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구름〉
발뒤꿈치를 부딪히고 바닥을 한번 찬다.
사막의 바람에 쓸려 올라가는 옅은 모래, 창공을 나는 매가 떨어뜨린 깃털,
죽은 벌레의 오색찬란한 얇은 날개, 오아시스의 수증기,
그리고 새벽의 이슬이 떨어지는 소리. 이것들을 모아 사람으로 빚어내 그것을 니샨트라 부르자.
햇볕에 정수리 부분이 갈색으로 바랜 검은 머리에 폭이 넓은 치마, 또래에 비해 유독 동그란 뺨을 한 맨발 차림의 어린애. 이것이 니샨트를 설명한다. 양 갈래로 길게 땋은 곱슬머리, 도톰한 선을 그리는 갈색 피부나 색이 옅고 어두운 보랏빛 눈동자, 수를 잔뜩 놓은 치마는 무거워 보이기 십상이나 지나치게 가벼운 몸놀림 탓에 기묘한 인상을 준다. 끝이 쳐진 두꺼운 눈썹 사이엔 흰 진주를 붙였고 그 아래 눈 밑 살이 유독 도톰한 눈은 늘 둥글게 휘어져 있다. 작은 코와 큰 입, 뺨이 둥근 낯은 선하고 부드러운 인상이며 웃지 않는 얼굴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표정은 풍부한 편이다. 살짝 살이 붙은 몸은 근육이나 단단함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색색의 구슬을 엮어 만든 팔찌와 목걸이를 늘어뜨리고 허리에 돌락Dholak을 맨 차림새는 영락없는 사막 유목민들의 것. 차림은 알-파티하의 것에 가깝지만 아주 같지는 않은데, 이것은 그가 속한 부족이 오래된 문화와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탓이다. 발목에 찬 궁그루Ghungroo 때문에 걷거나 춤을 출 때마다 방울소리가 울리는데, 긴 치마 탓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치 움직이는 것만으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이 느껴지리라.
날볕의 가장 따뜻한 부분, 어둠의 가장 안온한 부분,
하늘에 무리짓는 백로같은 순수함, 상처난 몰약나무가 만들어내는 위대함,
그것을 모아 태양을 향해 자라게 하자. 어떤 흔들림도 이 삶엔 없으리라.
긍정적이고/생기 넘치는/그러나 객관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호인. 그를 아는 이들은 그렇게 말한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다정하며 기본적으로 활발하고 씩씩하다. 만사를 긍정적으로 볼 줄 아는 힘이 있으며 때로는 그것이 당연하다 여기곤 한다. 그가 늘 입에 달고 사는 '왜 그렇게 생각해?'라는 말은 듣다 보면 상당히 나이브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긍정적으로 현실을 마주한다는 것이 현실을 마냥 순진하게만 본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현실의 모든 현상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다양한 면에서 마주하려 애쓰면서도 가장 추악한 것에서도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언제나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온전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믿는다.
천성적으로 분위기를 잘 띄우지만, 촐랑거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가만히 있는 일이 별로 없고 늘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남의 일에 참견한다.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고 물어 답을 얻어야 하며 때로는 그 정도가 지나쳐 눈치가 없는 것처럼도 보인다. 얌전할 때라고는 체력이 떨어져 졸릴 때뿐.
얕고 넓은/울타리 안의 애정/헌신적인
사람을 좋아하지만 주변인들에게 크게 의지하지 않는다. 여전히 그가 아주 마음을 내어주는 것은 같은 부족의 사람들 뿐이므로, 그 외의 사람이라면 상대가 누구든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려 하는 것은 이런 성정과도 연관이 있다. 어린시절 계속 떠돌며 살아온 탓인지 그는 몇몇의 깊은 관계보다는 넓고 얕은 관계가 저를 온전히 한다 믿는다. 그 가벼운 애정들을 제 안에 깊숙히 저장하고 어느 순간에나 꺼내 들여다 보며 그것을 소중히 가꾼다. 그러니 당신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애정을 건네주었다면, 그는 어떤 순간에서도 당신이 내민 손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주관이 뚜렷한/갈등을 원치 않는/책임감
언뜻 가벼워보이는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주관이 강해 남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면모가 늘 삐죽 돋아 흐름을 방해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런 주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는 때로 다수의 주장에 지나치게 쉽게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은 그저 갈등을 원치 않는 탓이다.
다만 작은 유목집단에서 자란 덕에 이런 ‘다수결에 복종하는 자세’가 가지고 오는 어떤 비극들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갈등을 회피하고, 화합을 우선하였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음 또한 알고 있다. 그러니 자신이 다수와 다른 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자신이 속한 집단이 택한 비극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사막에서는 개인이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집단은 몰락하므로.
- 사막에서 태어나 그 위를 걷는 유목민의 손에 자랐다.
비크람이라는 부족에서 태어났다. 개별의 성은 없이 부족의 이름을 성으로 쓴다. 피를 이은 혈육은 형제자매 셋. 부모도 건재하다. 비크람은 다른 사막의 유목민들과 마찬가지로 사막을 떠돌며 알-파티하 내부의 중계무역에 일손을 돕고 있다. 이들은 다른 부족들만큼 오래되었고, 다른 부족들만큼 부유하며, 다른 부족들만큼 신실하며 현명하다. 또한 자신들의 부유함을 지킬 수 있을만큼 성정이 맹렬하고, 어떤 전투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자들이나 사막을 찾는 손님이라면 누구든 나흘간 그들을 보호하는 풍습이 있기도 하다. 관습적으로 모든 성인은 짧은 단검을 하나씩 선물받는데 이것은 전투보다는 실생활에 사용하는 용도로 날이 굽고 손잡이와 칼집이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모든 부족민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드와 레밥을 연주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옛날 이야기 따위를 노래에 섞어 하는 것도 굉장히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들은 오래된 서사시. 뱀과 모래가 나오는 이야기.
- 개인의 소유물에 무감하다.
유목민은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것이 뚜렷하지 않으며, 가진 것도 쉬이 잃어버리게 되어 개인물품이나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유아기를 보낸 탓인지 니샨트는 그들에 대한 많은 것을 잊어버렸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삶의 일부를 여전히 성정의 일부분에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온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궁그루와 돌락 뿐으로, 다른 것은 다른 이들에게 쉬이 양보하고 선물한다
- 부족의 많은 자취 중 가장 확실한 것은 춤으로, 그는 맨발로 불길 주변을 돌고, 궁그루를 찰랑이고, 돌락을 두드린다.
그의 징조만큼이나 몸짓은 그의 심상을 명확히 대변한다. 때로는 그의 말과 표정보다도, 손짓이 더 확실한 답을 내어줄 정도로.
춤과 음악을 가까이하며 산 만큼 노래도 잘 부르는 편이다. 다만 춤과 음악, 노래에 관해서만은 고집스럽게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부족의 것만을 부르고 싶어하나 그마저도 예니센이 되어 부족과 떨어져 생활하며 점점 잊어가고 있다. 그래도 아직은 자장가 몇 가지를 부족의 방언으로 또렷하게 부를 수 있다.
- 이런 것까지 먹을 수 있어? 하고 생각될 정도로 식성이 좋다.
어린아이란 것이 흔히 그렇지만, 생물의 본질적인 욕구에 아주 충실한 생활을 하며 그런 자신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긴다.
- 요리실력은 그저 그런데, 손재주가 좋아 직물을 짜거나 자수를 놓는 것엔 제법 재능을 보인다. 숫자셈에도 능한 편이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저들이 동쪽으로, 동쪽으로 계속 나아와 직접적으로 파디샤의 앞마당을 건드린다면 그때는 이 지긋지긋한 메지디를 떠나 다른 곳으로 배치될 수도 있겠지. 그곳이 설령 전장일지라도 상관없어. 이제 내가 바라는 건 그냥 그것 뿐이야.”
〈발구름〉
발뒤꿈치를 부딪히고 바닥을 한번 찬다.사막의 바람에 쓸려 올라가는 옅은 모래, 창공을 나는 매가 떨어뜨린 깃털,
죽은 벌레의 오색찬란한 얇은 날개, 오아시스의 수증기,
그리고 새벽의 이슬이 떨어지는 소리. 이것들을 모아 사람으로 빚어내 그것을 니샨트라 부르자.
새카만 머리카락에 깊게 뒤집어 쓴 베일, 차갑고 핏기없는 입술과 나직하고 힘없는 목소리. 이것이 자이나딘 알 하람을 설명한다. 길게 물결치는 곱슬머리는 무겁게 하나로 땋아 늘어뜨리고, 흉 하나 없는 갈색 피부나 색이 옅고 어두운 보랏빛 눈동자, 머리에 뒤집어쓴 무거운 재질의 베일이 그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듯 하다. 끝이 쳐진 두꺼운 눈썹 사이엔 흰 진주를 붙였고 그 아래 눈 밑 살이 유독 도톰한 눈은 빛이 들지 않는 양 내리깔고 있을 때가 많다. 여전히 또래에 비해서는 어리고 부드러운 낯이지만 그 얼굴이 웃는 일은 이제 드물며, 표정의 변화도 거의 없다. 길쭉한 몸은 생각보다 단단하게 근육이 붙었으며 부드러운 곡선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차림은 깔끔한 예니센 제복. 근무 외의 순간에도 색이 옅은 밖의 옷을 주로 걸치며, 악세사리는 베일 아래 이마에 드리운 자수정 망 틱카 뿐으로 어디서도 나고 자란 부족의 오래된 문화와 생활방식을 엿 볼 수 있는 물건은 없다. 발목에 차고 있던 궁그루는 이제 없어지고 방울소리도 사라졌으나, 다만 징조를 행할 때에 부츠 굽 부딪히는 소리가 유독 선연하다.
날볕의 가장 따뜻한 부분, 어둠의 가장 안온한 부분,
하늘에 무리짓는 백로같은 순수함, 상처난 몰약나무가 만들어내는 위대함,
그것을 모아 태양을 향해 자라게 하자. 어떤 흔들림도 이 삶엔 없으리라.
━분명 그리했을텐데.
비관적이고/우울한/그러나 이목을 끄는
사람을 좋아하는 호인이었던 적도 있다. 그를 그렇게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 자이나딘은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무관심하고 무기력하다. 비관적이거나 염세적인 태도를 주로 보이며 긍정적이거나 낙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현실에 무릎 꿇려진 젊은 이상주의자, 그것이 자이나딘 니샨트 알 하람으로 사막을 떠나 메지디에 발이 묶인 순간부터 현실의 모든 현상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다양한 면에서 마주하려 애쓰다 제 이해와 상상을 넘어서는 것들에 실망하고 부딪혀 산산조각이 난 흔적이 성격 곳곳에 남아있다. 언제나 자신을 감추고 눈 감아 외면하는 순간에 자신이 가장 안전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끌고 마는 것은 그의 곁에 붙은 후광 탓이다. 파디샤의 가장 귀애하는 동생이라는 후광이 그의 뒤에 따라붙어 사교계를 오가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입을 통해 원치않는 온갖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 후로 자이나딘은 더 자신의 안으로 움츠러 들었고 타인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으며 타인과의 교류를 일방적으로 거절하는 일이 늘어났다. 다만 그마저도 하티제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 돈과 권세, 명망이 있는 사람들 앞에서는 행동을 자제하는 편이다. 그나마 인간답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일 때라고는 우드를 연주할 때뿐.
얕고 좁은/울타리 안의 맹목/잊어가는
그에게 인간은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대공의회의 사람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
주변에 의지하지 않고 대부분의 문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을 두드러지게 내보인다. 친우들이나 알 하람의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나, 그마저도 어릴 적의 밝은 모습과는 꽤 괴리가 있다. 차분하고 침착하며 쉽게 흥분하지 않고 감정을 숨긴다. 가끔 웃거나 떠들 때가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으로 대부분의 순간에 말 없이 상대의 말을 듣고 있는 경우가 많다. 감정을 스스럼없이 내어보였던 과거와 달리 대부분의 감정을 제 안에서 삭히고,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 파괴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 갈무리한다. 대신에 자신의 ‘안’에 들어있는 그들-가족과 친우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맹목적인 모습을 보이며,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는다.
주관이 뚜렷한/갈등을 원치 않는/책임감
그런 성향의 변화로 자기 주관이 강한 것을 넘어 고집이 센 꼴이 되었다. 남의 말에 쉽게 휘둘리지 않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흐름에는 내어놓고 불편한 태도를 취하나 여전히 다수의 주장에 지나치게 쉽게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 또한 여전히 필요 이상의 갈등을 원치 않는 탓이다.
다만 여전히 이런 ‘다수결에 복종하는 자세’가 가지고 오는 어떤 비극들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갈등을 회피하고, 화합을 우선하였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음 또한 알고 있다. 그러니 자신이 다수와 다른 주관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자신이 속한 집단이 택한 비극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 비크람의 니샨트
사막에서 태어나 그 위를 걷는 유목민의 손에 자랐다.
비크람이라는 부족에서 태어났다. 개별의 성은 없이 부족의 이름을 성으로 쓴다. 피를 이은 혈육은 형제자매 셋. 부모도 건재하다. 비크람은 다른 사막의 유목민들과 마찬가지로 사막을 떠돌며 알-파티하 내부의 중계무역에 일손을 돕고 있다. 이들은 다른 부족들만큼 오래되었고, 다른 부족들만큼 부유하며, 다른 부족들만큼 신실하며 현명하다. 또한 자신들의 부유함을 지킬 수 있을만큼 성정이 맹렬하고, 어떤 전투에서도 물러나지 않는 자들이나 사막을 찾는 손님이라면 누구든 나흘간 그들을 보호하는 풍습이 있기도 하다. 관습적으로 모든 성인은 짧은 단검을 하나씩 선물받는데 이것은 전투보다는 실생활에 사용하는 용도로 날이 굽고 손잡이와 칼집이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모든 부족민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우드와 레밥을 연주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개인의 소유물에 무감하고, 늘 궁그루를 찰랑이거나 돌락을 두드리며 춤과 노래로 신에게 예배하였던 때가 있다. 사막의 모래와 뱀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맛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던 먹던 때가.
자이나딘 알 하람은 그것을 ‘비크람의 니샨트’라고 부른다.
- 자이나딘 알 하람
1. 자이나딘 알 하람은 무스카트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스카트란 예로부터 알-파티하의 귀족들이 여름철을 보내는 별장이 모여있는 메지디 근방의 작은 도시로, 메지디에서 무스카트로 이르는 길목은 당연히 귀족들을 위한 상행이 주로 오가는 것으로 유명하며 그들을 노리는 도적떼 또한 심심치 않게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대공의회가 해산되고 3년 후, 정식 예니센이 된 니샨트는 메지디의 제마아트로 근무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파디샤 바예지데가 귀애하는 여동생 하티제가 자신의 자녀들과 무스카트로 휴가차 이동하게 되었는데 그 근방의 도적을 염려한 파디샤의 명으로 예니센이 하티제의 호위를 맡게 되었다. 본디 베이릭이 맡았어야 할 경호임무였으나 당시 접경지 분쟁이 심화된데다 무스카트는 실질적으로 메지디와 영토를 공유하고 있다 보아도 무방하므로 임시적으로 메지디의 제마아트에게 맡겨졌고 니샨트는 그 중 하나로 배치되었던 것이다.
평소대로라면 도적들은 후사를 두려워하여 귀족의 행렬에는 손대지 않을 것이었으나, 그 날은 조금 달랐다. 평소의 귀족 행렬과 달리 수없이 늘어서 패물과 식량을 옮기는 시중인들에 눈이 먼 도적들이 모래폭풍을 이용하여 이들을 도적질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다만 그들은 행렬에 사막의 기후에 대단히 민감한 사람이 한 명 있었다는 점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른 시간부터 니샨트는 모래폭풍을 예견하고 근처의 골짜기에서 밤을 보낼 것을 권유했고 행렬은 그의 조언에 따라 이동했다. 도적들은 자신들의 계획 대신 골짜기라는 지형을 이용하여 행렬을 몰살하고 재물을 빼앗기로 계획을 변동하고, 모래폭풍이 잦아든 새벽녘 절벽 위에서 돌을 굴러 떨어뜨렸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 달리 성행을 사용할 수 있는 군인들이 경호인력으로 붙은 일행은 약간의 피해는 있었으나 큰 문제 없이 도적떼를 제압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와중에 도적들은 경호대상이 타고 있던 마차를 향해서도 거리낌없이 화살을 쏘아붙이거나 공격을 감행하였는데, 우연히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니샨트는 섬세하게 마법을 운용하는 모습과 화살을 막기 위해 아이들 앞에 몸을 던지기까지 하는 모습을 하티제에게 각인시키고 말았다.
1-1. 그러니까 그것은, 정말로 불운한 우연에 지나지 않았다.
2. 하티제와 그의 아이들은 무스카트에 머무는 동안 니샨트와 제법 깊은 친분을 쌓았다.
니샨트는 그 친분에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고, 단지 하티제와 아이들 또한 ‘친구’가 되었음에 기뻐했다. 그러나 이 상냥한 왕녀는 큰 공을 세운 이 젊은 예니센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했다. 하여 메지디로 돌아온 후 그는 무스카트로 가는 길에 있었던 이야기를 파디샤에게 고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가 좀 더 수월하게 승승장구 할 수 있게 베이릭으로의 재배치를 보상으로 내려주길 청했으며, 파디샤는 그게 썩 나쁘지 않은 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니샨트에게는 가장 큰 불운이었다.
3. 베이릭으로 재배치 되는 과정 또한 불운했다.
니샨트는 전투 상황에서의 그의 신력 운용이 궁정학교에서 수학하며 받은 기록들과 다소 상이하다는 평가를 반복해서 듣게 되었고, 이로 인해 혹독한 상황에서 기본적인 체력, 신력, 신력의 운용등의 평가를 다시 받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실제 그의 능력은 일반적인 동년배의 예니센보다 다소 뛰어난 편이며, 특히 주변의 시류를 읽는 능력이 기민하여 자신의 능력을 대단히 섬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있음이 판명되었다. 하여 그는 제마아트로 배치된지 1년도 채 되기 전에 베이릭으로 재배치 되었다.
3-1. 누군가는 그 과정에서 ‘그러게 우리가 저 녀석을 그냥 대공의회에 보낸게 아니었다’고 말했다고도 한다.
4. 그리고 하티제는 그를 사교계에 소개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베이릭으로 근무하는 것 또한 니샨트의 성미에 맞지 않는 일이었으나 더욱 버틸 수 없는 것은 하티제의 ‘감사’였다. 조용하고 얌전한 사람이라지만 하티제 또한 왕족,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직계였으니 사교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는 없었는데, 하티제는 이 젊은 예니센이 사교계에서 인망을 쌓으면 앞으로의 일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또 그의 자식들은 자신들에게 ‘귀족이 아닌 예니센’ 지인이 생겼음을 주변에 자랑하고 싶어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혹은, 높으신 분의 ‘약간의 요구’로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니샨트를 데리고 사교계에 나섰다. 처음에는 그저 하티제에게 접근하기 위해 그를 이용하던 이들도 그가 베이릭이 되고 사교계에서 발을 넓혀감에 따라 니샨트에게 직접적으로 접근하게 되었고 사교계에서 흔히 떠도는 소문-어느 귀족과 그가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을 키워나가고 있다는 낭만적인 헛소리부터 불미스러운 불륜 이야기에 이르기까지-들까지 익숙하게 그의 발 뒤꿈치에 따라붙게 되었다. 그는 그렇게 메지디 내에서 원치않는 울타리를 계속 넓혀갔다.
5. 그리고 그것은 다소 불운한 정세와 맞물려 니샨트를 정치적 간판으로 키워내는 결과를 낳았다.
비크람은 정주하지 않으므로 직접적인 독립 시도와는 거리가 있으나, 그들은 어디에나 있으며 어디에도 없으므로 자신들이 보고 들은 것들을 전하는 말 한마디로 사람들을 들썩이게 만들 수 있었다. 오래간 사막을 떠돌며 살아왔으므로 사막에 발을 걸친 속령들과는 깊은 친분을 맺고 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닌데 중개무역을 주로 하는 위치다보니 사막 곳곳의 이야기를 다른 곳곳으로 퍼뜨릴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단 이야기다. 해서 제국은 비크람이 사막의 상황에 대해 다른 도시들에 입을 열기를 원치 않았는데, 마침 그들의 손에는 부족장의 조카가 쥐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조카는 또 감히 벗을 수 없는 후광을 업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제국은 그를 훌륭하게 이용하기로 했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사막의 오래된 피를 타고 난, 신의 축복을 받은 종자가 파디샤를 지지하며 무궁한 충성을 맹세하고 가까이서 그를 보필한다는 말처럼 사막을 진정시키기 좋은 선동이 달리 있을까.
6. 그 모든 것이 니샨트를 망가뜨렸고, 1397년 후반기부터 그는 급격하게 비관적으로 변해갔다.
7. 그러한 니샨트를 가엾게 여긴 것이 파리드 알 하람으로, 그는 니샨트를 양자로 삼아 1398년 알 하람 가문에 입적시킨다.
- 알 하람
알 하람은 알-카티 근방 변경 출신의 가문으로, 해당 지역의 총독을 도맡아 하던 가문이기도 하다. 현 가주인 파리드 알 하람은 예니센으로 복무하다, 현재는 궁정학교에서 예니센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 외에도 대부분의 구성원이 군인이나 관리 등 국가의 여러 방면에서 충성을 바치고 있으며 현재는 이변을 피해 많은 구성원들이 메지디 혹은 메지디 인근에서 거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또한 오래간 유목을 하다 제국에 합병되며 정주하게 된 일족이며 자이나딘과는 궁정학교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기에 가문 내에서의 자이나딘의 입지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외부에서는 파리드 알 하람에게 장성한 자녀가 넷이나 있고, 이미 하티제라는 뒷배를 입은 자이나딘이 그다지 풍족하지 않은 알 하람 내에서 굳이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기에 가문 내의 위계를 망가뜨리지 않으리라 판단되어 화목한 분위기를 꾸며낼 수 있는 것이라 보는 시선이 많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가문 내에서 자이나딘 알 하람은 솜털이 빠지기 시작한 청소년기의 강아지 취급을 받고 있으며 밥그릇을 들고 그를 쫓아다니는 형제들의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는 한다.
- 전투
자이나딘의 신력 자체는 다른 예니센들에 비해 특별하게 강하다거나 특출나게 파괴적이진 않다. 그러나 그는 자연환경을 기민하게 읽을 수 있는 눈이 있으며 특히 사막에서는 타인이 느끼지 못하거나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을 신속하게 알아내 자신의 성행에 섞는 행위에 능하고, 그것을 대단히 섬세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 사막외의 지역에서는 다수를 상대하는 전투나 높은 파괴력이 필요한 전투보다는 암살이나 기습, 요인 보호등에서 두각을 드러내나, 사막에서는 다수를 상대하는 전투도 어렵지 않게 해내며 비슷한 정도의 신력을 지닌 예니센보다 더 큰 파괴력을 내는 성행을 행하기도 한다.
무기는 짧은 단검 두개를 사용한다. 사막의 것들을 모두 잊어버린 듯 살고 있지만 검과 검술만은 어려서부터 몸에 익은 비크람의 것 그대로다.
- 앵무새
커다란 회색앵무를 키우고 있다. 아직 나이가 어린 것으로 꼬리깃 뿐만이 아니라 배와 가슴 언저리에도 붉은 깃이 난 것이 특징적. 제법 똑똑하고 사람 말을 흉내내는 것도 능하다. 이름은 저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