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흑색 머리카락, 짙은 자줏빛의 눈, 진한 인상과 늘씬한 장신의;
낯을 마주하면 화려한 귀걸이보다도 늘 그 눈에 시선이 끌렸다.
직선으로 떨어지는 검은 머리카락은 결이 좋고, 유독 색이 짙다. 앞머리 한 움큼 정도가 턱선 언저리에서 잘려 있는 것을 제하면, 등 중반에 이르는 길이의 긴 머리카락은 거의 항상 낮은 위치에서 단정하게 하나로 묶인 채였다. 어떤 상처나 흠이 없는 상아색 이마 위의 검은 눈썹이 머리카락만큼 눈에 띄게 짙고, 조금 아치를 그린다. 길고 숱 많은 속눈썹이 선명한 색의 눈에 한 번 더 그늘을 드리우고, 약간 웃는 듯한 긴 눈매는 확연히 아래로 처져 있다. 윤곽이 뚜렷하고 조형적인 이목구비가 독특한 느낌을 풍긴다. 특히 진한 적포도주빛을 띠는 투명한 눈동자가 그랬고, 그런 수려함이 오히려 성별을 가늠하기 어렵게 했다.
몸짓이 느리고 탄력적이다. 절도있기보다는 귀족적인 거만함으로; 서두르는 법이 없고 이따금은 짜증이 날 만큼 느긋한 데다 비스듬했으며, 그런 짓의 대부분이 심지어는 의도적이었다. 다만 눈썰미 좋은 이들은 그 움직임의 기저에 타고난 신체와 운동감각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얼마 전 훅 자란 체격이 작지 않지만, 성례의를 갖춰 입은 마르고 탄탄한 신체는 둔하거나 어리숙해 보이는 법이 없다. 손발이 큼직하지만 손끝이 섬세하다. 꾸미고 다듬은 듯한 외관. 자주 장갑을 꼈고, 꽤 흔하게, 아슬아슬하게 국교의 미덕에 걸치는 선에서 화려한 장신구들을 착용했다.
간단히 형언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거만하고, 방만하고, 기만적인 모습이다.
“그 애는, 정확히, 축복받은 재능과 그 품성 간에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처럼 보이지.”
1. 태도
1.1. 거만한 | 살가운 | 방만
거만이라는 말이 첫 번째로 그를 수식한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음에도 상대를 내려다보는 듯한 그 특유의 특권적 태도를 그다지 고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살가움은 미덕이기 마련임에도, 그의 사례에서는 예외가 되었다. 대개 누군가를 화나게 하거나 관심 있는 이의 파편적인 호감을 사는 데 그런 붙임성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언제나 제멋대로 풀어져 있고 안일하다. 방만하고, 사사건건 무례하다; 마치 지켜야 하는 것을 모조리 머리에 넣고 익힌 후에 거꾸로 하고 있는 것처럼.
1.2. 변덕 | 비일관적인 | 기분파
심지어는 변덕스럽다. 종잡기 어렵고 기분과 취향에 따라 태도를 쉽게 달리했다. 인격이 몇 개는 되는 양 웃는 얼굴인가 하면 다음 순간 무표정해졌고, 지루해 죽겠다는 권태로운 낯과 활기차고 낙천적인 안색, 또는 트집잡을 거리를 찾아 반짝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 사이를 제멋대로 오갔다. 그리고 일관성 없는 그 모든 태도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변의 평은 그런 방향으로 흔히 수렴했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쪽으로.
1.3. 냉소적 | 독선 | 무관심
그 자신의 변덕스러움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만큼 독선적이었다. 자기중심적이며 쉽게 판단한다. 그 외의 가능성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듯 보인다. 판단과 의견에서는 흔히 사고의 깊이와 폭이 드러났고, 상당히 통찰력 있었으나, 그 내용이 왜곡될 만큼 냉소적으로 굴었다. 잘 웃지만 결코 기분 좋은 미소는 아니다. 일부러 하는 듯한, 웃음 섞인 곡해가 아닐 때에도 신랄하고 날카로운 조로 말하는 버릇이 있다. 유일하게 참작할 만한 것은; 그 자신도 그런 냉담함의 표적에서 예외는 아니라는 사실뿐이었다.
2. 성정
2.1. 느긋한 | 소탈함 | 낙천적
호감을 사기 어려운 그 특유의 페르소나를 헤치고 보면 근본적으로 성정 자체는 느긋하고 담백한 듯했다. 화려한 장신구들을 두르고 다니며 과시적으로 구는 것치고 허영심이 없다. 서두르는 법이 없고, 조바심을 내는 일이 드물다. 부정적인 일에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단순한 것들에서 쉽게 즐거움을 찾는다. 비판적인 기질을 감추지는 못했으나, 의외로 비관보다는 낙관에 가까운 조가 자연스러워 보였다.
2.2. 천재성 | 고집 | 직관적
고집스럽고 직선적이지만, 판단이 바뀌는 경우 유연하고 쉽게 선회했다. 온갖 성격적 결점에도 불구하고 비상했다. 그런 점에서 그 괴팍한 성격을 천재성의 소산으로 읽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남다른 시각을 견지하며, 직관적으로, 복잡한 과정 없이도 쉽게 세계를 관찰하고 몰입하고 이해하는데, 그의 자기신뢰와 오만은 바로 그런 사고 과정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본인은 이렇게 응답했다: “내가 왜 나를 해명하고 설득해야 하지? ‘옳은 것을 받아들인다’는 명제만으로 이미 충분한데.”
2.3. 충동적 | 격정 | 거리감
어떤 태도를 취하든 비평과 분석에 있어서는 날카로웠고, 그렇게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감정, 호오, 그 자신의 상태 따위를 사유로 번복하거나 의지를 꺾는 일이 없었으나, 가끔 고요한 격정에 사로잡힌 채 그 스스로조차 그를 다루지 못하는 듯 보일 때가 있었다. 그 자신을 어딘가에 몰아넣듯 충동적인 짓을 저지르고 손수 수습했다. 그럴 때마다 멜키오레 곤차가는 묘한 눈빛이 되곤 했다; 그 스스로를 이야기의 주체가 아닌 등장인물로 보려는 것처럼. 어떤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그 자신에게 의식적인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다시 궤도에 오르는 길 위에서, 감정을 삭이듯이.
3. 추측과 평가
3.1. 모순 | 이중성 | 재능
모순투성이. 이중적이다. 살가움과 불편함 사이를 변덕스럽게 오간다. 누구나와 쉽게 어울리면서 그들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지적하는 일을 생의 유희로 삼는 듯 보이고, 타인의 신앙을 문제삼으면서 그 스스로가 가장 문제적인 신학생 중 하나였다. 타인에게 적용하는 규율로부터 마치 자신은 예외인 것처럼 군다. 다만 의뭉스럽게 구는 것치고는 노골적이었다; 그는 비밀의 내용을 말하지 않으나, 비밀이 있다는 사실은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때때로 어떤 사랑은 그렇게 증명되기도 한단다. 모순, 불일치, 감히 헤아릴 수도 없는 부조리로.”
1. 가족과 배경
1.1. 볼시니의 곤차가(Gonzaga de Volsinii)
1.1.1. 밀라나 서쪽 인근의 도시인 ‘볼시니’를 영지로 가지고 있는 오래된 가문. 볼시니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지형의 도시로, 과거 일종의 요새이자 군사 기지로 이용되었다. 곤차가 가(家)의 조상이 현재의 볼시니 땅에 거주한 것은 원년 이전 카엘룸 왕국 시절의 일이나, 이름 등에 남은 자잘한 흔적 외에 그 역사를 유의미하게 기리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의 계보가 오랫동안 명맥을 이어 오고 있다는 사실에 꽤 자부심을 가지는 편이다.
1.1.2. 대대로 대교구의 총독 및 추기경직을 이어 왔으며, 볼시니의 지역 유지로서 실질적으로 도시를 다스리고 있다. 현 볼시니 공작 빈첸초 곤차가는 로살리아 이브레아와의 사이에 다섯 자녀를 두었다. 멜키오레는 그중 셋째. 결혼한 첫째 프란체스카와 포이오를 오가는 로살리아를 제하면 곤차가 성씨를 쓰는 대부분 볼시니에 거주 중이다.
1.1.3. 소문 약 20년 전 파문당한 가문 구성원이 한 명 있다. 주인공은 라르티아 곤차가로, 곤차가 가에서도 상속권을 박탈당했다. 곤차가 가에서는 가문의 불명예로 여겨 입에 올리는 일이 없으나 꽤 유명한 이야기.
1.2. 포이오의 이브레아(Ivrea de Poio)
1.2.1. 이브레아 가(家)의 근거지는 ‘포이오’로, 바다와 접해 있으며 비가 자주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포이오는 한때 문두스 대륙 가장 서쪽 지방의 중심으로 기능한 적 있었던 도시였으나, 성국 확장 시기 성국의 국경 내로 포섭되었다. 특유의 지역색을 유지하며 중앙정치의 참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오다가, 몇십 년 전 곤차가 가와의 혼맹을 맺은 후 대교구로 승격되었다.
1.2.2. 이브레아 가는 성국에 복속되기 이전, 왕실이었던 역사를 내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포이오 공작의 후계자였던 로살리아 이브레아가 빈첸초 곤차가와 혼인하며 그의 손윗형제인 시브란 이브레아에게 공작위가 승계되었었으나, 사망하여, 현재는 이례적으로 로살리아 이브레아가 포이오 공작의 직무를 대행하고 있다. 몇몇의 곤차가 가문 사람들이 포이오에 머물고 있다.
1.2.3. 소문 중앙정치에 발을 들인 이들이라면 누구나 포이오 공작위가 아직도 누군가에게 정식으로 승계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빈첸초-로살리아의 장남인 페데리코가 포이오와 곤차가의 작위를 차례로 모두 이어받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여전히 그렇지 않은 상태.
1.3. 성장
1.3.1. 곤차가-이브레아의 결합은 꽤나 화제가 되었던 통혼으로, 잡음 없이 성사되었다. 약혼 서약은 볼시니의 성당에서 맺었으나, 뜻밖에 결혼식은 대교구로 승격된 포이오의 대성당에서 이루어졌다.
1.3.2. 그 해 프란체스카(24)가 태어났고, 5년 후 페데리코(19)가 출생했다. 이듬해 약간 이르게 멜키오레(18)가 태어났다. 아래로는 각각 세 살, 여섯 살 터울의 동생이 하나씩. 이름은 프란체스코(15), 베아트리체(12).
1.3.3. 프란체스카는 신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총독 생활을 짧게 거친 후 성국의 다른 지방 세력가인 사벨리 백작과 통혼했다. 공공연한 후계자인 둘째 페데리코는 가문 내에서 교육받으며 성장했다. 현재 지역 귀족으로서 빈첸초와 함께 볼시니 대주교를 도와 지역을 통치하고 있다.
1.3.4. 멜키오레 곤차가는 아주 어릴 적 성력 사용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징조 없는 아이’로 뭇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성장하면서는 천재성을 드러내며 두드러져 ‘가장 어린 신학자’로 불리기도 했다. 두 살경 세례받았고, 당연하게 중앙신학교에 입학하여 수학 중. 프란체스코는 기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는 중이고, 베아트리체는 얼마 전 생일에 알-파티하 산의 보석으로 장식한 목걸이를 선물받았다.
2. 멜키오레 곤차가
2.1. 이름
2.1.1. 본명
‘볼시니와 포이오의 멜키오레 투란 곤차가(Melchiorre Turan Gonzaga de Volsinii e Poio)’. 전형적인 성국 귀족식의 이름으로, 세례명-아명-성-장원 순서로 나열되어 있다. 신학교 입학 후 장원 및 아명 ‘투란’을 제외한 상태.
2.1.2. 호칭
대개 ‘그’, 공식적으로 ‘곤차가 공작의 둘째 아들’. 가끔 성별을 혼동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기분에 따라 “나를 모르냐”며 지적할 때가 있는 한편 이유 모르게 호의적인 웃음을 보일 때도 있었다.
2.2. 특징
2.2.1. 신체, 음성, 인상
날씬하고 긴, 비율 좋은 신체. 수브타나에 덮여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려우나 꽤 말랐다. 최근 키가 늦자라는 듯 더욱 그렇게 보인다.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우며 울림이 있다. 늘 느슨한 와중에도 발음이 정확하고, 잘 들린다.
2.2.2. 이력과 재능
어릴 적부터 불세출의 천재로 불렸다. 신학 면으로 이미 몇 편의 글을 집필했으며, 이따금 학자들과의 논쟁에 참여했다. 주로 다루는 주제는 ‘보편자’, 즉 신의 양태와 우리가 쓰는 개념의 실재에 관한 논쟁. 논증의 엄밀함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문투로도 이름높다.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 수학, 과학, 예술 등 다방면으로 학식이 깊다고 평가받는다. 요즘 관심을 가진 분야는 화성학과 작곡.
2.2.3. 기타
예술애호가, 다독가. 성국에서 쓰이는 언어들 외에도 몇 가지 언어를 능통하게 할 줄 알지만, 학술적인 분야 외에서 쓰는 일은 극히 드물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악필. 생각보다 검 따위를 쓸 줄 아는 듯 보일 때가 있다.
2.3. 평판
2.3.1. 긍정적인 평가는 모두 그의 능력에 관한 것이다.
2.3.2. 성정과 사생활 따위가 평판을 망쳤다. 어릴 적에는 기재로 불리며 ‘불세출의 천재’, ‘가장 어린 신학자’로 흔히 일컬어졌으나, 그런 호명이 무색하게 자라며 몇 가지 오명을 얻었다: 탕아, 거만한 망나니. 아슬아슬한 선에서 신학교의 규율을 지키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방학을 좋아한다. 개중 가장 불명예스러운 것은 ‘슈미즈의 철학자’라는 별칭인데, 늦은 시각까지 내실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다 얻은 것이다. 전반적으로 성직자나 신학생에게 흔히 기대되는 정결함과는 거리가 멀다. 본인은 그를 내심 흥미롭게 여기는 듯했다.
2.3.3. 그럼에도 성전의 신학자들은 그의 신앙심만은 의심하지 않았고, 사실 결코 그를 배제하지 못했다. 비슷한 태도로 그들은 이렇게 평했다; 나이다운 대담함, 젊은 학자답지 않은 날카로운 언어와 논증의 정교함. 치밀하고 일관성 있게 짜인, 그러나 단순한 그 체계를 보다 보면, 소름끼치는 천재성이 그것을 관통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고. 어떤 노학자는 무표정하게 덧붙였다; 그것은 천부적인 재능이며, 주께서는 오직 그에게만 그런 권한을 부여하셨다고. 그것은 성력 이상의 축복으로, 그는 감히 사고를 통해 주께서 지으신 세계의 구조도를 읽고 이해하는 듯할 때가 있다고.
2.3.4. 오래된 풍문 중 하나로, 형제자매와 가까운 가족들 중 그 혼자만 눈동자의 색이 붉다는 점에 관한 의혹이 있다. 본인은: 점잖게는 비슷한 색의 눈동자를 가진 친척들을 에둘러 거론했고, 성가신 경우 코웃음으로 일관했다.
3. 밀라나 대공의회
3.1. 계기
3.1.1. 당시 8학년, 심화 과정 재학 중 선발되었다. 신학생들 사이에서 성적과 행실 양면에 대해 각각 긍정적, 부정적인 의미로 이름높았다. 당시 성전의 학자들과 함께 보편자 논쟁에 대한 원고 몇 편을 집필하던 도중이었다.
3.2.2. 선발 몇몇 논란이 있었으나 ‘우수한 능력’을 사유로 선발되었다. 본래 학업보다는 사적인 즐거움에 관심이 큰 데다,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피해갈 수 있을 법한 그 배경 탓에; 참여 여부가 불확실할 것으로 공공연하게 예상되었다. 그러나 의외로, 지명되자, 곧 집필에서 빠지고 대공의회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3.2.3. 표명 “세계의 중심인 성황제국의 예비 성직자요, 성력이라는 축복을 받은 자로서, 대륙의 이상현상으로 인하여 주의 백성들이 겪는 고통을 좌시할 수는 없”었으며, “주께서 주신 기회를 믿는 바, 영광된 일”이라고 본인은 굳이 밝혔으나, 아무도 진지한 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3.2. 활동
3.2.1. 평판 텃세 부리는 성국인. 전형적인 서방 교회 귀족. 같은 성국인들도 그를 딱히 정결하고 신실한 성직자로 일컫지는 않는다. 집결 초기 몇몇 소수 방언을 제외한 언어를 통역 없이 알아듣고 실제로 소통하면서도, 불리할 때는 성국 서부-중앙의 카엘룸어로만 말해 주변의 빈축을 샀다. 얼마 후 시정을 권고받았다.
3.2.2. 행실 다만 평소에 말로 이런저런 트집을 잡는 것에 반해, 기묘하게도 실질적으로 어떤 대우를 달리하는 일은 없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거만하게 굴었고, 스스로를 임무를 진 대공의회의 일원으로 여겼다. 진위는 알 수 없더라도 최소한 대공의회의 공식적인 일에는 늘 협력적이었다. 그다지 도움을 받고 싶게 만드는 태도는 아니었으나 도움을 구하면 어떤 식으로든 성의를 보였다. 나아가 본인은 드러내 놓고 말하는 일이 없었으나, 실제로 성국은 물론 타국의 신학 체계 및 교리, 예술, 학문적 성과, 최근 유행과 교류 품목 등에도 상당히 해박한 듯했다. 달리 말하자면, 그 악명은 오롯이 사적인 교류의 장에서 보인 모습들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3.3. 전망
3.3.1. 미래 그의 미래에는 별달리 의문을 제기할 만한 부분이 없다. 누구나 그의 몇 년 후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그는 아마도 신학교를 졸업하고, 신학 저서의 집필을 계속하고, 신과 성황의 뜻에 따라 성직자로 일하거나, 어쩌면 성전의 규율을 견디지 못하고 환속하여 곤차가 가의 일원으로 살아갈 것이다. 어느 쪽이든 앞으로 남은 그의 삶을 걱정할 이는 아무도 없었고, 그 스스로도 그런 무관심을 마땅하게 여겼다; 그것이 그를 가장 거만해 보이게 했다.
긴 흑색 머리카락, 짙은 자줏빛의 눈, 진한 인상과 늘씬한 장신의;
여전히 낯을 마주하면 그 화려한 귀걸이보다 그 눈에 시선이 끌린다.
직선으로 떨어지는 검은 머리카락은 결이 좋고, 유독 색이 짙다. 앞머리 한 움큼 정도가 턱선 언저리에서 잘려 있는 것을 제하면, 이제는 등 중반에 이르는 길이의 긴 머리카락을 거의 항상 푼 채로 다닌다. 아직도 어떤 상처나 흠이 없는 상아색 이마 위의 검은 눈썹이 아치를 그린다. 길고 숱 많은 속눈썹이 선명한 색의 눈에 한 번 더 그늘을 드리운다. 조금 더 깊이가 생긴, 약간 웃는 듯한 긴 눈매는 확연히 아래로 처져 있다. 7년이 지나 윤곽이 한결 더 뚜렷해져 조형적인 이목구비가 독특한 느낌을 풍긴다. 특히 진한 적포도주빛을 띠는 투명하고 날카로운 눈동자가 그렇고, 눈빛에는 희미한 금빛이 두드러지며, 그런 수려함이 더욱 성별을 가늠하기 어렵게 한다.
느리고 탄력적인 몸짓은 변하지 않았다. 절도있기보다는 귀족적인 우아함 역시 여전하다; 서두르는 법 없이 느긋하고 비스듬하며, 멜키오레 곤차가는 주변 사람들이 그의 속도를 기다림을 안다. 그 움직임의 기저에는 타고난 신체와 운동감각이 있으나, 이변지나 전장이 아니라면 드러내는 일이 드물다. 단단하게 여문 체격은 균형잡힌 청년의 선으로 들어섰고, 고급의 천을 두른 신체는 둔하거나 어리숙해 보이는 법이 없다. 손발이 큼직하지만 손끝이 섬세하다. 다듬음이 익숙한 듯한 외관. 언젠가부터 장갑을 잘 끼지 않고, 이제는 더 거리낌없이 화려한 장신구들을 착용했다.
7년이 지난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그는 시선을 끈다.
“그 애 자신조차, 그 자신에 대해 다 알 수 있을까?”
1.1. 오연한 | 느슨한 | 방만
특유의 오만하고 초연한 태도가 첫 번째로 그를 수식한다. 의식적으로 상대를 내려다보지는 않으나, 세상이 쉬운 자들 특유의 특권적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 살가움은 미덕이기 마련임에도 그의 사례에서는 여전히 간혹 예외가 된다. 대개 누군가를 화나게 하거나 관심 있는 이의 파편적인 호감을 사는 데 그런 붙임성의 대부분을 할애하나, 7년 전보다는 주변에 무관심해졌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도 느슨하고, 방만하고, 때때로 무례하다; 지켜야 하는 것을 모조리 익힌 후에도, 이따금은 거꾸로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으므로.
1.2. 변덕 | 비일관적인 | 기분파
여전히 변덕스럽다. 종잡기 어렵고 기분과 취향에 따라 태도를 쉽게 달리하는 모양은 어쩌면 더 심해진 듯 보이기도 한다. 웃는 얼굴인가 하면 다음 순간 무표정해지고, 권태로운 낯과 활기차고 낙천적인 안색, 또는 여전히 예전처럼 반짝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 사이를 더욱 제멋대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보란듯 오간다. 일관성 없는 그 모든 태도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다만 그의 주변은 그 태도의 연유를 안다. 그것은 일종의 연극이다.
1.3. 냉소적 | 독선 | 무관심
그 자신의 변덕스러움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만큼 독선적이다. 자기중심적이며 쉽게 판단한다. 그 외의 가능성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군다. 판단과 의견에서는 흔히 사고의 깊이와 폭이 드러났고, 상당히 통찰력 있었으나, 그 내용이 왜곡될 만큼 냉소적인 투로 말할 때가 있다. 잘 웃지만 그 종류가 다양하다. 일부러 하는 듯한, 웃음 섞인 곡해가 아닐 때에도 신랄하고 날카로운 조로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여전히, 어쩌면 더욱; 그 자신도 그런 냉담함의 표적에서 예외는 아니다.
2.1. 느긋한 | 소탈함 | 낙천적
그 특유의 페르소나를 헤치고 보면 근본적으로 성정 자체는 느긋하고 담백하다. 화려한 차림과 장신구는 의식적인 과시일 뿐 허영심이 없다. 서두르는 법이 없고, 조바심을 내는 일이 드물다. 부정적인 일에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단순한 것들에서 쉽게 즐거움을 찾는다. 비판적인 기질을 감추지 못했고, 최근에는 더욱 그랬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끝내는 비관보다는 낙관에 가까운 조를 내놓는다. 몇몇은 그가 생각보다 쉽게 주변에 정들고, 친밀한 이들에게는 맡겨 놓은 듯 살갑게 굴기도 함을 모르지 않는다.
2.2. 천재성 | 고집 | 직관적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흔히 그렇듯 고집스럽고 직선적이지만, 판단이 바뀌는 경우 유연하고 쉽게 선회했다. 어떤 규준에 의견을 맞추기보다는 의심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들을 근간으로 생각하고, 추론하고, 결론을 도출했다. 그런 고집은 이따금 의지라기보다는 그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기질처럼 보였다. 온갖 성격적 결점에도 불구하고 비상하다. 그런 점에서 대개는 그 괴팍한 성격을 천재성의 소산으로 읽었다; 그는 남다른 시각을 견지하며, 직관적으로, 복잡한 과정 없이도 쉽게 세계를 관찰하고 몰입하고 이해하는데, 그의 자기신뢰와 오만은 바로 그런 사고 과정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2.3. 충동적 | 격정 | 거리감
어떤 태도를 취하든 비평과 분석에 있어서는 날카로웠고, 그렇게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는 감정, 호오, 그 자신의 상태 따위를 사유로 번복하거나 의지를 꺾는 일이 없었으나, 고요한 격정에 사로잡힌 채 그 스스로조차 그를 다루지 못하는 듯 보일 때가 있다. 그 자신을 어딘가에 몰아넣듯 충동적인 짓을 저지르고 공들여 손수 수습하는 일이 조금 더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멜키오레 곤차가는 묘한 눈빛이 되곤 했다; 그 스스로를 이야기의 주체가 아닌 등장인물로 보려는 것처럼. 어떤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그 자신에게 의식적인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다시 궤도에 오르는 길 위에서, 계속, 감정을 삭이듯이.
3.1. 모순 | 눈에 띄는 | 재능과 광기
그는 특별히 자신을 숨기지 않으나, 다만 깊은 이해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여전히 요구한다; “생각해, 그대는 누구지?” 타인을 깨뜨리려 시도하면서, 그 자신이 부서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전한 모순투성이.
그는 7년 전 가장 문제적인 신학생 중 하나였고, 그 이후 가장 문제적인 신학자가 되었으며, 이제 와 가장 문제적인 개인으로 불린다. 타인에게 적용되는 규율로부터 마치 자신은 예외인 것처럼 군다. 다만 새삼스럽게도 그것은 정말로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가장 어린 신학자, 천재, 징조 없는 자, 탕아. 그 모든 것이 이제 와 그를 이르는 말이므로.
“그 애에게 따라붙는 수많은 표현들은 일부분 내가 만든 것이고, 대개는 그 애 스스로 만든 것이지. 그러나 돌아온 탕아가 되기에는, 그 애는 단 한 번도 신의 품을 떠난 적이 없었어.”
1393
신학교 졸업, 사제 서품
학술 목적의 대성전 상주 주교위 제의, 주교 서품
집필 작업 복귀, 신학서 <제일원리론> 발표
1394
환속
세속인 신분으로 대륙 횡단(포이오~국경)
1395
세속인 신분으로 대륙 횡단(국경~볼시니)
포이오 공작위 승계, 포이오 기사단 재정비
본인의 소속(성력 사용) 문제로 대성전 소환
1397
논리학 저작 <개념과 명제에 관하여> 발표
1398
보편자 논쟁 관련 논고 다수 발표: 학문적 전회
논고의 이단 심판 여부로 종교 재판, 무혐의
1399
미사곡 <작은 미사(Missa Brevis)> 발표
1400
<콘스탄티노파 대공의회> 소집
1.1. 볼시니의 곤차가(Gonzaga de Volsinii)
1.1.1. 밀라나 서쪽 인근의 도시인 ‘볼시니’를 영지로 가지고 있는 오래된 가문. 볼시니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인 독특한 지형의 도시로, 과거 일종의 요새이자 군사 기지로 이용되었다.
1.1.2. 대대로 대교구의 총독(대주교) 및 추기경직을 이어 왔으며, 볼시니의 지역 유지로서 실질적으로 도시를 다스리고 있다. 현 볼시니 공작 빈첸초 곤차가는 로살리아 이브레아와의 사이에 다섯 자녀를 두었다.
1.1.3. 약 20년 전 파문당한 가문 구성원이 한 명 있다. 주인공은 신학자 라르티아 곤차가로, 문제적 저작을 발표한 후 파문당해 곤차가 가에서도 상속권을 박탈당했다. 저작은 더이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불태워졌다. 곤차가 가에서는 가문의 불명예로 여겨 입에 올리는 일이 없다.
1.2. 포이오의 이브레아(Ivrea de Poio)
1.2.1. 포이오는 바다와 접해 있으며 비가 자주 내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때 이브레아 왕조의 왕국으로서 문두스 대륙 가장 서쪽 지방의 중심으로 기능한 적 있었던 도시였으나, 성국 확장 시기 공작령으로 포섭되었다. 이브레아는 중앙정치의 참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오다가, 곤차가와의 혼맹 후 대교구로 승격되었다.
1.2.2. 최근 젊은 포이오 공작의 승계 후 테레사 추기경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며, 서부의 한 축이 되고 있다. 포이오를 중심으로, 비교적 나중에 성국령으로 통합된 지역들 간 왕래가 잦아졌다.
1.3. 근황
1.3.1. 사벨리 백작부인 프란체스카 곤차가(31)는 현재 베나치아의 사벨리 백작저에 거주 중이며, 둘째 페데리코 곤차가(26)는 현재 젊은 볼시니 공작으로서 볼시니 대주교를 도와 지역을 통치하고 있다. 넷째 프란체스코 곤차가(22)는 기사 서임을 마친 후 볼시니 기사단에 배속되었고, 베아트리체 곤차가(19)는 문학적 재능과 심미안으로 사교계에서 요즘 이름을 알리고 있다.
1.3.2. 멜키오레 곤차가(25)가 얼마 전 환속, 이브레아 성씨를 갖고 포이오 공작위를 승계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혼담 이야기가 몇 번 입에 오른 적은 있으나, 사적인 평판과 사건들로 인해 대개 유야무야 무산되었다. 종교재판 이후로는 이렇다 할 언급이 없다. 볼시니에는 아주 가끔씩 들르고, 대부분 포이오에 머물고, 꽤 자주 대성전을 오간다.
2.1. 이름
2.1.1. 본명
‘포이오와 볼시니의 멜키오레 투란 이브레아 곤차가(Melchiorre Turan Ivrea Gonzaga de Poio e Volsinii)’. 다시 두 가지 성씨, 아명과 장원을 모두 포함해 불린다.
2.1.2. 호칭
대개 ‘그’, ‘젊은 포이오 공작’, ‘아들’이란 호칭을 굳이 지적하지는 않되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다.
2.2. 특징
2.2.1. 신체, 음성, 인상
날씬하고 긴, 비율 좋은 신체.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우며 울림이 있다. 정확한 밀라나 식의 카엘룸어 억양을 구사하고, 고대 카엘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소수 중 하나이다. 카엘룸어의 억양이 약간 묻어나는 표준 신두어와, 거의 표준 억양에 가까운 헤자즈어까지 정확한 문법으로 이따금 사용한다. 늘 느슨한 와중에도 발음이 정확하고, 잘 들린다.
2.2.2. 이력과 재능
어릴 적부터 불세출의 천재로 불렸다. 신학 면으로 주목할 만한 저서와 논고 여러 편을 집필했다. 주로 다루는 주제는 ‘보편자’, 즉 신의 양태와 우리가 쓰는 개념의 실재에 관한 논쟁. 논증의 엄밀함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문투로도 이름높으며, 대성전에서의 종교재판 이후로는 역설적으로 더욱 손꼽히는 현대 신학자로 불린다.
2.2.3. 기타
예술애호가, 다독가. 성국에서 자주 쓰이는 언어들 외에도 방언과 고대 헬라어를 포함한 몇 가지 언어를 능통하게 할 줄 안다. 악필. 속기용 체계를 얼마 전 마련했다. ‘여성복’과 ‘남성복’의 경계가 애매한 옷들을 즐겨 입고, 장신구가 자주 바뀐다. 다만 고정적으로 착용하는 것들이 있는데: 신학교 시절과 똑같은 십자형의 화려한 귀걸이와, 왼손 소지의 이브레아 인장 반지, 오른손 중지의 오닉스 반지가 그것이다. 다듬어진 외관 치고, 제 얼굴을 잘 비춰 보지 않는다.
최근 시모네타 그리말디가 벤티벨리오 백작의 첫째와 성혼했을 때 증인으로 앉아 있었다. 보석상 주인의 여동생 줄리에타는 헬라어 시집을 하나 냈는데, 가장 뒤에는 후원자인 포이오 공작의 짧은 축복의 말이 적혀 있었다. 그 밖에도 여럿, 옛 악명과 연관된 소문 속의 애인들과 여전히 교류하는 듯 보였다.
2.3. 평판
2.3.1. 여전히, 긍정적인 평가는 모두 그의 능력에 관한 것이다.
2.3.2. 어릴 적에는 기재로 불리며 ‘불세출의 천재’, ‘가장 어린 신학자’로 흔히 일컬어졌으나, 그런 호명이 무색하게 자라며 몇 가지 오명을 얻었다: 개중 가장 불명예스러웠던 것은 ‘슈미즈의 철학자’라는 별칭인데, 늦은 시각까지 내실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다 얻은 것이다. 신학교 졸업 및 환속 후로 한동안 행적이 묘연하며 그러한 사적인 오명이 사그라들었던 시기가 있으나, 오래지 않아 포이오 공작위를 승계하고 혼담이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기 시작한 후 예의 선상으로 돌아왔다.
2.3.3.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성전의 신학자들은 등을 돌릴지언정 그의 철학만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그를 학자라는 이름에서 배제하지 못했고, 이렇게 평했다; 대담함, 날카로운 언어와 논증의 정교함. 치밀하고 일관성 있게 짜인, 그러나 단순한 그 체계를 보다 보면, 소름끼치는 천재성이 그것을 관통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고. 어떤 노학자는 그러므로 덧붙였다; 그것은 천부적인 재능이며, 주께서는 오직 그에게만 그런 권한을 부여하셨다고. 그것은 성력 이상의 축복으로, 그는 감히 사고를 통해 주께서 지으신 세계의 구조도를 읽고 이해하는 듯할 때가 있다고.
끝으로 그는 조용히 말했다. 그러므로 세상에 지어진 이래 그의 광기의 연원은 그것에, 주께서 그에게 주신 그 앎의 은총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그것은 주의 것이기에.
3.1. 행적: 대공의회 이후
1393년
신학교 졸업 후 시험에 쉽게 통과,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해 말 지역 이익 및 특정 교구나 교파에 치우치지 않도록, 학술 목적의 대성전 상주 주교위를 제의받아 주교로 서품되었다. 집필 작업에 복귀했고, 곧 보편자 논쟁을 종합하는 신학서 <제일원리론>을 발표했다. 현재 신학교에서 교과서로 읽힌다.
1394년
숱한 소문 속에 갑작스럽게 환속했다. 성황 암브로시오로부터 선택을 만류하는 친서를 받았으나 돌이키지 않았다. 이후 망설임 없이 대성전을 떠나 세속인 신분으로 긴 여행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1394년 초~1395년 중순).
1395년
포이오에서 출발해 메지디까지 대륙을 횡단한 후 돌아오려 했으나: 신분, 징조 없는 성행 사용자인 점, 당시 경색되기 시작했던 3국 간의 분위기에 견주었을 때 여행의 사유가 충분하지 않아 제국으로의 입국이 허가되지 않았다. 한동안 벨라르미노에 체류하며 국경지 인근을 떠돌다가 볼시니로 복귀했다. 몸을 회복한 후 포이오 공작위를 승계했고, 직후 포이오 기사단을 재정비해 두 개 단으로 나눈 뒤 하나를 성황의 영광 아래 바쳤다(그들은 일반 인력으로 이변 수습을 돕고 있다).
얼마 후 대성전으로부터 소환령이 내려졌다. 사유는 여행 중의 행적에 관한 질의 및 징조 없는 성력 사용자로서의 추후 소속 문제. 성황에게 필요 시 이변지 및 여러 임무 등에 파견될 것과 이변 관련 연구에 응할 것을 명받아 서약했다.
1397년
논리학 저작 <개념과 명제에 대하여>를 발표했다.
이따금 이변지에 파견되어 성기사들과 임무를 함께했다. 성력에 극도로 기민하고, 그 자신의 몸처럼; 자연스럽고 교묘하게 그를 운용할 줄 알며, 사용에 그 어떤 유예도 없다는 장점을 십분 살려 직접 공격하거나 방어하기보다는 전황을 둘러보며 환경을 조율하는 데 두각을 드러냈다. 친밀해진 이들 사이에서는 농담처럼 ‘그라티움’의 지소형인 ‘그라텔룸’으로 불린다. 그라티움을 사용했을 때처럼 성력의 운용이 편안해지고, 효과가 강력해진다는 것이 그 까닭. 본인은 예의 악의와 무게 없는 코웃음 끝으로 이렇게 밝혔다: “그라티움은 이제 널려 있지만 이 나는 하나지.“
1398년
보편자 논쟁에 관련된 후속 논고를 다수 발표했는데, 이전의 논고와 학문적 견해가 크게 달라 학계 내에서 소란이 있었다. 이성을 통한 신성의 증명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논고의 이단 여부 판정 문제로 대성전에서 종교 재판에 회부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무혐의로, 파문되지 않았으나, 최근 성국을 떠들썩하게 한 스캔들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하나. 재판에는 참관이 가능했다.
그때 재판장에서 펼친 자기변론이 유명해졌다: “나는 개념의 척도를 신성의 바다로 끌고 가려는 오만을 버렸습니다. 주께서는 스스로 그렇게 되시는 자로 그 어떤 논리와 사유도 주의 전지전능함을 감히 손상할 수 없으며, 그 어떤 논증도 믿음 앞에는 무용하며, 그 어떤 사람의 언어로도 감히 신성을 형언할 수는 없습니다.”
1399년
미사곡 <작은 미사>를 발표했다. 비통하게 시작하는 독특한 분위기의 ‘키리에’로 주목받았고, 서부의 몇몇 성당에서 미사곡으로 쓰인다.
이외에는 대개 대성전과 포이오, 필요에 따라 드물게 이변지 등에 오가며 여러 일들에 관여했다. 성행에 관하여 때때로 성황을 만난다. 밀라나 선언 발표 당시 톨로사의 테레사 앞에 있었다.
3.2. 콘스탄티노파 대공의회
재소집이 공고되었을 때 가장 먼저 콘스탄티노파에 도달해 기다리던 이들 중 하나로, 그는 언뜻 변함없는 듯 보인다. 일전보다 일상적으로 성행을 쓰는 빈도가 줄어들어, 이것저것 제 손으로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들려오는 소식들에 꽤나 주의를 기울였고, 연락이 가능하다면 연락하거나 한 번쯤 시간을 내어 찾아보았다. 텃세 부리는 성국인처럼 굴던 짓은 반 정도 그만두었고, 대공의회를 대공의회로 대하되 켜켜이 쌓인 행적과 시간의 층을 모르는 척 굴지도 않는다. 언제나 앎은 그 자리에 있다. 바라든, 바라지 않든.
때로는 모든 것으로부터 모르는 체 눈을 돌리고 싶어진다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