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 1. 원칙을 존중할 것]
규율에 관심을 가진 적 있는가? 으레 적어두는 계명이나, 복도에 쓰인 안전수칙 같은 것들. 그는 상인들이 판촉용으로 사용하는 안내판 글귀 따위를 지나치지 못하고 뚫어져라 보는 편이다. 이는 물건이나 행위에 정해진 순서가 있다면 그렇게 정해진 까닭이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지금 설명하는 ‘중요한 것 목록’ 또한 엘레오노르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기에 당당히 1순위로 기재되었다.
[중요한 것 2. 알았으면 행동할 것]
불의를 행하는 것 다음으로 나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불의를 알고도 참는 것이다. 그럼 그 다음으로 나쁜 것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하지 않는 것이다. 성당이 곧 집이자 일터인 생활을 해왔던 엘레오노르로서는 신학교에 입학했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잡일거리가 산더미였다. 복도를 어지럽히는 사람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때로는 직접 청소하라며 빗자루를 쥐어주곤 한다.
[중요한 것 3. 선함을 소중히 할 것]
모두가 불의를 행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선이고 천국인 걸까? 그것에 대한 답은 스스로도 내지 못했다. 어쩌면 평생의 과업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당당히 외칠 수 있다. ‘좋은 의도로 한 일은 부끄러워 하지 마!’ 평소 정제된 엘레오노르의 언어습관에 비하면 꽤 과격한 주장이지만, 그만큼 진실된 마음 속 외침이다. 내면의 선을 믿고 행하는 것, 그것이 엘레오노르의 가치... 지만. 어째선지 본인의 내면의 선은 별로 믿지 않는 것 같다.
<좋아하는 것>
그림 그리기, 책 읽기 등 홀로 즐기는 것, 선행.
<싫어하는 것>
정돈되지 않은 것, 성행(마법)을 쓰는 것.
<애칭>
이름이 긴 편이라 보통 ‘엘’이라고 불린다. 친구를 사귄 적이 별로 없어서 애칭으로 불리면 이쪽도 애칭을 지어줘야 하나 긴장한다.
<가족>
일찍이 부모님을 잃고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루치교 성직자들 사이에서 길러졌다. 성장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엘레오노르의 조부모, ‘이소마리아’ 사제는 성당에서 사람들을 돕느라 바쁜 데다가 또래 친구가 없어 홀로 그네를 타거나 성화를 따라 그리며 놀곤 했다. 어렸을 때부터 이소마리아에게 라데군다 추기경에 대해 많은 말을 들었으며, 사제가 워낙 고령인 탓에 지금도 안부를 묻는 편지를 자주 보내곤 한다.
<변덕?>
가끔 이랬다 저랬다, 의견이 제대로 통합되지 않을 때가 있다. 본인도 곤란한지 자주 주변에 의견을 구하는데, 의견을 잘 수용하는 듯 싶다가도 갑자기 반대 쪽을 해야겠다며 급속도로 틀어버리는 일이 종종 있다.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엘레오노르 본인만 알고 있다.
<여전히 원칙주의자. 그런데 산전수전을 겪은>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물이나 현상이 그렇게 된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쪽이다. 그러니 이변으로 생겨나는 각종 자원과 그 기술력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할 수밖에. 다만 주변 환경이 변화하는데에는 전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그가 하늘 위를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보고 있으면 다음 날 폭우가 내릴 수 있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여전히 행동이 먼저>
예나 지금이나 행동파인 것은 여전하다. 어떤 신학교 학생이 신앙심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환속의 가능성을 열어두려 하겠는가? 불경하다 생각할지도 모르나, 엘레오노르에게 있어서 사제로 일하는 것만이 깨달음을 얻는 길은 아니었다. ‘순례길’... 그것은 신앙심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고, 엘레오노르가 선택한 방식이었다.
뒤에 무엇을 남겨두게 되던 간에, 그는 떠나기로 했다.
<사마, 본성을 드러내도 괜찮아>
고향으로 돌아간 신학교 학생은 다른 평민 신학생이 그렇듯 사제가 되는 길을 택했다. 한… 절반 정도? 나머지 반은 ‘사마’라고 불리는 인격의 몫이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사마는 엘레오노르와 충돌하기 일쑤였지만, 딱 하나. 여행을 떠나는 것만큼은 동의했다. 내면의 합일을 이룬 그들은 갖가지 용역을 통해 수업료를 상환하는데 성공하고,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여로를 기록했다. 절친한 친구로서 서로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이때를 기점으로 깨졌으며, 변덕 역시 사라졌다.
아니다, 사제 일을 뒤로 하고 떠난 뒤 돌아와서는 기어코 징계까지 받아가며 부제가 되었으니 변덕은 천성적인 걸지도 모른다.
[가족]
대공의회 해산으로부터 3년 후, 그의 조부모인 이소마리아 사제가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편지가 닿는 인원이라면 부고 소식을 전달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장례식을 마무리한 후, 돌연 자취를 감췄다.
[7년간의 행적]
예정대로 교구에 소속되었으나, 3년간 수업료를 상환하기 위해 곳곳에서 일했다. 상환을 완료하고 가족의 장례식까지 마치고 나서는 순례길에 올랐는데, 여로를 기록하는 동안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 자세한 것은 다음과 같다.
타랑메나르로 가 등대를 오르고 화로를 보며 밤 보내기, 겨울 들판에서 늑대 무리와 맨몸 격투(사마가 처리함), 타랑메나르를 떠나 제국으로 가는 길에 풍랑을 만나 난파, 뱃사람들과 함께 무인도에 표류, 무인도의 곰과 전투(사마가 처리함), 뗏목을 만들어 인근 섬까지 도달, 그러나 그곳도 무인지대였던지라 임시 리더를 맡아 캠프 건설, 1년 뒤 상선에게 구조, 뱃사람들과 함께 알-파티하에 도착, 오아시스 탐방을 나섰다가 신기루 현상으로 인해 조난, 마찬가지로 조난당했던 상인 무리 발견, 상인과 함께 모래폭풍을 뚫고 수도로 귀환, 상인들에게 받은 사례금으로 귀향.
…까지 3년이 걸렸다!
당연히 그동안 연락은 닿지 않았고, 수업료를 상환했다고는 하나 완전히 환속한 것도 아니라 엘레오노르의 실종은 혼란 그 자체로서 잠시동안 화제가 되었다. 심지어 돌아오고 나서도 근거없는 뜬소문에 시달리곤 했다.
나머지 1년은 사제직이 되려 노력했으나 그간의 전적이 있어 신용할 수 없는 바, 징계를 받아 부제로 일하면서 지냈다.
[상처]
어떤 상처는 성행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그의 오른쪽 눈도 그렇다.
남아있는 한 쪽 눈도 안경 없이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다 안대에 안경까지 같이 쓰니 콧대가 무겁지만, ‘사제 두목같고 멋있다’는 사마의 말에 종종 거울을 들여다 보며 용기를 얻곤 한다.
[사마엘]
세상을 본의 아니게 유랑할 때 사용한 가명. 굳이 가명을 댄 이유는 혹시나 이상한 쪽으로 타국과 얽혔다는 게 알려지면 성국 사제가 되는데 애로사항이 생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과는 반대로 평판이 문제가 아니라 종종 튀어나오는 사마의 폭력성과 장기 실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신학교 출신임에도 부제에 머물러 있다.
제국인이나 왕국인 중 소문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한 번쯤 그 이름을 들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