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너머 미소〉
입을 가리고 웃는다.8살 무렵 미사의 집전 준비를 도우며 어머니께 칭찬을 받았을 때였다. 세례성사를 할 때만 해도 품 안에 들어오던 작은 아이가 언제 이렇게 훌륭히 자랐느냐며 그가 두 살 무렵일 적 세례식 당시의 추억을 회상하듯 그의 머리에 미사보를 둘러주고선 칭찬했는데, 어린 그는 교회 안에서 소란스럽게 굴지 않기 위해 입을 가리고 소리 없이 웃으며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때 처음으로 초에 불을 붙이는 마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징조로 해당되는 범위의 인지 대상은 베일을 위시한 천 종류의 것 혹은 손. 그 외의 사물은 속하지 않는다. 보통의 경우 마법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으나, 부상자가 있는 등 웃기 어려운 상황에서 웃어야 한단 점에서 이따금 곤혹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친절한, 사교적인, 모범생]
-그의 대외적인 평판은 꽤 좋은 편이다. 대부분의 사람을 대할 때 옅은 미소를 띠고 있으며 온화한 말투에 선뜻 학우들을 돕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또 곤란한 일이 있거나 학생들 간의 갈등이 있으면 나서서 상황을 일단락시키기도 하고, 학생들을 격려해 이끌기도 한다. 그야말로 그린듯한 모범생. 이러한 그의 성미 덕에 아는 이가 많아, 신학교에서는 마당발인 축에 속했다.
-이는 신학교 학생이나 성국 쪽의 사람뿐만 아니라 타국의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태도였다. 물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타국인이 느끼기엔 여실히 부족할지도 모르나 성국의 사람치고는 덜 거만하게 보이기 위해 제 나름대로 태도에 신경을 쓰는 듯하다.
[선을 긋는, 고고한]
-허나 친절하고 관용적이되 결코 자신을 침범하도록 두지 않는 면 역시 엿보였다. 그래, 오히려 친절하기에 거리감이 느껴지는 부류의 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는 교우관계에서도 비슷한데, 아는 이는 많으나 늘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다. 어려운 이가 있다면 손을 내밀기는 해도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범위까지 지고 가는 성미는 아닌 모양.
-이런 모습을 본 일부는 그를 위선적이라 여기기도 했다. 파격적이고 신념 있으며 행동력이 넘치는 리더라기보다는 원칙에 입각해 전통을 따르는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하길 선호한 것도 그런 평가에 한몫했을 듯싶다. 제도 내에서 가능한 무난한 해결책과 당장의 상황을 봉합하는 방향으로 제시하는 터라, 자신만의 정의와 주관이 확고한 이들에겐 종종 ‘고고한 체한다, 아닌 체 해도 역시 동부사람이라 고리타분하다.’ 라며 빈축을 사고는 한다.
[야망있는, 고집스러운]
-자신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남을 돕길 좋아하는 정도의 성격인가, 싶지만 의외로 정치에 관해 관심이 깊다. 물론 절제와 검소, 겸허가 성직자의 미덕인 데다 침착한 그의 성격상 이런 모습을 대놓고 드러내진 않는다. 종종 보이는 행동에서 짐작만 가능할 뿐.
-결정을 내릴 때까진 심사숙고하지만, 한번 결정하고 나면 그 뜻을 바꾸는 법이 없다. 자신이 택한 길의 끝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야 성취감이든 후회든 깨닫는 타입. 좋게 말하면 뚝심 있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스럽다.
가정

-카엘루마 동북부, 카렐리아 지방의 귀족 출신. 카렐리아는 이변이 자리한 칼드롬과 한 개의 장원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있다. 직접 맞닿진 않았으나 인근 지역이므로 칼드롬의 이변 상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칼드롬에서 이주해 온 주민들이 있다.
-카르얄라이넨은 카렐리아의 사람이란 뜻으로, 이렇게 성에 북부 토착 전통의 흔적이 남아있다. 성직자를 배출한 적이 드문 세속귀족이나, 상당히 신실한 집안이다. 가주는 알리나 카르얄라타 백작으로, 그의 어머니이다. 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 병으로 사망하였고, 그 충격으로 뱃속의 둘째마저 유산하고 만다. 이후 어머니는 재혼하지 않고 있다. 이에 휘하의 자식은 오로지 유르카 카르얄라이넨 한 명뿐이다. 그러나 유일한 자식인 그가 성력을 발현하여 신학의 길을 밟았으므로, 차후 카렐리아 통치권의 승계에 관해 이런저런 구설수가 존재한다.
-아버지가 계실 적에도 집안의 분위기는 화목했으며, 지금도 어머니와의 사이는 좋다. 아명은 칼레Kalle, 종종 세례명을 짧게 줄여 유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단, 친밀한 이 한정이다.)
취향, 취미
L: 싱그러운 냄새, 어머니, 따뜻한 음식 또는 음료, 난로
H: 겨울을 그다지 선호하진 않는 듯 보이나 물어보면 특별히 싫어하는 것은 없다고 답한다.
취미: 편지쓰기, 필사하기, 교수님과 학생을 돕기, 근래에는 온실에서 직접 심은 허브를 돌보고 있다.
그 외: 허브와 약초학에 관해 흥미가 있다. 추위를 쉽게 타는 성정. 손발이 차다. 나이에 관계없이 존댓말을 사용한다.
성행과 신학교 생활
-상처입은 부위를 봉합하고 재생시키는 성행이 특기. 성력을 다루는 섬세함은 딱 그 나이대에 다룰 수 있는 정석적인 수준이다. 교과서적인 방식. 이제껏 그런 방식을 고집해왔으므로, 특별히 다른 방식을 써본 적이 없다. 그 외로도 불을 붙이는 마법과 이를 변형하여 자신의 인지 내에 존재하는 인접한 물체의 온도를 유지시키거나 더 따뜻하게 만드는 성행 역시 잘하는 부류의 성행 중 하나이나, 생물의 생명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만한 수준으로 사용한 적은 없다. 부상자를 돌볼 때 사용하는 보조역할 정도로 사용하는 듯.
- 8살에 중앙 신학교에 입학하여 중상위권 정도의 무난한 성적으로 기초과정을 마무리하고 심화과정을 밟았다. 특출난 점도 없고 모난 점도 없는 신학교 생활이었다. 대공의회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성직자가 될 준비를 했을 것이다.
대공의회 합동훈련
-9학년이었을 때 품행이 방정하고 무엇보다 부상자를 회복시킬 수 있는 성행이 특기였다는 점에서 선발. 이 소식에 그는 응당 해야할 일이며, 기쁜 마음으로 제 삶에 주어진 의무를 다하겠노라 말했다.
-타국에서 온 대공의회의 일원들을 친절히 맞이했다. 성국어-카엘룸어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아이들이 있다면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도움이 필요하다 말하는 이에겐 기꺼이 손 내밀었지만 배타적인 이들에게는 자칫 외교적 문제로 번질 수도 있는 괜한 갈등상황을 만들고 싶진 않았기에 신학교 때보다는 적극적으로 굴지는 않았다.
-첫번째 휴식기에는 제 고향에 들러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왔다. 두번째 휴식기에는 3개월의 휴식기을 다 채우지 않고 돌아온 모양.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한다.
〈베일 너머 미소〉
입을 가리고 웃는다.8살 무렵 미사의 집전 준비를 도우며 어머니께 칭찬을 받았을 때였다. 세례성사를 할 때만 해도 품 안에 들어오던 작은 아이가 언제 이렇게 훌륭히 자랐느냐며 그가 두 살 무렵일 적 세례식 당시의 추억을 회상하듯 그의 머리에 미사보를 둘러주고선 칭찬했는데, 어린 그는 교회 안에서 소란스럽게 굴지 않기 위해 입을 가리고 소리 없이 웃으며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때 처음으로 초에 불을 붙이는 마법을 사용하게 되었다. 징조로 해당되는 범위의 인지 대상은 베일을 위시한 천 종류의 것 혹은 손. 그 외의 사물은 속하지 않는다. 보통의 경우 마법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으나, 부상자가 있는 등 웃기 어려운 상황에서 웃어야 한단 점에서 이따금 곤혹스러움을 느끼곤 한다.
밝은 금발의 머리칼은 상당히 길어져 종아리쯤에 닿는 길이. 층이 진 채로 몇 가닥은 땋아내려 늘어트렸다. 전반적인 스타일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부분이 없다. 어머니께 물려받은 장신구는 여전히 착용 중. 이전에도 나이에 비해 성숙한 느낌을 풍겼으나 지금은 갓 성장을 마친 청소년의 티를 완전히 벗어내고 훨씬 완숙한 느낌을 준다. (보는 사람을 기준으로) 오른쪽 눈썹 위에 점이 하나, 오른쪽 입술 아래에 세로로 점이 두 개, 깃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으나 왼쪽 목덜미에도 점이 있다. 왼쪽 귀는 일부 잘려있으며 왼쪽의 목덜미와 뺨에 흉터가 크게 나있다. 부상의 영향인지 왼눈이 다소 탁해 보인다. 복장은 여전히 어긋난 곳 없이 잘 갖추어 입었으며, 라데군다의 지지자임을 상징하듯 자줏빛 안감의 망토가 펄럭인다.
[가식적인, 여전한?]
-웃음기가 사라졌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일견 여전한 듯 보였다. 여전히 고집스럽고,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방어적이며 위선의 가면을 썼다. ‘위선도 계속하면 선이 된다.’ 이 말을 그에게 가져다 붙이는 일은 틀린 일이겠으나, 그가 가식적이더라도 친절한 태도를 계속해왔고 그것이 습관으로 자리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사람과 상호작용 하기 전의 모습으로, 사람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 그가 이전의 모습이 아니란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이렇게 되기 시작한 것은 1년 전부터. 그 시점부터 외부와의 교류를 단절하다시피 했으니 극소수의 이들을 제외하고서는 그야말로 사람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비관적, 냉소적, 불안한, 초조한]
-연이은 실패와 부상으로 큰 좌절을 얻게 된 이후 그는 크게 바뀌었다. 그의 울타리는 한 번에 무너져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아직 그 충격을 수습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현재 그의 울타리 안에는 그 자신만 겨우 들어가 있을 정도로 빈약하고 어지러운 상태다.
-이에 습관처럼 가식의 가면을 뒤집어써도 마음속 불안은 걷잡을 수 없어 늘 초조해 보이고 쫓기는 사람처럼 굴었으며 항상 긴장이 서려있었다. 실수에는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심리적인 여유가 없어 타인에게 날카롭게 굴 때가 잦았다.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언행이 비죽 튀어나오는 건 물론이요, 언성을 높이는 일도 종종 있을 정도니. 그를 모르는 사람에겐 그저 성격 나쁜 사람, 정도의 감상이겠으나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괴리가 심한 모습일 수 있겠다.
[자기중심적, 무관심, 박탈감, 열등감]
-고집스럽다는 건 곧 자기중심적이라는 말이 된다. 일전까지는 고집이 있다, 강단이 있다는 말로 포장되던 성미는 그의 행실과 함께 자기중심적이라는 평으로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종종 느끼던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나 호감 역시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듯이 보였다. 타인에 대한 흥미를 잃고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니라면야 무얼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말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자괴감과 함께 박탈감을 자주 느꼈다. 이러한 감정들의 근간에는 어떤 불안과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음이 확실하다.
출신

-카엘루마 동북부, 카렐리아 지방의 귀족 출신. 카렐리아는 이변이 자리한 칼드롬과 한 개의 장원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있다. 직접 맞닿진 않았으나 인근 지역이므로 칼드롬의 이변 상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칼드롬에서 이주해 온 주민들이 있다.
-카르얄라이넨은 카렐리아의 사람이란 뜻으로, 이렇게 성에 북부 토착 전통의 흔적이 남아있다. 성직자를 배출한 적이 드문 세속귀족이나, 상당히 신실한 집안이다. 가주는 알리나 카르얄라타 백작으로, 그의 어머니이다. 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 병으로 사망하였고, 그 충격으로 뱃속의 둘째마저 유산하고 만다. 이후 어머니는 재혼하지 않고 있다. 이에 휘하의 자식은 오로지 유르카 카르얄라이넨 한 명뿐이다. 그러나 유일한 자식인 그가 성력을 발현하여 신학의 길을 밟았으므로, 카렐리아의 통치권은 어머니가 직접 입양하여 교육한 친척에게로 승계되었다.
-몇년 전부터 어머니와의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아명은 칼레Kalle, 종종 세례명을 짧게 줄여 유라라고 불리기도 한다. (단, 친밀한 이 한정이다.)
취향, 취미
L: 어머니, 따뜻한 음식 또는 음료, 난로
H: 어머니, 추운 것, 실패
취미?: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있기. 사람이 없는 곳에 있기.
그 외: 추위를 쉽게 타는 성정. 손발이 차다. 나이에 관계 없이 존댓말을 쓴다. 종종 기분이 상하면 반말이 섞일 때도 있다.
성행
-상처입은 부위를 봉합하고 재생시키는 성행이 특기. 그 외로도 불을 붙이는 마법과 이를 변형하여 자신의 인지 내에 존재하는 인접한 물체의 온도를 유지시키거나 더 따뜻하게 만드는 성행 역시 잘하는 부류의 성행 중 하나이나, 생물의 생명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만한 수준으로 사용한 적은 없다. 부상자를 돌볼 때 사용하는 보조역할 정도로 사용하는 듯.
7년 동안 있었던 일
-대공의회 해산 이후 신학교에서 졸업과정을 마치고, 부제가 된 이후로도 그 신실함을 증명받아 꽤 짧은 시간에 신부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귀족인 어머니로부터 물 밑에서의 지원이 있었음은 성국에서 신학의 길을 걸었던 이들이라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후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며 처세를 잘 하여 주교위에 오르게 된다.
-주교가 되어 서부의 작은 지역으로 발령받게 된 것이 1397년이었다. 불운하게도 이변의 빈발로 인해 그가 발령된 작은 지역은 1년 남짓한 단기간에 이변을 2번이나 맞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얼굴과 눈에 부상을 입게 된다.
-대공의회가 소집되기 1년 전, 1399년 봄. 젊은 나이에 얻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이었던 것인지, 이변이 연이어 오는 불행의 탓이었던 것인지 건강 및 행정적 능력의 부족 등을 사유로 주교위에서 강등, 사제가 된다.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된 것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주교와 사제들 간의 내부적인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카렐리아의 한 지역교회로 이동하였다. 이 기간부터 대공의회가 소집되기 전까지 누구와도, 어떤 연락도 닿지 않는다.
-1400년, 임시 성기사직을 수여받고 대공의회에 다시 한 번 얼굴을 비추게 된다.
소문
-카렐리아를 승계한 친척과 깊은 갈등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소문에는 성직자로서의 명예가 실추된 그가 환속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