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나야마〉
자신의 양손으로 코와 입을 덮고 호흡을 차단한다.
살갗이 희미하게 비칠 만큼 짧게 민 백발이 인상적이리라. 옅은 회색빛 눈동자는 남을 흘기는 때가 아니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일이 드물다. 고집스럽게 정면을 응시하는 삼백안, 도드라지는 아래 속눈썹에 깊게 파인 쌍꺼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유연한 얼굴 근육을 한껏 일그러뜨리며 딸려 오는 얇은 눈썹의 움직임이 그보다 중요했고―눈과 수평으로 곧게 뻗어 있는 눈썹은 제자리를 지키는 일이 드물다―대조적으로 차분하게 읊조려지는 문장의 의미가 중요했다. 찡긋대는 코끝을 따라간 왼편에는 작은 링 형태의 피어싱이 존재한다. 일그러지지 않을 때면 갸름하고 말간, 앳된 인상이다.
떠도는 수행자처럼 비쩍 마른 몸은 그의 나이도 성별도 확언하지 못하게 한다. ‘완벽하게’ 갖춰 입은 교복에도 그의 마음을 꿰뚫은 몇 사람에게는 빈축을 사는 편이다. 이따금 화려한 색의 팔레차가 이질적으로 고개를 내민다. 날개를 편 공작을 중심으로 주변부를 둥그렇게 꾸미는 덩굴나무가 갖은 염료로 장식된 천에서는 희미하게 이국적인 향이 난다. 사적인 시간에는 성국에서 흔히 신을 법한 가죽신을 벗어 던지고 맨발이 되곤 한다.
그가 태어날 적에 “몸을 받는 손이 차갑잖아!”라고 외쳤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다. 주변의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했으며, 또한 기민하게 반응했다. 키가 들풀을 넘지 못했을 나이에는 울음으로나마 해결되었으나, 머리가 굵어질수록 그러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혀는 향신료에 길들여져 상대적으로 둔하다. 코는 가끔 숨을 참는 것으로 해결되고, 눈과 귀는 막아버리고 싶을 만큼 밝다. 초 단위로 머리를 쿡쿡 찔러대는 불편감도 쓰임새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 열 살쯤. 곱절의 나이를 먹은 지금은 그럭저럭 적응하며 살아가는 모양이다.
다만, 가끔은 전부 치워버리고 싶다는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브리하날라는 법력을 가진 사제들이 가장 열반에 가깝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고?
언제나 곤두선 탓에 상냥하다는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자연스럽게 찡그려지는 표정은 고개를 돌린다 한들 감추어지지 않는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왔고, 무관심한 마음을 흉내 내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더 나은 방법으로: 불편함을 초래하는 대상을 해결해서 치워버리면 더는 거슬리지 않았다. 그는 최대한 빠르게, 모든 일이 해결되기를 바랐다. 다른 사람에 비해 과도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통에 언뜻 세심한 구석이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바라볼 만했다.
예민함을 감추려 노력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이유로 깊은 교류도 꺼리는 편이다―괜한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거슬리는 일은 빠르게 해결해 버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비사교적인 성격과 모순되게 이런저런 사건에 끼어들곤 한다.
출신
데바살라야 산맥 아래에 자리 잡은 소도시이다. 산맥 너머 중부와 동부 사이에 걸쳐 있으나, 인식과 생활상은 동부에 따르므로 북동부로 여겨진다. ‘흰 숲’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높은 고도에 자생하는 자작나무 숲이 대표적인 볼거리로 손꼽힌다. 인근에 자라는 자작나무의 껍질은 오래전부터 종이로 활용되었으며, 전통적인 종교 출간물의 재료로 쓰인다. 상대적인 험지에 위치해 있음에도 북부 지역 내 교류가 끊기지 않을 만큼 중요한 생산물로 평가받지만, 지역민의 대부분은 이와 상관없이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부 가족 공동체만이 제각각 수확과 가공, 유통을 관리한다. 그럼에도 다른 지역에 비해 가공 이전의 껍질, 열매, 잎을 약재나 부적으로 접하기 쉬운 편이다. 책을 비롯한 기록물에 대한 취급은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탄 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온 구전에서는 칼라파하르¹, 인드라찰라²라는 지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쿠샨 왕조 당시 지역 행정을 관리하기 위해 집단으로 정착한 슈웨타란야와 그 근방의 유지다. 지역 내에서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탓에, 직접적인 권력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주요 가문 구성원은 회계사, 세속법을 다루는 법률가, 혹은 지역 행정관을 보좌하는 서기로―중앙의 간섭이 적은 북부에서는 귀족에 준하는 존재들로 인식된다. 특징상 비종교적인 장서와 세속법에 관련된 옛 기록물을 여럿 관리하고 있다.
현세대 스리바스타바의 대표 격인 인물. 구성원들에게는 가장 공경해야 할 어른이자 집안의 주인으로 여겨진다. 관련된 개념은 타지역, 국가에 비해 희미하나 가주라는 위치에 가깝다. 슬하에 우마파티 루드라마 스리바스타바, 바바카 루드라마 스리바스타바 외 3인을 두었다. 지나치게 노쇠한 탓에 우마파티 루드라마 스리바스타바가 실질적인 대소사를 처리한다. 북동부 지방에서 각 지역 언어로 난립하던 관습법을 신두어로 기록, 연구한 것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
루드라마-우마파티-자야세나로 이어지는 장자의 계보에서 나로탐은 자야세나의 동배형제이자 우마파티의 두 번째 자식이다. 브리하날라는 본래 자야세나의 배우자 중 하나가 낳은 아이였으나, 나로탐 본인에게 자식이 없던 탓에 양자로 입적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야세나 우마파티 스리바스타바와 칸찰로차나 데비 사이에서 태어나 나로탐 우마파티 스리바스타바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그러나 자야세나의 배우자인 칸찰로차나 데비는 그 출신과 지역 내의 명성이 불분명하며, 브리하날라의 존재 역시 그가 7세 되는 해에 갑작스럽게 알려졌으므로 세간에는 ‘브리하날라의 혈육 중 하나’ 이상의 인식이 전무하다.
이전에는 칸찰로차나 이사다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브리하날라 역시 브리하날라 이사다스로 성을 따랐다가, 7세에 양자로 입적되며 성을 바꾸었다. 일부에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칸찰로차나는 방랑 예인이었다.
성장
양자 입적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불명확한 소문으로는 비슈바카르마 북부를 떠돌았다고도 하고, 칸찰로차나와 그의 원가족이 북부에 적을 두고 있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브리하날라는 자신의 현 양육자들을 존중하여 입적 이전의 이야기를 거의 꺼내지 않는다. 은연 중의 태도나 조각난 말을 맞추어보면 그가 슈웨타란야 외부에서 지내다 법력 발현을 계기로 입적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법력을 발현한 이후에 나로탐의 양자가 되었으므로, 슈웨타란야에서 직접 생활한 기간은 길지 않다고 추측된다. 자르부미의 해안 방향에 위치한 두르가다라 사원에서 주로 생활하며 종종 슈웨타란야를 오갔다. 때문에 스리바스타바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은 강하지 않다. 나로탐만이 브리하날라를 제법 살뜰하게 챙겨준 탓에 가족을 찾는다면 그를 꼽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제에 비하여 기초지식이 부족하였으므로, 몇 년은 사제로서의 교양과 ‘신두어’를 익히는 데에 주력했다. 특유의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은 지금보다도 어린 시절에 두드러져 특별히 애착을 가질만한 관계는 드물었다. 교육을 담당한 사제는 영특하고 인내심이 깊다는 말로 브리하날라를 치장했으며, 가르치는 대로 성과를 보이는 학생 중 하나로 기억한다. 사원에서 주어진 역할 수행 외에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발현 직후부터 섬세한 운용에 재능을 보였다. 법력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는 크지 않은 축이다. 본인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듯한 모습으로 섬세함의 결이 달라진다. 방어적인 법행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 데바살라야 산맥과 비견되는 ‘요새와 같다’는 평을 받았다.
대공의회
예의 섬세한 법력 운용과 포용력 있는 태도―그에게는 고향이든 뭐든 모두 공평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를 높이 사 대공의회의 일원으로 추천받았다. 평소에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존재했지만, 일찍이 신두어를 익히는 데에도 훌륭한 학습 능력을 보였으므로, 빠른 성국어 학습을 통한 소통을 강조하며 불안을 일축했다. 본인은 썩 원하는 바가 아니었던 모양인지, 대공의회 참여 결정부터 살이 내리는 등 상태가 안 좋아졌다가 아주 조금씩 컨디션을 되찾았다.
성국에 도착한 초기에는 통역도 대동하지 않은 채 사제복을 입고 맨발로 돌아다니던 신두인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이후 지나치게 눈에 띈다는 생각이었는지 지적을 받아서인지, 고집스럽도록 원칙을 따른 교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대화할 때에는 짧은 카엘룸어와 신두어를 섞어 쓰다가, 6개월을 채웠을 시기부터 일상 회화는 무리 없이 할 수 있게 되었다.
“카엘룸어에 미진해서 ‘교복 착용 권고’가 어떤 뜻인지 잘 몰랐지.” 같은 문장으로 그를 설명할 수 있다. 카엘룸어는 분명 격식투로 배웠을 텐데도 함께 훈련하는 이들에게는 얼핏 무례한 단어와 문장으로 이야기한다. 드물게 신두어로 말을 걸면 누그러진 어조와 단어 선택을 보여준다. 몇몇 카엘루마 출신 인사에게서 치기 어린 방식임을 지적받으나 개의치 않는다. 여전히 사교적이진 않아도 훈련에 성실하게 임하고 정이 붙은 일부와는 가끔 어울리기도 한다.
포용적인 문화를 지닌 왕국 출신답게 배타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그들과 자신이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것으로, 다른 종교의 교리 또한 열반에 이르는 ‘느린 방법’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가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카엘루마 사람들이 대공의회에서 내세우는 태도는 오만한 데다, 알-파티하 사람들은 사소한 협력에도 대가를 요구한다는 듯한 인상이 강해 아주 친근하게 여기지도 않는 모양이다. 개중에서 굳이 고르자면 같은 외국인으로서 알-파티하 사람에게 동질감을 가진다.
뱃멀미가 ‘아주’ 심한 탓에 한 번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다. 편지와 사적인 물건을 주고받는 교류는 계속 나누고 있는 모양이다.
개인
브리하날라 나로탐 스리바스타바. [이름 - 공동체에 속한 직계 양육자의 이름 - 성]으로 구성된다. 브리하날라 이사다스라는 옛 성을 따른 성명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름을 불리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으므로 [그, 브리하날라, 스리바스타바] 등으로 불린다. [신두인, 르타교인] 따위로 불릴 때면 특유의 경멸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그녀]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우습고, [사내] 쪽은 황당하다.
단련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마르기만 한 몸은 아니다. 그러나 특유의 예민함에서 오는 체질과 식성 탓에 필요 이상의 근육이 붙지는 않았고, 체지방은 거의 한계에 다다른 수행자 같은 몰골을 하고 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모호한 톤이다. 크지 않은 목소리로 느리고 단조로운 음을 일관되게 내는 편이다. 신두어를 말할 때면 상대적으로 빨라지는 경향이 있고, 발음은 데바살라야 산맥 인근과 북부 해안의 것이 모두 섞여 출신을 구분하기 어렵다.
비슈바카르마 서부에서 드물게 쓰이는 라자가르어를 모어로 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학습한 언어이기에 대부분의 사색이나 반사적인 반응은 라자가르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라자가르어는 7세 이후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라자가르어 화자를 만나기 어려운 환경 탓에 생활 기초와 지식 탐구에 이르는 전반적인 소통은 제2언어인 신두어에 의지하고 있다.
카엘룸어는 대공의회 참여가 확정된 후부터 배우게 된 제1외국어이다. 짧은 기간에 빠르게 학습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편향적인 분야의 단어, 문어적인 표현, 신두어를 직역한 듯한 묘사가 두드러진다.
헤자즈어는 거의 하지 못하지만, 아주 기본적인 인사, 호오 표현, 흥정을 의미하는 문장 정도는 외우고 있다.
춤과 노래에 소질이 있다. 성국의 전통과는 거리가 멀지만, 재능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챌 수 있으리라. 비슈마카르마 전역에 구전되는 신화나 이야기에 해박한 모습을 보인다. 이상한 부분까지도 기억하는 기억력이 특징적이다.
휴식을 취할 때면 카엘룸어나 르타교 경전 따위의 공부, 법력 단련에 힘쓰곤 한다.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각 지역에 전승되는 이야기를 주워듣는 일을 좋아한다.
채식주의자에 가깝다.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관리가 어려운 육류나 어패류의 역함을 너무나 잘 알아채는 탓에 먹지 못하는 쪽이다. 무엇이든 일정한 맛으로 만들어주는 강한 향신료를 좋아한다. 카엘루마의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프라나야마〉
자신의 양손으로 코와 입을 덮고 호흡을 차단한다.얄궂은 백발이 눈에 들어온다. 등 뒤로 잡히는 부분은 날개뼈를 덮을 만큼 길고, 오른편에 자리한 한 움큼은 그보다 짧다. 말끔하게 깎아 둥근 머리 모양새가 드러난 왼편까지,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 탓에 사소한 군말이 따라붙곤 한다. 잡히는 만큼 묶은 뒤에는 완전히 풀릴 때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
가슬가슬한 머리카락 사이로 비치는 두상과 뺨을 뒤덮은 피부는 똑같은 연갈색 빛이 돈다. 반듯한 이마를 따라간 얇은 눈썹 사이의―콧잔등의 지워지지 않는 주름이 보이리라. 그 아래로 금으로 만들어진 나트, 작은 코 피어싱이 자리한다. 그가 얼굴을 찡그릴 때마다 고집스러운 삼백안이 평범한 회색 눈동자로 탈을 바꿔 쓴다. 피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눈 밑의 그늘이 해마다 짙어져 아이였던 시절을 완전한 과거로 치부한다. 도드라지는 아래 속눈썹과 깊게 파인 쌍꺼풀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으레 그의 얼굴보다 발끝을 응시하였으며, 그는 그러한 시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지 오래였다.
떠도는 수행자처럼 비쩍 마른 몸은 그의 나이도 성별도 확언하지 못하게 한다. 허리춤에서 잘그락대는 장신구와 늘어지는 천을 불유쾌하게 여기는 한편, 주어진 옷을 입는 데에는 거리낌이 없다. 종종 두꺼운 외투를 덧입곤 한다.
* 예민함/억누르는/피곤함
그가 태어날 적에 “몸을 받는 손이 차갑잖아!”라고 외쳤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예민한 기질을 타고났다. 주변의 변화에 지나치게 민감했으며, 또한 기민하게 반응했다. 키가 들풀을 넘지 못했을 나이에는 울음으로나마 해결되었으나, 머리가 굵어질수록 그러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혀는 향신료에 길들여져 상대적으로 둔하다. 코는 가끔 숨을 참는 것으로 해결되고, 눈과 귀는 막아버리고 싶을 만큼 밝다. 초 단위로 머리를 쿡쿡 찔러대는 불편감도 쓰임새가 있을까 싶었던 것이 열 살쯤이다.
브리하날라는 자라날수록 자신을 괴롭히는 감각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언젠가의 그는 이런 고민을 했다; 눈가에 달려드는 날벌레를 온전히 막을 수 있을까? 사람과 마주하지 않고 지낼 방법이 있을까? 물을 흐르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바람을 불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밟은 흙에게 거칠지 않기를 바랄 수 있을까? ⋯⋯. 그는 여전히 머리를 찌르고 긁는 감각을 느꼈으나, 가슴에는 이전만큼 짜증과 분노가 차오르지 않는다. 빈자리를 파고든 체념은 그를 가라앉힌다. 그럼에도 종종 치밀어 오르는 것은 여전해서, 얼굴에는 찡그린 횟수만큼 접힌 주름이 그대로 남았다.
여전히 브리하날라는 법력을 가진 사제들이 가장 열반에 가깝다는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고?
* 무뚝뚝함/섬세함/행동파
언제나 곤두선 탓에 상냥하다는 평가와는 거리가 멀다. 자연스럽게 찡그려지는 표정은 고개를 돌린다 한들 감추어지지 않는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자신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왔고, 무관심한 마음을 흉내 내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로’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더 나은 방법으로: 불편함을 초래하는 대상을 해결해서 치워버리면 더는 거슬리지 않았다. 그는 최대한 빠르게, 모든 일이 해결되기를 바랐다. 예전에는 지나치게 사로잡히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지금 와서는 그저 거슬리는 대로, 내키는 대로 돕고 참견하고 혼자서 화내기를 반복하는 듯하다. 우는 목소리, 고함치는 목소리, 웃고 시끄럽게 떠드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이를 먹으며 신경질적인 면이 사그라들수록, 무뚝뚝한 부분이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 비해 과도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억하는 통에 언뜻 세심한 구석이 있다.
* 총평: 무상함을 흉내 내는 고행자
근본에 해당하는 부분은 그대로다.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아 했지만, 그러지 못하는 한계로 포기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짜증이 치밀 때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속을 다스린다. 그러다가도 간헐적으로 신경질을 내고 목소리를 높인다. 세상이 뒤집혀 사라질 날은 요원하다. 브리하날라는 자신을 아주 작게 찌그러뜨리는 방식으로 거슬리는 세계와 조금이라도 멀어지고자 했다. 스스로의 끝이 결코 열반의 모습을 띠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수행을 놓지 않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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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3 |
[대공의회 와해] 자르부미의 두르가다라 사원으로 복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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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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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 |
[신두, 도로 정비] 11월, 칸찰로차나 데비가 브리하날라에게 의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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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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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7 |
5월, 슈웨타란야 인근 변동 발생 9월, 변동 인지 후 슈웨타란야를 향한 도보 이동 11월, 슈웨타란야 도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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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8 |
1월, 자르부미를 향한 도보 이동 3월, 자르부미 복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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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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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 |
[콘스탄티노파 대공의회 소집], 현재 |
출신
데바살라야 산맥 아래에 자리 잡은 소도시이다. 산맥 너머 중부와 동부 사이에 걸쳐 있으나, 인식과 생활상은 동부에 따르므로 북동부로 여겨진다. '흰 숲'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높은 고도에 자생하는 자작나무 숲이 대표적인 볼거리로 손꼽힌다. 인근에 자라는 자작나무의 껍질은 오래전부터 종이로 활용되었으며, 전통적인 종교 출간물의 재료로 쓰인다. 상대적인 험지에 위치해 있음에도 북부 지역 내 교류가 끊기지 않을 만큼 중요한 생산물로 평가받지만, 지역민의 대부분은 이와 상관없이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들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일부 가족 공동체만이 제각각 수확과 가공, 유통을 관리한다. 그럼에도 다른 지역에 비해 가공 이전의 껍질, 열매, 잎을 약재나 부적으로 접하기 쉬운 편이다. 책을 비롯한 기록물에 대한 취급은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탄 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온 구전에서는 칼라파하르, 인드라찰라라는 지명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1397년, 인근 지역의 변동이 닿으며 숲의 일부가 파괴되어 지역 생산품의 채집과 제작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쿠샨 왕조 당시 지역 행정을 관리하기 위해 집단으로 정착한 슈웨타란야와 그 근방의 유지다. 지역 내에서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탓에, 직접적인 권력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 주요 가문 구성원은 회계사, 세속법을 다루는 법률가, 혹은 지역 행정관을 보좌하는 서기로―중앙의 간섭이 적은 북부에서는 귀족에 준하는 존재들로 인식된다. 특징상 비종교적인 장서와 세속법에 관련된 옛 기록물을 여럿 관리하고 있다.
현세대 스리바스타바의 대표 격인 인물. 구성원들에게는 가장 공경해야 할 어른이자 집안의 주인으로 여겨진다. 관련된 개념은 타지역, 국가에 비해 희미하나 가주라는 위치에 가깝다. 루드라마 샤크티 스리바스타바가 노환으로 물러난 뒤, 실질적인 대소사를 처리하던 기존의 역할에서 명목상의 주인 자리까지 얻어내게 되었다.
다만, 루드라마가 완전히 타계한 것은 아니므로 물러난 주인과 새 주인을 동시에 맞이하는 과도기에 머무른다는 평을 받는다. 루드라마와 비교하여 손속이 거칠고 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탓에 집안의 분위기는 이전보다 경직된 상태다. 우마파티는 슬하에 자야세나 우마파티 스리바스타바, 나로탐 우마파티 스리바스타바를 두었다.
브리하날라의 생부. 우마파티의 장자이자, 언젠가 스리바스타바의 주인이 될 인물이다. 슈웨타란야가 포함된 주를 총괄하는 지방행정관의 서기 겸 조언자들 중 하나로 자리한다. 세 명의 배우자를 두었으며, 그중 하나가 브리하날라의 어머니인 칸찰로차나 데비다. 브리하날라와 비교하여 각각 한 살, 세 살 어린 두 명의 자식이 있다. 두 자식보다 브리하날라의 나이가 많지만, 브리하날라는 나로탐의 양자이므로 훗날의 무엇도 예비받을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 태도만큼이나 브리하날라와 데면데면하다.
브리하날라의 양육자. 루드라마-우마파티-자야세나로 이어지는 장자의 계보에서 나로탐은 자야세나의 동배 형제이자 우마파티의 두 번째 자식이다. 브리하날라는 본래 자야세나와 칸찰로차나 사이에서 낳은 아이였으나, 나로탐 본인에게 자식이 없던 탓에 양자로 삼았다.
근방의 지역에서는 한때 결혼하였다가 본인의 잘못으로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배우자의 재혼을 적극적으로 도운 인격자로 이름이 떠돈다. 양자인 브리하날라에게도 애정으로 대한 탓에 브리하날라가 유일하게 애착을 가진 스리바스타바라고 불리어도 과언이 아니다.
칸찰로차나 데비가 브리하날라에게 몸을 의탁한 이후에 "그는 내 형제의 아내이지만, 내 자식의 어미이므로 나의 아내이기도 하다."며 브리하날라의 짐을 덜어주려 한 하나뿐인 가족.
자야세나 우마파티 스리바스타바와 칸찰로차나 데비 사이에서 태어나 나로탐 우마파티 스리바스타바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브라민이 된 후로, 특히 대공의회가 와해된 이후로 슈웨타란야에 거의 방문하지 않아, 지역 내에서도 브리하날라의 명성이 크지 않았다.
1397년, 슈웨타란야에 변동이 닿으며 생긴 피해를 살피기 위해 방문한 후, 법력을 가진 스리바스타바로서 지역 내에 소소한 관심이 생겼다.
출신과 슈웨타란야 지역 내의 명성이 불분명하며, 브리하날라의 존재 역시 그가 7세 되는 해에 갑작스럽게 알려졌으므로 세간에는 '브리하날라의 혈육 중 하나' 이상의 인식이 전무했다. 이전에는 칸찰로차나 이사다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브리하날라 역시 브리하날라 이사다스로 성을 따랐다가, 7세에 양자로 입적되며 성을 바꾸었다. 일부에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칸찰로차나는 방랑 예인이었다.
그러나 1395년 칸찰로차나가 브리하날라에게 몸을 의탁한 뒤에는 브리하날라 역시 칸찰로차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지 않았으므로, 자르부미 인근에 거주, 방문하거나 브리하날라와 안면이 있다면 모르기 어려운 인물이다.
자르부미에서의 칸찰로차나는 자신을 방랑 예인이자 브리하날라의 어미로 소개한다. 그는 두르가다라 사원에서 '손님'으로서 숙식하며, 브라민을 위해 정당하게 주어진 몫을 나누어 받는다. 프라티크샤가 사원의 손님으로 머무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몇 있지만, 사원에 소속된 브라민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크게 놀라워하지 않는다.
브리하날라가 칸찰로차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그는 칸찰로차나를 대하는 방식을 하나로 정립하기 어려워 했으며, 칸찰로차나를 자신이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동시에 책임지고 싶지 않아 했다. 어머니와 자식이라는 관계에 부담감을 느낀다는 감상을 가까운 몇몇에게만 털어 놓았다.
" 그 사람은 내가 갓 태어났을 때 함께 있었지. 태어나기 전에도 그랬고, 심지어는 지금도 그래.
어머니와 나를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어. "
브리하날라는 칸찰로차나를 길에서 태어난 춤꾼, 떠돌이, 사기꾼, 장사치, 도둑 따위로 설명하지만, 자신이 그의 태생이라는 사실은 단 한번도 부정하는 일이 없다. 그 역시도 길에서 태어나는 우미카를 물려받았기 때문일까? 언제나 복잡한 감정과 태도로 칸찰로차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칸찰로차나에게 부여한 의미는 유구하다. 춤과 노래, 기예를 선보이는 사람들에게 무른 태도로 응수하거나, 박수를 보내는 관객의 역할에 지나치게 능숙했던 모습을 기억한다면, 그가 어머니의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도 쉬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칸찰로차나가 몸을 의탁한 이후로 과거를 꺼내는 일을 크게 거리끼지 않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도 묻는다면 답할 뿐이라는 태도를 고수하며 아주 비밀스럽게 취급하지는 않았지만, 종종 그 시절을 추억하거나 당시의 흔적을 더듬는 일은 최근에 그를 만난 사람이 아니라면 모를 행동들이다.
1395년 이후에 그를 만나 관련된 대화를 나눈 사람들은 브리하날라가 관례대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칸찰로차나가 칸찰로차나 이시다스였던 처녀 시절에는 북부를 방랑하였으며 이는 브리하날라가 태어나고서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 자야세나의 소생은 맞지만, 축일을 틈타 우연히 얻은 아이를 믿어주리라는 생각이 없어서 떠돌이 생활을 이어 나갔다는 것. '이시다스'들이 아탄 시대부터 유구한 우미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브리하날라가 법력을 발현한 후의 대목은 더욱 미묘한 감정이 담긴 투로 설명된다. 칸찰로차나와 자야세나는 뒤늦게 약식 결혼을 올렸다. 법력을 가진 브리하날라를 혼외자로 남겨두지 않도록 합의한 자야세나는 그 이상의 의무를 다하고 싶지 않아 했다. 칸찰로차나는 명목상으로나마 자야세나의 배우자가 된 이후에도 슈웨타란야에 머물지 않았다. 브리하날라는 얽힌 사람들의 의도가 어떠하든 이 모든 일의 결과가 자신의 이익을 향해 있다는 것에 얼떨떨해하면서도 부채감을 느꼈다.
6세에 발현한 뒤 슈웨타란야에 머물기 시작하여 7세에야 양자로 입적되었다. 그 1년여 간의 기간이 슈웨타란야에 머물렀던 기간 중 가장 길고 불편한 시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이후 자르부미의 해안 방향에 위치한 두르가다라 사원에서 주로 생활하며, 12세부터 2년에 한 번 꼴로 슈웨타란야를 오갔다. 때문에 스리바스타바라는 이름에 대한 자부심은 강하지 않다. 나로탐만이 브리하날라를 제법 살뜰하게 챙겨준 탓에 스리바스타바 일가에서 가족을 찾는다면 그를 찾는 경우가 많다.
다른 사제에 비하여 기초지식이 부족하였으므로, 몇 년은 사제로서의 교양과 '신두어'를 익히는 데에 주력했다. 특유의 사교적이지 못한 성격은 지금보다도 어린 시절에 두드러져 특별히 애착을 가질만한 관계는 드물었다. 교육을 담당한 사제는 영특하고 인내심이 깊다는 말로 브리하날라를 치장했으며, 가르치는 대로 성과를 보이는 학생 중 하나로 기억한다. 사원에서 주어진 역할 수행 외에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대공의회가 와해되며 본래 적을 두고 있던 자르부미의 사원으로 돌아갔다. 돌아갈 때의 뱃멀미는 여전했다.
국가 간 지역이나 변동지 소유권에 대해 다툴 일이 적은 비슈바카르마 땅에 거주하며, 바다 너머의 혼란과는 먼 태도를 유지했다. 사원에서 생활하고 수행하는 한편으로, 법력을 쓸 수 있는 어린 사제를 종종 도왔다. 다만, 그의 성격 탓인지 '스승'에 이르는 호칭으로 불릴 법한 책임까지 져본 적은 없다.
마하라자의 명을 전달받은 사원 차원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와줄 것을 부탁받은 변동에 한하여 돕곤 했다. 이동이 어려운 신두의 환경 탓에 자르부미 내지는 자르부미처럼 노스트라 해에 접한 북부 지역에 주로 얼굴을 보였다. 슈웨타란야와 그 인근의 데바살라야 산맥 방면을 돌아다닌 때는 7년 중 한 번 뿐이다.
자신을 기준으로 한 좁은 거리에서는 극도로 섬세한 법력을 다룰 수 있으나, 규모가 큰 법행이나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곳까지 영향을 미치는 법행에는 능숙치 못하다. 대표적인 예로, 전송 마법이나 이동 마법은 본래 사용하기 힘든 신두의 환경을 고려하더라도 처참한 수준이다. 브리하날라 본인은 자신이 만물을 바라보며 언제나 긴장하고 있는 것이 실패 원인이 아닐지 짐작한다. 타인을 치유하는 법행이나 무언가를 막는 법행에 자신이 있다.
" 브리하날라 님. 방금은 바람이 스치는 움직임만으로 베 한 필을 짜주셨으면서, 옆 마을까지 이동하는 법행은 못 하신다는 거예요? "
" ⋯⋯. 그래. "
칸찰로차나의 자르부미 방문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우기가 한참 전에 끝난 어느 날, 브리하날라를 찾는 인물이 있다는 소식에 걸음한 차였다. 칸찰로차나는 7세 이후로 브리하날라와 만나지 않았기에 그가 브리하날라를 알아보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브리하날라는 여러 이유로 그를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칸찰로차나는 기억 속의 특징을 거의 동일하게 갖추고 있었다. 또한 나로탐으로부터 '네 어머니에게 오래전부터 가족 차원의 금전적 지원이 비정기적으로 있었다'는 말을 전해들었던 것을 근거하여, 나로탐의 증표와 슈웨타란야의 자작나무를 사용한 부적을 소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앞서 나열한 이유와 상반되게도,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직감을 마지막으로 확신한 그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어머니라는 단어를 되찾았다.
재회한 둘은 모종의 대화를 나눈 뒤 칸찰로차나가 브리하날라와 함께 하는 데에 동의하였다. 평범한 브라민으로서 재정이 넉넉지 않았던 브리하날라는 거주하던 사원에 손님의 자격으로 칸찰로차나를 받아들이게 된다.
비슷한 시점부터 브리하날라는 점차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브리하날라는 영원히 얽매일 수밖에 없으리라. 칸찰로차나는 브리하날라에게 필요 이상의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었고, 브리하날라는 그를 책임지는 이상 어지러운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데바살라야 산맥 중부와 동부에 걸쳐, 국지적인 변동이 있었다. 이러한 규모의 변동은 신두 내에서 흔하므로 인근에 거주하거나 연고가 있지 않은 이상 변동 소식을 전해 듣기는 어려웠다.
변동 대상지의 위에 있던 것은 아래로, 아래에 있던 것은 위로 뒤집어지는 기이한 현상은 슈웨타란야에도 닿아 산맥에 걸쳐 있는 마을 일부와 자작나무 숲의 일부를 훼손시켰다. 북부 사막과 데바살라야 산맥 사이에 고립된 슈웨타란야 지역은 일어난 피해의 대부분을 지역 내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했다.
브리하날라의 양부인 나로탐은 변동 현상이 갓 시작되었을 무렵, 인편을 통해 여비와 소식을 전해왔다. 그 누구도 아닌 나로탐이 전한 소식이었으므로 브리하날라는 슈웨타란야에 방문하기를 청하였고, 슈웨타란야에 방문한다. 그가 도착하였을 무렵에는 이미 충분한 시간이 흐른 탓에 변동을 직접적으로 목격하지는 못하였으나, 피해가 남은 슈웨타란야를 복원하는 데에 여러 도움을 주었다.
포용적인 문화를 지닌 왕국 출신답게 배타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그들과 자신이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것으로, 다른 종교의 교리 또한 열반에 이르는 '느린 방법'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그가 대공의회와 격동의 7년을 지나오며 느끼기에, 성국인들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데다 보수성이 짙다는 인상이 굳어져 콘스탄티노파 대공의회 참석에도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 제국인에 대해서는 대체로 능구렁이 같고, 필요 이상의 야욕을 불태운다는 평―즉, 상인처럼 군다는 것이 그의 마음속 지배적인 의견이다.
브리하날라 나로탐 스리바스타바. [이름 - 공동체에 속한 직계 양육자의 이름 - 성]으로 구성된다. 브리하날라 이사다스라는 옛 성을 따른 성명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름을 불리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으므로 [그, 브리하날라, 스리바스타바] 등으로 불린다. [신두인, 르타교인] 따위로 불리면 [루치교인, 헤자즈교인] 따위로 맞받아친다. [여인]이든 [사내]든 너그럽게 대답해 준 뒤에 이제 그것의 반대로 부르라며 농담을 던진다. 칸찰로차나는 브리하날라를 [날루]나 [바부아] 따위로 부르나, 브리하날라는 좋아하지 않는다.
단련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아주 마르기만 한 몸은 아니다. 그러나 특유의 예민함에서 오는 체질과 식성 탓에 필요 이상의 근육이 붙지는 않았다.
떠돌던 시절에 이가 옮아 밀었다가, 편함을 이유로 삭발 머리를 오랫동안 유지했었다. 머리카락이 이마나 목덜미에 닿는 거슬림보다 '왜'라는 질문이 거슬리기 시작하여 다시 기르기 시작한 것이 와해 이후 왕국에 돌아온 시점이다.
최근에 법력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은 어린 브라민의 실수로 머리카락 절반이 날아갔다. 어린 브라민은 당황으로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고, 브리하날라는 그사이에 애매하게 남은 머리카락을 아예 밀어버렸다. 분명히 담당 사제에게 전하여 용서한다는 말을 하였음에도 어린 브라민이 브리하날라를 무서워하며 피하게 되어 그로서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살짝 낮은 듯한 모호한 톤이다. 크지 않은 목소리로 느리고 단조로운 음을 일관되게 내는 편이다. 신두어를 말할 때면 상대적으로 빨라지는 경향이 있고, 발음은 북부 해안에서 흔히 들리는 것으로 차츰차츰 변하고 있다.
비슈바카르마 서부에서 드물게 쓰이는 라자가르어를 모어로 두고 있다. 라자가르어는 7세 이후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라자가르어 화자를 만나기 어려운 환경 탓에 사색을 포함한 무의식적인 반응, 생활 기초와 지식 탐구에 이르는 전반적인 소통은 제2언어인 신두어에 의지하고 있다. 최근 모어를 쓸 일이 늘었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실력은 지지부진한 듯하다.
대공의회 와해 이후에도 학습을 멈추지 않았으므로, 카엘룸어와 헤자즈어를 능숙하게 할 줄 안다. 다만, 오랫동안 두 언어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기에 발음은 어색한 편이다.
춤과 노래에 소질이 있다. 비슈마카르마 전역에 구전되는 신화나 이야기에 해박한 모습을 보인다. 이상한 부분까지도 기억하는 기억력이 특징적이다.
참선. 단순히 즐기기 위한 것이라면 각 지역에 전승되는 이야기를 주워듣는 일을 좋아한다.
채식주의자에 가깝다.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관리가 어려운 육류나 어패류의 역함을 너무나 잘 알아채는 탓에 먹지 못하는 쪽이다. 무엇이든 일정한 맛으로 만들어주는 강한 향신료를 좋아한다. 다만, 선호하지 않은 음식도 마땅한 대체제가 없다면 큰 불평 없이 삼킨 뒤 토할 것 같은 기분을 스스로 가라앉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