그는 그 평범한 생을 파(破)하고자 몸부림쳤다.
불살라라, 너 자신을 위해!
들어라 / 오만방자한, 교만한 불이 안하무인을 제멋대로 인도한다.
“귀족들이 나를 참 좋아해. 저 사람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지? 말 안 해도 알아.”
한층 더 오만해진 이가 음식이나 돈 좀 나눠달라며 손짓한다. 눈보라 속을 한참 걸어왔다나 뭐라나.
타인의 ‘아그다 느부라마나자’에 대한 인정을 갈구한다. 그것이 그를 유지하므로.
비를 역행시키며.
다양하게 / 변덕, 변칙, 변화, 그는 빗물이 섞여 만들어진 잿물을 옷에 흩뿌렸다.
“도와줘? 내가 또…… 재주가 좀 많잖아.”
으스대는 말투였으나, 사뭇 다정하게 말했던가.
춤추듯 몸을 돌린다. 강한 바람과 적색 머리카락 아래에 다시금 심술궂은 표정이 떠오른다.
아그다로서 모순되게
순환하는 화우(火雨) 속에 가지를 뻗어라.
누군가가 외쳐 묻는 목소리에 경쾌하게 답한다.
“그간 지은 업이 많아? 더 쌓아!”
코웃음친다. 기득권, 그들의 암묵적인 전략, 그들의 지위, 제 처지, 이 모든 게 그는 역겨웠다.
불 붙은 낙엽이 흐느적거리듯 신상 앞에 과장되게 엎드린다.
그 몸짓에는 단 한 점의 거리낌도 엿보이지 않는다.
장대비 아래에서 잔해를 태운다.
머리카락을 손으로 쳐 어깨 너머로 넘긴다.
몇 번째인지 모를 동작을 되풀이한다. 끝없이.
신 / 태어나다
“성국 사람들을 보며 내가 깨달은 게 있어. 국적보다는 힘이 제일이다.”
과거를 논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다.
다섯 번째 바람: 그는 고향에 가지 않은 지 몇 년이 지났는지 세다가 포기했다. 느부라마나자 일가는 아그다가 불의 신만큼 불멸하길 바랐다. 아그다는 자신이 가을에 태어난 마을에 대해 이렇게 서술했다. “남쪽으로는 마을에 딱 달라붙은 산맥이 그 서늘한 기운을 흘려대고, 비스듬히 북서쪽을 바라보면 저 멀리 바다가 어렴풋이 보이는 황폐한 산골 마을이었어. 당신, 이렇게 말하면 알아듣기는 해? 뭐… 하여간, 산에 반 걸쳐져 있고 그 아래쪽 평지 아닌 평지에 반 정도 걸친 내 고장에서 내가 주로 가던 곳은 마을 꼭대기의 사원이었어. 거기에서 내가 태어났다고 했거든, 우리 아빠가.” 사원으로부터 대각선으로 비탈길을 쭉 따라가노라면 마을의 죄인들이 갇힌 감옥이 나왔다.
마을: 데바살라야 산맥 북서부 끄트머리, 신의 거처의 끝 중의 끝에 위치한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산 두어 개를 넘어가면 캄발라에 들어서게 된다는 점이 그나마 특징적인. 그럴듯한 행정적 지원은 전무했으나 당시 아그다의 걸음으로 이틀 정도 걸어가면 지방행정관이 기거하는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긴 했다. “비가 자주 오는 편은 아니었어. 어디까지나 신두 남부 기준으로. 시르쉬, 그러니까, 북부 기준으로는 - ……당신이 알아오는 건 어떻겠어. 귀찮아졌단 말이지.”
사원: 르타교의 세 주신 중 파괴를 관장하는 신을 모시는 대중적인 - 그리고 아주 작은, 늙은 사제 한 명이 하품하며 자리를 지키는 사원이었다. 그는 명상을 핑계로 아그다가 사원에서 자고 가건 음식을 먹건 신경쓰지 않았고, 그렇게 사원은 아그다의 가장 그럴듯한 집 중 하나가 되었다.
출생: 지금도 아버지가 살아있긴 할지…… 아그다는 따로 소식을 알아보지 않았다. 행보에 방해가 되면 됐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듯해 더더욱. 그는 바리였으며, 22년 전 친구였던 바리를 그의 무구로 살해한 뒤 자수했다. 그가 청한 형벌은 고향 마을의 감옥에 영원히 투옥되는 것이었고, 당시 지역을 관리하던 행정관은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같은 해 행상인이었던 모친이 신두 남부 지역에서 때 아닌 폭풍에 휘말려 사망했다. 그 무렵부터 ‘이변’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음은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 되었으나, 신두 왕국 전역에 흔한 자연현상이 그의 죽음의 원인이었노라 - 22년 전의 느부라마나자 일가는 유해와 함께 전해 들었다. 그 뒤로 5살이 될 때까지 아그다는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조모가 타계한 뒤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며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가족: 잡담을 나눌 때 가족과 관련된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당신이 만약 그와 해당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다면, 아비를 매우 싫어한다는 것, 전생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업과 윤회에 대해 논할 때면 비웃음 섞인 낯이 된다는 것 등을 쉬이 알 수 있으리라.
여섯 번째 바람: 마을의 소식을 듣지 못한 것도 꽤 오래되었다. 일부러 알아보지 않는 것은 아니고, 일종의 두려움이 있는 모양. 마을 사람들은 그가 배를 심하게 곯길 바라지 않았다. 영유아가 쉬이 살아남을 수 없는 마을이었지만 어려서부터 기운이 참 거셌던 이 아이는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믿었고, 그래서 음식과 옷을 나눠주었다. 기도를 올리며 말을 가르쳤다. “다 망했으면 어떡해? 다 떠났으면 차라리 다행이지, 굶어 죽었으면 어떡해?”
폐허: 과거에는 산맥을 건너오는 사람들을 위한 휴식처가 든든하게 마련된 마을이었다. 여행객, 사제, 상인 등이 마을을 자주 오갔고 역사가 변함에 따라 마을 또한 쇠퇴했다. 지금은 산장의 낡은 터와 시장의 돌바닥만이 쓸쓸하게 평지로 이어진다.
아이: 아그다보다 나이가 많은 두 아이가 마을에 있었다. 그들은 셋이서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허드렛일을 도왔고 마을의 공동 육아 속에서 남매로 자랐다.
“내 친구들? 아, 걔네? 가족 같이 잘 지냈지. 그런데 옛적에 죽었어. 말 나온 김에, 당신 나랑 꽃이나 꺾으러 갈래?” - 하라데이, 이름 모를 주민의 장례식에서, 아그다 느부라마나자曰.
방언: 당신이 만약 그와 말을 섞어 보았다면, 당신이 어느 곳에서 왔든지 쉬이 알아차릴 수 있었으리라. 그는 말씨에 방언이 세게 묻어나온다. 사라시어와 신두어를 말할 때도, 성국의 언어를 말할 때도. 다만 특이한 점은 방언이 신두 북서부에 한정되지 않고 이곳저곳 뒤섞여 있다는 점인데 그가 흘린 이런저런 정보를 모아보면 - 그는 어릴 적에도, 신학교의 수확철에도, 최근에도 여러 곳을 떠돌며 살아온 모양이다. 그러나 동행인이 있었던 적은 손에 꼽았으며 그가 이야기를 가장 많이 꺼내는 동행인들은 그 남매, 사바타와 두르슈리 뿐이다. 마가다와 자르부미에서는 되도록 정석적인 어휘를 구사하고자 노력한다. 높으신 분들이 그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대장간: 아그다가 홀랑 태워먹으며 징조를 깨우친 그 대장간은 아그다의 나이 14살 때 르타교 사제들의 지원으로 복구되었다.
일곱 번째 바람: 하라데이로 떠났다. 그는 우기에는 왕국 이곳저곳을 활보하며 이변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쓴다. 주로 활동하는 지역은 캄발라와 하라데이 일대이며 하라데이의 사원에 적을 둔다. 건기에는 마가다나 자르부미 중심 도시의 권력자들과 어울린다. 그러나, 그 자신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라고 분류하는 건 또 아닌 모양이다.
호신: 딱 봐도 화려해 보이는, 그리고 홀로 다니는 브라민을 노리는 도적은 많았다. 형편 없이 말라 보였으므로 더더욱. 그런 이들에게는 평균 5개의 칼날이 날아들고는 했는데…… “매번 검술 연무장에 틀어박혀 있던 그 인간들이랑 싸우면, 내가 몇 분이나 버틸 수 있을지 날이 가면 갈수록 궁금해지고 있어.”
이동: 자르부미에서 하라데이까지 오고 가려면, 산맥을 통과하건 배로 가건 왕복 300일~400일 정도가 걸린다. 이에, 아그다는 걸어가면 40일 정도 걸리는 거리를 단번에 이동하는 법행에 본의 아니게 능숙해졌다. 다만… 이 법행은 한 번 사용하면 사흘 정도는 꼼짝 않고 걷기만 해야 하는 부작용이 있으며, 동행인이 있을 시 이동 가능한 거리가 ‘40일 거리’가 ‘20일 거리’로 줄어드는 정직한 면모 또한 지닌다.
14살 가을, 시르쉬의 어느 르타교 사원에 정식으로 입적한다. 그 해 여름 어떤 만트리의 곳간과 저택의 3분지2가 불에 송두리째 탔다는 소문을 만약 당신 또한 신두 북부에 있었다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여덟 번째 바람: 캄발라 사람들을 그 지역 안에서 최대한 빼내오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신두 사람들의 성미를 잘 알기에, 거주민들을 최대한 지원하는 것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더불어, 하라데이~캄발라 지역에 산재한 광석을 틈날 때마다 주워와 사원의 창고에 쌓아둔다. 만일을 대비해 광석들은 최대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성국과 제국의 연구자들이 왕국에 올 때마다 슬쩍슬쩍, 당신의 소식을 묻고는 했다.
신두에서 보내던 일상, 그는 딱히 비범하지 않은 생을 살아왔다. 출세를 했는가, 집을 구했는가, 토지를 샀는가, 무엇을 했는가……. 관직조차 얻지 못하고 그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브라민이 되었을 뿐이다.
지난 7년 동안, 당신은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인간 / 의무와 업을 쌓다
“내가 꾼 꿈과 그 해석을 맞혀볼래? 해석만 맞히는 게 아니라, 꿈까지- 죄다. 어머, 자신 없어? 왜!”
그의 현재보다는, 당신이 어제 꾼 꿈이 차라리 더 정돈되어 있을 테다.
다섯 번째 꿈: 1393년, 대공의회가 와해된 이후 자르부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베파트해로 향했다.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데 한 번 보고 오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냐며. 듣기로는 얼마 가지도 못하고 배가 난파되어 선원들과 함께 헤엄쳐 돌아왔다고. “……전원 생환했잖아. 그러면 된 거지, 뭐…….” 그는 세계로부터 분리되지 못한 일개 인간 하나일 뿐이다.
1394년: 신두의 마하라자는 성국 그리고 제국과 무역을 계속해왔다. 당신, 혹시 성국 또는 제국의 항구에서 법행으로 잘 감춰두었으나 어딘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지는 행인을 본 적은 없는가. 그는 밀항한 브라민이자 - 카엘룸인, 또는 신두인이었다. 헤자즈어는 아직 완벽히 익히지 못해 제국 사람인 척은 도무지 시도하지 못했다나 뭐라나…….
1395년: 마하라자의 내부 도로 정비 공사가 시작되며, 그는 성국과 제국의 이들을 점점 잊어갔다. 당신의 호불호에 대한 기억보다는 땅을 파내다가 쓰러진 이가 당장 먹을 수 있는 것을 찾는 게 더 중요했다. 그는 변동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건기에 보고했으나, 이듬해 우기, 그다지 변하지 않은 실정에 실성한 듯이 웃어댔다.
1397년: 독립 전쟁의 소식을 듣고 예니센들을 걱정하였으나, 캄발라 근처에서 사자에게 오른팔을 크게 다쳤다. 당시 발생한 이변(폭풍)과 저체온증 등으로 인해 기절, 응급처치가 늦어 팔을 회복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무리 법행에 더 능숙해졌다 하더라도 그는 치료와 관련된 법력의 운용에는 상대적으로 미숙했고 인체의 구조에 대해 알고 있는 바가 적었다. 거동은 가능하지만 잔떨림, 경직, 동작의 지연 등이 발견된다. 다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는 팔을 여러 개 제작해내는 법행에는 능했다. 일상생활 중에 아주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1398년: 만약 그를 이때 만났다면, 술을 앞에 두고 ‘나라를 타아카트 광산으로 쓰는 건 정말이지 반겨주질 못하겠는 사고방식인데…….’라고 중얼거리는 왕국인이자 캄발라의 사제를 볼 수 있었을 테다. 과도한 혼란은 죽음이라는 질서를 낳는 법이기에.
1400년: 점점 침체되던 낯을 펴고 콘스탄티노파로 즐겁게 달려갔다.
전반적인 생활: 그는 하라데이의 다양한 언어 사용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며 욕설을 가장 먼저 배웠다. 행인이 성미 더럽고 괴팍한 사제를 찾노라 말하면, 하라데이의 모두가 그 행인을 아그다에게 잘 안내해주었다. 바람 잘 날 없는 지역에서 바람 잘 날 없는 성질로 잘 살아온 모양. 최근에는 상단들이 점차 적게 오는 것을 불만스레 여기고 있었다.
전반적인 사교: 귀족이 우아하고 친절한 사제를 찾노라 말하면, 사원의 사제들은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그를 아그다에게 잘 인도해주었다. 그는 이제 언행을 나름 ‘잘’ 다듬는다.
전반적인 설법: ‘변동’이 발생한 지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그리고 높으신 이들과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일반 국민의 다양한 교육의 기회 보장, 시르쉬와 캄발라 지역 지원 확대, 자아 개념의 개혁, 가변적이고 유연한 공동체, 계급의 타파, 신과 윤회, 가족과 우미카로부터 자유로운 ‘나’의 재구성, 생득적인 역할의 파괴, 해탈 개념의 재정립, 이기심과 탐욕의 장려 등 - 을 간접적으로 주장하고 다니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그의 활동은 창조, 파괴, 유지 중 파괴에 극단적으로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여섯 번째 꿈
재산: 금은보화는 물론이요 3국의 온갖 화폐를 긁어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재물을 탐할 ‘안전한’ 기회가 눈에 들어오면 바로 손이 나간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선물’을 늘상 요구하고 있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나 그거 줘.”와 같이 불쑥 말한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직접 만든 장신구나 공예품, 신상 등을 내밀며 물물교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긁어모은 돈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에 대해 그는 마가다와 자르부미 방향을 가리켜 보이고는 했다. 가끔은 캄발라 방향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는 뱀과 공예품들을 좋아한다. 이제는 신상들을 꼴도 보기 싫어하지만, 돈을 벌 수 있는 주요한 수단이기에 자주 만들어내는 듯하다. 사적 자금이 궁할 때면 직물들을 팔고 오기도 했다. 혹은…… 다른 비밀스러운 수단을 사용하거나.
일곱 번째 꿈: 나무는 왜 불에 타는가? 물은 왜 불이 될 수 없는가? 인간은 왜 팔의 개수를 자유자재로 늘리고 돈을 창조해낼 수 없는가? 사람은 왜 죽는가? 우미카와 윤회로부터 자유로운 왕국을 꿈꾸는 것은 반역인가?
풀무: 그는 풀무 열 몇 개를 짐가방에 넣어 왔다. 주로 들고 다니는 건 허벅지 어드메에서 흔들거리는 - 허리의 가죽 끈으로 매단 갈색의 풀무 네 개다. 만약 당신이 이 풀무를 만져봤다면 - 매우 가벼우며 재료의 소재가 그다지 썩 좋지는 않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으리라. 대공의회 시절보다도 더한 경량화를 거쳤다.
법행: 세상의 근원과 이치에 닿고자 발버둥친다. 동시에, 관심이 없다는 양 군다.
습관: 우기는 그의 계절이다. 풀무를 하늘로 향한 채 바람을 불어넣는다. 구름을 흔들어 불로 만든 비를 땅에 쏟아붓는다. 물방울을 불씨로 바꾼다. 평범한 비보다는, 불꽃으로 만든 호우가 더 멋지다며 주장하며 - 취향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실상: 변환, 붕괴, 분해, 폭발, 살생 등 무언가를 바꾸거나 없애는 데에는 능하지만… 대공의회 시절, 눈치챘을까, 그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법행은 쉽사리 잘 시도하지 않는다. 직접 만들었으면 만들었지.
여덟 번째 꿈: 지금도 춤을 좋아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불쑥불쑥 악기를 연주해달라거나 노래를 해달라며 청한 - 명령한 - 적이 많았다. 배워보고자 하는 생각은 있었던 듯하나…… 글쎄, 성질머리가 급해 죄다 학습 도중에 그만뒀다는 모양이다.
호불호: 호 - 향이 강한 음식, 화려한 색감이나 무늬, 비 오는 날, 숲, 돈 등 | 불호 - 귀족, 화재, 민무늬, 강요, 잔소리, 등등 …… 너무 많다.
브라민: 만약 당신이 그간 신두에서 그를 본 적이 있었다면, 당신은 그가 평소에 ‘조각나고 바느질한, 화려한 패턴의’ 옷을 선호하는 취향이 있음을 알 가능성이 높다. 물론, 수입한 옷가지며 시르쉬와 마가다 등 각지의 의복들을 마구잡이로 섞어 입은 적이 많다는 것도. 하루는 카엘루마 사람처럼 보이고, 또 다른 하루는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차림새였다가, 또 어떤 날에는 한 장의 천으로 이루어진 평범한 옷을 걸친다. 종합하자면, 우기와 건기의 그는 어깨 위에 복잡한 패턴의 초록색 천을 길게 걸치는 것 외에는 딱히 브라민다워 보이지 않았다.
호칭: 많은 형태로 불릴수록 더 많이 좋아한다. 기본적으로, 당신이 무어라 부르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최근: 근래 반복해 꾸는 어떤 꿈이 있는 모양이다. 누군가가 말한 대로, 예지몽일까?
결국 타인과 어울려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를 유지하므로.
꿈을 불태우며.
영웅 / 서사시를 쓰고 듣는다
“이변을 해결하는 난세의 영웅은 과연 누가 될까? 테레사? 하하! ……그 누구도 될 수 없을 거야, 그런 건.”
건방진 지칭, 그리고 삐딱한 미래를 제멋대로 예언한다.
세 번째 불: 이변을 종식하고자 늘 이를 빠득빠득 갈고 있지만, 점점 지쳐가는 듯하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났대? 앞으로 어떤 이변이 더 발생할까. 제국과 성국은 또 무슨 짓을 저지를까……. 피해가 큰 지역을 원래대로 돌려낼 방안은 - 아, 그래, 우리가 알아내러 가야 하지? 가자고.
네 번째 불: 세계의 역사에 아그다 느부라마나자가 개입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자존심으로 감출 수 없는 환멸감과 초조함이 노골적으로 엿보인다.
불씨: 이변도, 계승도 모두 세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불씨라고 볼 수 있다. 파괴와 창조는 뒤섞여 존재한다. 뱀이 허물을 끊임없이 벗듯이. 바람직한 수행자라면 그러한 ‘자연적인’ 일에 자신의 개인적인 바람을 섞는 행위를 꺼려해야 할 테지만 -
아그다: 정치, 전쟁, 통치 등과 관련된 세속적인 소식을 아주 깊이 탐구한다.
화장: 딱 한 번, 떠돌아다니던 중에 마을의 갓 태어난 아이의 이마를 만진 적이 있다. 딱 두 번, 결혼식을 법력으로 축복해준 적이 있다. 여러 번, 죽은 이를 우주 속으로 돌려보냈다. 그는 그 관습을 우스꽝스럽다고 여기며 제 능력은 이런 사소한 일에 낭비되지 말아야 한다고 꿍시렁댔지만, 풀무불을 만들어낼 기회를 거절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소지품: 법행에 필요한 여타 장비들을 제하고도 허리춤, 즉, 초록색 사리로 감춰지는 부분에 주머니를 하나 매달아놓았다. 그 안에는 더 작은 백색 주머니 하나와 여분의 모후르가 들어 있다.
바람: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던가. 그는 제 바람이 신두의 나무와 모래 - 그는 어떤 비크람을 신두의 사막에 데려가보고 싶다는 꿈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 에 스치는 모든 이변을 종식시킬 수 있길 바란다. 그래야 이 - 엉망인 지역이 좀 사람 살기 좋게 변할 테니까. 사람들이 다양한 삶을 살아갈 테니까. 저 또한 그렇게 살 수 있을 테니까! 지붕 위에 쌓인 눈을 기함하며 털어낸다.
그의 오늘을 위해 타오른다.
“아그다 느부라마나자의 다음 생은 없어. 으하하하!”
순환하는 업과 징벌이 불의 고리를 이룬다.
콘스탄티노파,
허리를 젖힌 채
안면은 움직이지 않고 깔깔, 세찬 웃음을 줄줄 내뱉는다.
동료를 발견하고 인사 차원에서 빗물을 끼얹는다.
지금도 같은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