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옷 못생겨서 입기 싫다니까요?"
샤키라 빈트 라시드 빈 달랄 알 미르자데
Shakira bint Rashid bin Dallal Al mirzadeh
알-파티하 제국
170cm  , 61kg  ,  17y

✦징조

〈친취〉

보석에 입 맞춘다.
어렸던 샤키라는 조부를 따라 도착한 방에서 탁자 다리가 부러질듯이 가득 쌓인 보석의 산을 봤다. 손녀의 심미안을 기르겠다는 목적 하에 가품과 하품, 상품이 뒤섞인 원석 사이에서 유일한 최상급품을 찾아내면 이 자리에서 네 소유로 삼아주겠다는 조부의 조건을 듣고 신이 난 얼굴로 한참 동안 원석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던 중 한 구석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탄자나이트에 그대로 홀려 덥썩 집어들었다. 그리고 입 맞췄다. 사랑에 빠진 대상에게 하듯이 눈을 감고 조심스럽게, 이 세상에 자신과 이 보석만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으며. 그리고 눈을 뜨자 자신과 보석을 제외한 그 방에 있던 모든 물건이 사라진 상태였다. 전송 마법이었다. 사라진 가구들은 그해 여름 조부의 손을 잡고 들렀던 별장 안에 조성한 연못에서 발견됐다.
※두상 출처:https://picrew.me/en/image_maker/227881/complete?cd=vMRi6Dr492

인상착의

전형적인 제국인의 옷차림이다. 성국에서 제공하는 기본 복장은 거부하고 본국에서 챙겨온 흰 의복을 입었다. 하늘거리는 긴 소매와 은실과 금실로 수놓은 복잡한 기하학적 문양이 인상적인 드레스는 매일같이 디자인이 바뀌었다. 섬세한 솜씨로 땋아내린 머리카락을 틀어올리고 늘어트려 진주로 장식했다.

품행

성가신, 자존심 강한, 까다로운, 멍청한


어지간한 나라의 공주보다 귀하게만 자랐다. 마냥 손녀가 어여쁘던 조부의 암묵적인 허락 아래 샤키라는 정말 자기 잘난 낙에 살았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조부의 소매자락을 잡아 흔들며 애교를 부렸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은 버럭 화를 내며 싫다고 소리치는 것만으로도 눈 앞에서 사라졌다. 미르자데에서는 누구도 샤키라를 거스를 수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유년을 보냈으니 아무리 궁정학교에 들어간다한들 그 천성이 바뀌기 어려웠다. 자라면서 미르자데 자치령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설설 기는 것만을 보고 자랐으니 남들이 당연히 자신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믿었다. 원하는 것은 언제든지 가져야 하고, 남들에게 얕잡혀 보이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기본적으로 날이 선 태도는 이런 이유에서 온다. 그러나 성미는 그토록 까다로운 주제에 타고난 멍청함을 숨길 수는 없어서 조금만 좋은 말로 구슬리면 좋다고 넘어갔다. 자존심을 추어주는 말 몇마디면 세상에서 다시 없을 진정한 우정을 알고 의리를 지키는 친구로 대우 받을 수 있었다.

이야기

미르자데

제국의 형성 전부터 사라세니아 반도 몰약 생산량의 7할을 담당하는 최대 생산지를 다스리던 가문이다. 본래는 작은 왕국이었으며 미르자데 일가는 그 땅을 다스리던 왕조였다. 지리적 특성상 중앙집권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연방제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12세기 무렵, 이스파한의 정복 전쟁에 발 빠르게 꼬리를 내린 미르자데 왕조의 마지막 왕은 자신의 핏줄에게 이어지는 몰약 생산 독점권과 거래 독점권을 약속받고 기쁘게 왕국의 자치권을 헌납, 그대로 알-파티하 자치령의 유력 가문이 되었다. 미르자데 왕국은 나라라고 해봤자 국경을 맞닿은 다른 국가와 국가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 무역과 몰약 판매를 통한 수입이 전부에 어차피 몰약 생산지를 제외하면 사람이 사는 지역은 한줌뿐인 땅이었다. 그런 곳의의 통치권 따위가 대수랴. 시대의 변화에 빠르게 탑승한 그는 이 독점권을 이용해 상단을 차렸고, 곧 거상으로 성장했다. 그들이 얼마나 부자가 되었냐면 그들 씨족을 가르키는 말로 황금의 미르자데라는 별칭과 ‘제국의 모든 동전은 미르자데 가문의 손을 탄다’는 오래된 농담이 있다는 말로 설명을 대신하겠다.


해안지대가 아닌 내륙에 위치한 지역으로 서로 가까이 모인 거대한 일곱 개의 오아시스에 사람들이 모여 도시를 형성하고 산다. 중심지가 되는 오아시스의 위치가 마치 밤하늘의 국자 모양 별자리와 같은 형상인 까닭에 사람들은 미르자데 자치령의 오아시스 사이를 연결하는 길목을 사막의 북두칠성이라고 부른다. 또한 이 표현은 점차 대상이 확장되어 미르자데를 의미하는 하나의 대명사로 자리잡아서 현재는 미르자데 가문 사람들을 지칭할 때도 사용하게 되었다.



샤키라 빈트 라시드 빈 달랄 알 미르자데

이름

미르자데 자치령에서는 본명 - 부친의 이름 - 조부의 이름 - 조상의 이름 순서로 작명한다. 아주 공식적인 자리, 계약서를 비롯한 공적인 서류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본명 - 부친의 이름 - 조상의 이름 정도로만 자신을 소개한다. 대공의회에 선발되어 카엘루마 성국에 도착한 지금은 샤키라 빈트 라시드 알 미르자데라는 더도 덜도 말고 딱 필요한만큼의 예의를 지키는 호칭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가족관계

현재 가문의 각종 최종결정권을 가진 가주 달랄 빈 카말 빈 무함마드 알 미르자데 (68세)를 기준으로 일찍이 죽은 그의 아내 파와즈 빈트 무스타파 빈 아흐메드 알 미르자데와 그들 사이에서 난 세 명의 직계 자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남 라시드 빈 달랄 빈 카말 알 미르자데 (37세, 샤키라의 부친)와 차남 피르만 빈 달랄 빈 카말 알 미르자데 (실종), 장녀 파르사 빈트 달랄 빈 카말 알 파델 (35세, 샤키라의 고모. 현재 결혼 후 출가)가 있다. 맏며느리 지브릴 알 미르자데 (31세, 샤키라의 모친)는 신두 왕국 출신으로 남편인 라시드를 따라 알-파티하로 이주하며 이름과 종교를 버리고 개종하여 라시드 빈 달랄 알 미르자데와 결혼했다. 그 신실함을 높게 산 시아버지 달랄로부터 지브릴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유년

달랄 빈 무함마드 빈트 파티마 알 미르자데의 하나뿐인 상속자로 자랐다. 샤키라의 아버지는 신두 왕국 출신인 이방 여자를 아내로 들이면서 가문의 상속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샤키라가 미르자데 가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유일무이한 직계 혈족이다. 6대를 말아먹어도 9대가 부자일 황금 속에서 끝 없는 사치를 벌이며 알-파티하 왕국의 사치품 유행을 선도했다. 아름다운 꼬리깃을 가진 새를 특히 좋아해 한동안은 예쁜 새를 가둔 순금 새장을 한 손에 들고 외출하는 기행을 벌인 적도 있다. 어린 시절은 출신지인 미르자데 자치령에서 조부와 함께 자랐으며 7살에 궁정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양친과 함께 수도에 있는 저택에서 생활했다.


수집가

샤키라 빈트 라시드 알 미르자데는 그 미르자데로 태어났음에도 판매자나 생산자라기보다 소비자라는 이름으로 정의하기에 좋은 인생을 살아왔다. 가장 널리 알려진 수집가라는 별칭이 그러했다. 바라는 것이 생기면 그것이 무엇이든 샤키라의 손아귀로 굴러 떨어졌다. 아름다운 것, 진귀한 것,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 보석과 조각상은 물론이고 진귀한 동물부터 때로는 사람까지. 욕심 많은 미르자데의 딸은 무엇이든 가졌다. 샤키라는 일곱 살 생일로 조부를 졸라 오아시스를 끼고 있는 거대한 별장을 선물받아 그곳에 자신의 소장품을 모두 모아두었다. 그곳은 샤키라의 수집품들을 모아놓은 일종의 보석함이다. 새를 좋아해서 다양한 종류의 애완조를 모았다. 수집할 때는 꼭 암수 한 쌍을 구해서 알을 낳게 하고 그걸 부화시켜 수집한 종을 이어갔다. 그 덕택에 저택 내부가 새장으로 가득하고, 새들의 아름다운 울음 소리가 언제나 들려온다.




궁정학교

그 미르자데의 딸이 궁정학교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사람들의 관심은 엄청났다. 샤키라 이전까지 집안 사람 중 누구도 신력을 발현한 적이 없어 예니센에 직접적으로 발 들이지 못하던 미르자데의 오랜 꿈을 해결해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샤키라가 미르자데에서 얼마나 완벽에 가까운 교육을 받아왔을지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입학이 이루어진 단 하루만에 완전히 깨졌다. 기본적인 상식은 고사하고 그나마 제대로 외운 것이라곤 헤자즈교 교리가 전부인 궁정학교 역사상 전후무후할 수치스러운 학생의 등장이었다. 심지어 그 교리마저도 본인이 내키는 부분만을 일부 암송할 수 있었으므로 이마저도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하기엔 어폐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예니센

살아가며 찻잔과 보석보다 무거운 것을 들어본 적 없었으나 차후 예니센에 소속되기 위해 일반 관리 양성 수업이 아닌 사관학교에 입학시킨 조부의 선택에 의해 매일매일 분통을 터트리며 무예를 익혔다. 7살에 입학한 이후 간단한 체술에 익숙해지기까지 5년이나 걸린 둔재 중의 둔재다. 자연스럽게 궁정학교의 성적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언어, 수학 등의 몇몇 과목은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았으나 정말 몇몇 과목에 불과했기 때문에 대공의회 선발 이전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샤키라에게 성적이 좋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능력

신력의 사용만큼은 섬세하다고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마법을 곧잘 사용했으나 전송 마법에 특출난 재주를 보였고 성장하면 지금보다 대규모의 전송마법 역시 가능해질 것이라는 담당자의 평가가 있었다.


일신의 무력을 설명하자면, 끔찍할 정도로 재능이 없다. 예니센 자격을 박탈당해도 할 말이 없었을만큼 몸을 쓰는 일에 재주가 없고 본인도 딱히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 출세 따위를 걱정할 필요 없는 부유함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파디샤의 정예부대인 예니센을 기준으로 평가한 내용이며 민간인을 간단히 제압할 정도는 된다.

다양한 전투 방식을 익히기에는 재능도 시간도 없다는 훈련관의 판단 아래에 맨손 격투를 중점적으로 익혔다. 격투를 배우면서 찻잔보다 무거운 걸 들어본 적이 없던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느냐고 지치지도 않고 재학 기간간 내내 시종일관 불평을 터뜨린 건 비밀도 아니다.


교우관계

까다로운 성미에 비해 단순한 면이 있어서 말로 잘 구슬리면 데리고 다니기 나쁜 상대는 아니었다. 외출이 가능하거나 방학 기간이면 수도에 있는 화려한 저택에서 친구들이 지낼 수 있게 해준다거나 값비싼 물건을 자기 성에 차지 않는다고 남들에게 턱턱 던져주고 다녔으니 주변에 사람이 끊이질 않았다. 뭔가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얻어먹으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어쨌거나 샤키라는 그걸 친구라고 생각했다.




선발 사유

이토록 골이 텅텅 비고 능력은 최하위권에 봐줄만한 것이라곤 집안의 부유함 밖에 없는 샤키라가 대공의회의 일원으로 선발된 것은 바로 언어 능력과 그 멍청함 때문이다. 알-파티하의 토속 언어와 종교를 연구하던 학자인 아이샤의 부친 라시드 빈 달랄 알 미르자데의 영향으로 그녀는 제국의 각 지방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류의 언어에 능통했고,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종교인 루치교도 부친의의 연구 대상이었기 때문에 카엘룸어 역시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다. 신두 왕국 출신인 어머니로 인해 신두어 역시 가능했다. 3개 왕국의 언어를 모두 사용 가능한 소통자이며, 뒤로 자신의 잇속을 챙겨서 국가 간의 중대사에 혼선을 일으킬만한 지성이 존재하지 않고, 전송 마법에 특화되어있다는 세 가지 조건이 맞아 떨어져 일종의 전서구 역할로 선발되었다.


대공의회에서 지내는 동안 편지나 소포 따위를 대신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성가신 티를 팍팍 내면서 들어준다. 생각보다 단순해서 칭찬 몇 마디로 구슬리거나 칭찬하기 귀찮을 경우 구미에 당길법한 장갑, 구두, 보석 등의 선물을 주면 흔쾌히 도와주는는 편이다.



대공의회

카엘루마 성국

뼛속까지 제국사람인 조부와 이맘이었던 부친의 영향으로 헤자즈교가 루치교보다 정통성을 더 잘 보존하였으며 우위에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을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다. 대놓고 무시한다기보다는 종교적 교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반사적으로 코웃음을 치는 정도다. 이런 이유로 카엘루마 사람들에게는 조금 쌀쌀맞는 경향이 있다. 충분히 카엘룸어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기분이 나빠지면 헤자즈어로 냅다 상대방에게 욕설을 쏘아붙이는 모습을 보여 대공의회 담당자를 비롯해 주변인에게도 잦은 주의를 받았으나 본인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신두 왕국

신두 왕국 출신인 어머니로 인해 르타교 사제들을 친근하게 생각한다. 르타교의 사제들과 왕국어로 곧잘 대화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보통은 왕국에서 유행하는 옷감이나 드레스, 구두, 장신구 디자인 등을 묻고 신두 왕국에서만 발굴되는 보석이나 특이한 식생에 대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캐묻는 것에 가깝다. 이외에는 어머니에게 들었던 왕국의 축일이나 옛날 이야기 등을 질문하기도 한다.


알-파티하 제국

평소와 다를 바 없다. 뭔가 떨어질 게 없나 주변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친구라고 생각하며 우르르 달고 다닌다. 필요한 것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멀리 나오는데 그런 것도 안 챙기고 무엇했냐며 타박하고는 대신 구해다 준다. 남들이 자신에게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하는 상황에서, 일종의 효능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대공의회 생활

시종일관 불평불만을 내놓는 것치고는 나름 잘 적응하고 있다. 알-파티하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음식과 새로운 유행의 드레스와 머리모양, 장신구 따위를 행복하게 만끽하는 중이다. 임무를 받고 모였다기보단 여행왔다고 믿는 게 분명한 눈치다.

"짜증 나!! 내가 카엘룸어 따위 두 번 다시 안 쓰겠다고 했잖아!!"
샤키라 빈트 라시드 빈 달랄 알 미르자데
Shakira bint Rashid bin Dallal Al mirzadeh
알-파티하 제국  ✶ 178cm  ✶ 68kg  ✶  24y
Radegund

왜 지지하느냐니, 당연하잖아요. 전쟁 같은 거 일어나서 뭐가 좋겠다고? 그런 거 일어나면 쓸데없이 내가 고생이에요. 게다가 우리 집안은 전부 할아버지를 따라서 라데군다를 지지하는 눈치고, 파디샤께서도 터놓고 말씀치는 않지만 내심 그를 원하시죠.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요? 나도 궁정학교에서 배운 게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기껏 뚫어놓은 무역로도 다 끊기잖아요. 지금도 봐, 내가 신두에서 얼마를 주고 침향목 군락을 사들였는지 알아요? 그런데 분위기가 이래서야 그게 제대로 수입이 되겠냐고요. 지금은 부르는 게 값인데! 아아, 정말. 전쟁 같은 건 딱 질색이라니까.


※이미지 출처:https://picrew.me/ja/image_maker/2353762/complete?cd=jm9fjfy64E

징조

〈친취〉

보석에 입 맞춘다.
어렸던 샤키라는 조부를 따라 도착한 방에서 탁자 다리가 부러질듯이 가득 쌓인 보석의 산을 봤다. 손녀의 심미안을 기르겠다는 목적 하에 가품과 하품, 상품이 뒤섞인 원석 사이에서 유일한 최상급품을 찾아내면 이 자리에서 네 소유로 삼아주겠다는 조부의 조건을 듣고 신이 난 얼굴로 한참 동안 원석을 가지고 놀았다. 그러던 중 한 구석에서 찬란하게 반짝이는 탄자나이트에 그대로 홀려 덥썩 집어들었다. 그리고 입 맞췄다. 사랑에 빠진 대상에게 하듯이 눈을 감고 조심스럽게, 이 세상에 자신과 이 보석만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으며. 그리고 눈을 뜨자 자신과 보석을 제외한 그 방에 있던 모든 물건이 사라진 상태였다. 전송 마법이었다. 사라진 가구들은 그해 여름 조부의 손을 잡고 들렀던 별장 안에 조성한 연못에서 발견됐다.

인상착의

예니센 정복을 빠짐 없이 차려 입었다. 사치스러운 것은 여전해서, 똑같은 정복이어도 옷감과 자수를 최고급으로만 고집해 같은 자리에 서 있으면 혼자 화려한 티가 났다. 윤기를 가지고 구불거리던 긴 머리카락은 짧게 잘라버렸다. 성가시다는 이유였다. 관리는 자르기 전보다 더 세심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보다 지금이 더 반질반질하고 윤기가 돈다. 왼쪽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는 속령 진압 당시 얻은 것으로 시력에는 문제가 없다. 징조를 핑계 삼아 예니센 정복 위로 여전히 정신 사납게 번쩍거리는 보석 장식을 온몸에 휘감고 있다.

품행

성가신, 자존심 강한, 까다로운, 그리하여 여전히 멍청한



우아하고 고귀한 것은 그 자체로 기품을 가지지만, 명심하라.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것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천박함이다. 달랄 빈 카말 알 미르자데는 누구보다 이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말로 손녀를 사랑했다면 그는 샤키라에게 예절과 명예를 가르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르침 대신 안하무인으로 손녀를 기르는 것을 택했다. 그 편이 좀 더 돈이 되기 때문에.



샤키라도 자신의 조부가 정상적인 방식의 가족처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다. 그녀는 멍청하지만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달랄의 사랑이 말 잘 듣고 도움이 되는 도구에게 주는 애정임을 깨닫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그러니까 한 스무 살쯤에. 바보인 것 치고는 빠른 편이었다. 딱히 상처받거나 충격을 받진 않았다. 어쨌거나 쓸모가 있는 동안 조부는 자신을 귀여워 할 것이고 그의 황금을 물려받을 사람도 자신 뿐이다. 평생을 놀고 먹고 사업을 오십 개쯤 시작했다가 죄다 대차게 말아먹어도 향후 9대가 여전히 부유할 자산 수준이니 상심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었다.



그러므로 까다롭고 성가신 태도는 여전하다. 다만 세월에 인품이 다듬어지는 대신 판을 깔아준 것을 거절하지 않고 좋다고 칼춤을 추고 돌아다닌 탓에 성미는 좀 더 포악해졌다. 길거리를 걷던 중 자신을 알아보고 행실에 대해 훈계한 어느 이맘의 얼굴에 침을 뱉고 길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파티하 전역에 퍼진지 오래다. 그녀는 변하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결코 나아지진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하고 동시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보석으로 온 몸을 감싸고 돌아다니다가도 그걸 전부 집어던져 깨부순다. 거리의 거지들이 그 깨진 부스러기라도 잡겠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모습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웃다가 보석상을 찾아가 감히 자신에게 거지들이나 탐대는 하자품을 팔았다고 화내며 뺨을 올려붙였다. 천박하고, 거칠고, 야성적이고, 기행을 일삼고, 절제를 모르고 미덕을 배우지 못한, 강도같은 빈궁을 이끌고 군사같은 곤핍을 몰고 온 살인자. 천국문을 넘지 못할 죄인.


그것이 샤키라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다. 샤키라는 이제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



라시드와 지브릴의 딸 샤키라는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모두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것에 아무 생각이 없다. 무수히 많은 일이 그녀를 스치고 또 그녀의 손끝에서 일어났음에도 지난 7년부터 지금까지 단 하나도 바뀌지 않은 점은 이것이 전부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 샤키라는 멍청하게 살기로 했다.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은 파디샤의 일이기에.

이야기

미르자데

사막 한복판에 발생한 일곱 개의 오아시스와 일곱 개의 도시. 제국의 형성 전부터 사라세니아 반도 몰약 생산량의 7할을 담당하는 최대 생산지를 다스리는 그들 일가는 과거에 왕족으로 불렸다. 12세기 무렵 파디샤 이스파한의 정복전쟁에서 영리하게 자치권을 헌납하고 그 대가로 핏줄로 이어지는 몰약 생산과 독점권을 약속 받았다. 그들은 곧 거상으로 성장했고 그 황금은 지금까지 여전하다. 황금의 미르자데, 사막의 북두칠성. 그리하여 알-파티하의 모든 금화에 손자국을 남긴 사람들.



샤키라 빈트 라시드 빈 달랄 알 미르자데

  • 이름

미르자데에서 온 달랄의 아들 라시드의 딸, 샤키라는 여전히 그 긴 이름으로 불린다.


  • 가족관계

조부와 양친, 오래전 실종된 삼촌과 결혼 후 출가한 고모가 가장 가깝게 피가 이어진 사람들이다.


  • 수집가

이제는 옛 별명이 되었다. 애초부터 무엇을 가져도 가진 것 같지 않았다. 원하는 것은 무수히 많지만 그중 어떤 것도 진실로 가지고 싶었던 적 없었고 따라서 손에 들어오는 순간 실증이 났다. 여전히 사치스럽게 물건을 사지만 관성적인 행동에 불과하다. 


  • 능력

신체 능력은 여러 전투를 거치며 향상 되었다. 궁정 학교에서도 무엇이든 하다가 실증이 나서 관둔 것이지 애초부터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필요가 생기자 빠르게 실력이 늘었다. 신력 활용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장 후 대규모 전송 마법이 가능해졌고 따라서 군수물자 이동이나 강제 이주 등에 주로 차출되었다.




  • 지난 7년

대공의회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 받은 샤키라는 평균적인 졸업 연령보다 조금 이르게 궁정 학교를 졸업했다. 샤키라가 예상보다 훌륭하게 맡은 바를 수행하기도 했고, 어차피 당장 파디샤의 기분이 좋은 지금이 아니라면 이 성적과 태도로 졸업은 영영 글러먹었을지도 모른다는 교사들의 판단이 있었다. 그렇게 샤키라는 궁정학교 교사들의 만장일치 하에 누구보다 빠르게 예니센 선발 시험장에 등 떠밀려 들어가게 되었고, 곧 졸업장을 받았다. 미르자데의 핏줄을 가르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궁정 학교가 이만한 재원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는 말과 함께. 지난 2년간 카엘루마에서 수사법에 통달한 샤키라의 귀에는 그 말이 ‘너 같은 꼴통 두 번은 못 없을테니 제발 졸업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거라.’ 처럼 들렸다. 샤키라는 조금 짜증이 났지만 모처럼 좋은 날에 기분을 망치기 싫어 웃는 얼굴로 새초롬하게 ‘흥, 당연하죠. 파디샤께서 명하신 바만 아니었다면 이런 허접한 학교 아무도 안 다니고 싶을 걸요.’ 라고 대답해주었다. 10년 동안 얼굴을 보아왔던 교사 중 하나가 뒷목을 잡고 쓰러졌으나 샤키라는 신경쓰지 않았다. (1393년)


자유의 몸이 된 이 젊고 유능한 예니센은 베이릭 부대 중 한 곳으로 배치 받았다. 메지디에서 마음껏 사치를 누릴 생각에 신이 났던 샤키라는 그 기대가 무색하게 곧장 외교 사절의 신분으로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신두 왕국에 파견되는 연구자들의 호위 및 감시, 통역을 맡기 위함이었다. 대공의회에서 나쁘지 않게 일을 해냈으니 신두에서도 잘 하리라는 대공의회 담당관의 평가와 추천 덕분이었다. 망망대해를 건너는 배의 갑판에 드러누워 편지 심부름꾼 노릇은 이제 싫다고 난리를 치던 것도 잠시, 누구보다 빠르게 신두에 적응해서 끝내주는 출장 기간을 즐겼다. 그러던 중 이변 발생지 근처로 갈 일이 생겨 동행한 신두 남부 지역에서 자생하는 침향목을 발견했다. 그녀는 침향목에서 채취되는 수지가 향료로써 지닌 가치를 알아보고 침향목 군락의 땅을 나무의 뿌리, 줄기, 수액, 열매, 잎사귀 하나까지 전부 자신의 소유가 되리라는 조건으로 구매했다. 그리고 연구가 끝난 귀국길에 이것을 알-파티하의 군주에게 연구 결과와 함께 진상하여 약간의 총애를 샀다. 파디샤가 몹시 흡족한 목소리로 오우드oud라고 이름 붙인 이 침향목 수지는 검은 황금이라고 불리며 메지디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1395년)


이후 소속된 베이릭 부대로 다시 복귀하였고, 접경지에서 발생하는 국지전에 참전했다.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어서 가진 경력이라곤 신두 왕국에서 끝내주는 여행만 즐기고 온 물경력 뿐인 예니센은 타고나길 잔혹한 성정을 십분 활용해 적군으로 하여금 치를 떨고 학을 떼는 전략을 고안해냈다. 독을 풀어 수원지를 파괴하고, 병에 걸린 시체를 묻어 경작지를 못 쓰게 만들고, 노인과 어린이를 인질로 삼아 적군을 몰살시켰다. 희생 당할 대상이 자국민이라 한들 예외는 없었다. 사람을 생명이 아닌 숫자로만 보는 비정한 관점에서 나온 전략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사로잡은 포로는 감히 파디샤의 땅과 그 소산을 훔치려 한 죄인이라는 명목 하에 전부 한 손을 잘랐다. 이때 자른 손을 꼬챙이에 꽂아 점령지로 오가는 길목에 빽빽하게 둘러 침략하려는 적군의 사기 하락을 유도한 잔혹한 전략으로 인해 카엘루마 측으로부터 때까치라는 멸칭을 얻었다. (1396년)


케트(Ket) 속령 진압에 파견되어 전략 참모로 활약했다. 제국 측의 유혈 사태 없이 성공적으로 반란이 진압되었다. 이때 샤키라는 상대측의 사기 저하를 위해 반란군의 신체 일부를 잘라 꼬챙이에 꿰어 전시하는 수법을 반복하였기 때문에 때까치라는 멸칭이 제국에도 퍼지게 되었다. (1397년)



반란에 가담한 모든 죄인을 처형하고 진압을 끝난 후, 샤키라는 누크타(Nuqta, 진압 이후 개명)에 강압적이고 잔혹한 이주 정책을 제안했다.


첫째, 반란에 가담하지 않고 살아남은 속령 출신 중 남자는 파디샤의 권리를 도둑질한 죄인을 말리지 않은 공범이니 한 손을 자르고, 여자는 어린이와 노인을 불문하고 전부 죽일 것.


둘째, 메지디의 빈민층에게 경작할 땅과 집과 권리를 주겠다고 약속한 후 이주시킬 것.


셋째, 이주한 사람 중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전부 속령 출신 남자와 강제로 결혼시킬 것.



누크타에 사는 여자들은 예니센이 모두 죽여버렸으므로 이주민 남성이 결혼할 수 있는 대상은 함께 빈민가에서 이주해온 여자들 뿐이다. 그런데 그 여자들이 모두 속령의 죄인들과 결혼했으니 그들은 이제 평생을 노총각 신세로 살아야 했다. 아니면 운 좋게 방문하는 유목민과 눈이 맞아서 결혼한 뒤 아내를 따라 함께 떠돌이 생활을 하거나. 하지만 먹을 것과 잠들 곳이 없어 평생을 허덕이던 빈민가의 사람이 조건 없이 얻게 된 자신의 집과 땅을 두고 떠날 리가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누크타는 기회였다. 가정을 꾸리지 못한 이주민 남성의 불만은 점점 구체적으로 모습을 갖춰 속령 남자들과 그들의 자식을 향한 차별과 폭행, 따돌림으로 나타났다. 제국식으로 세워지지 않은 모든 건물은 파괴되고 그 위로 아름답고 웅장한 헤자즈교 사원이 세워졌다. 태중에서부터 오래된 언어로 자장가를 읊어줄 어머니가 없고 요람을 흔들며 전설과 미신을 전할 할머니가 없는 속령의 언어와 토속신앙은 빠르게 쇠태했다. 샤키라는 약 2년만에 성공적으로 누크타 속령의 기존 문화를 파괴하고 알-파티하 식으로 융합시키는 것에 성공했다. 이 일로 파디샤로부터 크게 치하를 받았다. (1399년)



소속된 베이릭 부대 내에서 곧 부관으로 진급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정작 샤키라에게 전해진 것은 대공의회 소집 명령이었다. 샤키라는 밀라노 같은 삭막한 식문화의 도시는 절대로 싫다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으나 대공의회 소집 지역이 밀라노가 아니라 콘스탄티노파라는 말에 마지못해 짐을 쌌다. 좋거나 싫거나 파디샤께서 정하면 따라야 하는 법이다. 다만 앞으로 두 번 다시 카엘룸어 따위 읽지도 말하지도 않겠다던 7년 전의 결심이 무너져 심기가 썩 좋지는 않다. (1400년)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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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0/140
체력
3 / 10
완력
10 / 10
방어
0 / 10
자애
0 / 10
각오
0 / 10
집중
0 / 10
신앙
0 / 10
근면
0 / 10
민첩
4 / 10
재주
0 / 10
인내
0 / 10
설계
0 / 10
화술
10 / 10
관찰
3 / 10
사교
73 / 999
도덕
37 / 999
0 / 999

INVENTORY


STORY

  • 라데타 이븐 나디르

    [2차 대공의회]

    라데타 이븐 나디르 알 비르지마와 샤키라 빈트 라시드 알 미르자데의 대립은 의외로 뿌리가 깊다. 시작은 1396년 접경지에서 일어났다. 당시 샤키라가 소속된 제5 베이릭 부대와 라데타가 소속되었던 제1 베이릭 부대는 접경지 중 한 곳을 두고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략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정찰을 마치고 진흙발로 들어온 샤키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것은 교화의 가능성이 없는 루치교도의 땅이다. 그러므로 몰살만이 해답이다.' 라데타는 개인의 이름으로 샤키라의 주장에 반대했다. 그러나 두 부대의 지휘관들이 샤키라의 전략을 보다 유용하다고 여겼고 라데타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그것이 첫 번째 충돌이다.

    그 다음의 대립은 케트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누크타라고 불리는 옛 케트 땅에서 샤키라는 잔혹한 정책을 펼쳤다. 이때 반란군의 재조직을 저지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타 부대에게 지원을 요청했고 이에 응한 것이 라데타가 지휘관으로 있는 제6 베이릭 부대였다. 이주민을 사회의 중심 구성원으로 만들기 위해 샤키라는 공권력으로부터 묵인된 차별과 폭력을 이용했다. 이건 정말 간단한 일이었다. 누군가를 죽일 필요도 없고, 목숨을 걸고 전투에 나설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잠깐 눈을 감고 입을 다물면 되는, 아주 쉽고 간단한 방식으로 큰 효율을 낼 수 있는 계책이다. 샤키라는 누구라도 자신의 방식에 동의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라데타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지난 1396년의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눈빛으로 그 방식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약 두 달 간의 대치가 이어졌다. 그 기간동안 걸어다니는 편집증 덩어리가 된 샤키라는 끝내 참지 못하고 악에 받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파디샤의 영광을 위해 일하지 않을 자는 필요 없다. 라데타 알 비르지마, 당장 이 땅에서 떠나라!" 그 이후 라데타의 제6 베이릭 부대가 떠나고 새로운 지원 부대가 누크타로 파견되었다.
  • 자르갈

    [2차 대공의회]

    신두 왕국에서 지내던 시절 샤키라는 반가운 얼굴을 마주했다. 마가다에 방문한 자르갈을 샤키라는 마치 본인이 마가다 토박이라도 되는 것 마냥 익숙한 태도로 왕성에 눌러 앉아 언제나처럼 무수한 불평불만과 끝 없는 신경질과 짜증으로 그를 반겨주었다. 샤키라가 제국으로 돌아간 이후 미르자데 자치령으로 이따금 자르갈의 편지가 도착했으나 1396년 이후부터 전쟁터를 전전하던 까닭에 답장은 완전히 끊어졌다. 1397년 경 신두 왕국으로부터 온 악기 선물이 도착했는데 이것이 삼국의 관계가 대단히 악화되어가는 현 시기에 보낼 수 있던 마지막 기적 같은 연락이었던 모양인지 그 이후로 편지는 오가지 않았다. 샤키라는 1400년에 들어서야 그 선물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맘쯤엔 이미 대부분의 일에 흥미가 떨어져 무관심해진 상태라 따로 악기를 챙기거나 배우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 엘레오노르 엑시오시

    [2차 대공의회]

    1938년 초입, 샤키라는 진압한 케트 속령의 이주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밑바탕으로 잔인하고 가혹한 처벌을 이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정체 모를 한 방랑자가 끼어들기 전까지는. 샤키라는 케트 속령 출신의 여성은 나이를 불문하고 모두 사형시켰다. 그런데 감시가 느슨한 틈을 타 웬 방랑자 하나가 자루에 담은 새끼 염소와 어린아이 한 명을 바꿔쳐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샤키라는 소식을 듣는 즉시 말에 올라타 그들을 끝까지 추격했고 거의 붙잡을 뻔 했으나... 지난 시간 동안 칼과 창이 날아다니며 한끝차이로 목숨이 오가던 전쟁터를 전전하던 샤키라에게 갑작스럽게 날아온 못생긴 외투 집어던지기 공격은 사고를 멈추게 하기 충분했다. 방랑자는 그대로 멈춘 샤키라를 공격해서 낙마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말을 빼앗아 아이와 함께 도망쳤다. 끔찍하게 지저분하고 못생긴 추악한 외투 더미에서 빠져나온 샤키라는 흩어지는 흙먼지 너머로 사라지는 방랑자의 얼굴을 봤다. 샤키라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방랑자가 근방을 떠돌면서 잔혹하게 처리된 희생자들의 시신을 장사지낼 수 있게 도울 적에 사용한 이름이 사마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샤키라는 확신했다. 그건 엘레오노르 엑시오시였다. 샤키라는 두 번 다시 그 방종한 외국인이 제국 땅을 고개 들고 버젓이 돌아다니게 하고 싶지 않았다.

    '바깥이 검고 안이 흰 머리카락을 가진 성국인의 목을 가져오는 자는 그것이 누구든 미르자데의 샤키라가 이름을 걸고 다음과 같이 보상한다. 노예라면 그 즉시 노예 문서를 찢어 해방시켜줄 것. 죄인이라면 그 죄값을 줄여줄 것. 신실한 헤자즈교라면 성국인의 목과 같은 무게의 은을 제공할 것.'

    그러므로 1398년 가을 이후 알-파티하에 위와 같은 살벌한 현상수배가 돌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아시드 이븐 타리크 알 아즈하디

    [2차 대공의회]

    대공의회가 와해된 이후에도 샤키라는 아시드와 나쁘지 않게 교류했다. 신두 왕성으로 파견된 연구단이 제국으로 보내는 편지는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끔찍한 장기 출장지에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한탄하는 내용으로 작성된 샤키라의 편지였으며 대체로 그 무수한 편지 봉투의 수신인은 미르잠에 있는아시드가 되곤 했다. 샤키라는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건지 놀리는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애매한 답신을 받으면 펄쩍펄쩍 뛰면서 화를 내는 편지를 썼고 그러면 곧 어르고 달래는 내용의 답장이 미르잠에서 돌아왔다. 출장지에서 복귀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시드와 샤키라의 관계는 궁정학교 학생 시절과 동일한 양상을 지니고 흘러갔다. 1396년, 샤키라가 접경지로 파견되기 전까지는. 지금껏 드러나야 할 이유가 없어서 보이지 않았던 샤키라의 잔혹한 천성은 전쟁에서 빛을 발했다. 그것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주머니 속에서 그 천을 뚫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비집고 튀어나와 존재감을 과시했다. 아시드는 그 사실을 염려했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보아온 상대가 어느날 전쟁터에 나가더니 갑자기 달밤에 피에 눈 돌아간 미치광이처럼 날뛰기 시작한다고 하면 어느 누구든 그렇지 않겠느냐만은.

    두 사람의 상호원만하던 관계에 금이 간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아시드는 마주할 때마다 샤키라에게 크고 작은 조언과 간섭, 훈계를 늘어놓았고 샤키라는 파디샤를 기쁘게 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선택에 반대하는 아시드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귀찮고 성가셨다. 1397년 무렵 자꾸 이런 소리나 한다면 당신과 더는 놀지도 않고 연락하지도 않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하고 샤키라는 아시드를 의도적으로 피해다녔다. 그대로 관계가 끊어질 뻔도 했으나 여전히 걱정하는 마음을 거두지 않은 아시드가 계속해서 보낸 편지 덕분에 완전히 왕래가 사라지진 않았다. 샤키라가 그 편지를 단 한 번도 읽거나 답장 하지 않았다는 사소한 문제는 잠시 넘겨두자.
  • 아그다 느부라마나자

    [2차 대공의회]

    왕성에서 진행된 제국의 연구가 모두 끝난 후 제국으로 귀국하던 당시 샤키라는 뱃머리가 멀어질 때까지 다정하게 손을 흔들어주던 아그다의 따뜻한 배웅을 받았기에 침향목 군락의 일대가 불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보다 먼저 아그다의 이름을 씹어먹을듯이 외치며 분노할 수 있었다. 다만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었던 것과 더불어(샤키라는그 용의주도한 악랄한 가난뱅이 브라민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치를 떨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다.) 제5 베이릭 부대로 복귀가 이미 끝나 개인적으로 신두 왕국에 다시 돌아가 따질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샤키라가 "내가 진주 목걸이도 주고 오아시스로 오면 반겨주겠다고 약속도 했는데!" 라고 길길이 날뛰며 방 안의 물건을 전부 깨부순 것은 신두 왕국까지도 소식이 전혀졌다. 그러므로 방화를 일으킨 아그다 역시 이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샤키라는 그 이후 직접 사람을 골라 신두 왕국으로 보낸 다음 그들이 침향목 군락을 지키게 했다. 국가 관계가 경직된 이후에도 최대한 귀국을 미루며 제국인의 손으로 땅을 관리하다가, 최후의 최후에서야 마지못해 그들을 철수시키고 인근에 거주하는 지역민을 통해 관리를 부탁하게 할 정도였으니 5년 전에 일어난 방화 사건에 여전히 분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발타자르 벨라르미노

    [2차 대공의회]

    1396년 시기의 샤키라는 접경지에서 사로잡은 포로는 모두 눈에 보이는 신체적 상흔을 남긴 다음 돌려주었고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협상장이 세워질 때마다 성국 측 호위로 따라붙은 발타자르와 함께 동행하곤 하던 성기사 단원을 사로잡았을 때도 샤키라가 똑같이 하리라고 여겼다. 그러나 샤키라는 그 대신 협상장이 세워지기도 전에 새벽을 틈타 붙잡은 단원을 몸이 상하는 일 없이 온전히 돌려주었다. 오직 발타자르의 단원만 그렇게 보냈다. 발타자르가 그의 조상이 저지른 내통죄를 명목 삼아 여전히 정치적인 공격 받는 상황에서 그의 사람만 온전하게 돌아올 수 있던 이 선의가 호재인지 악재인지는 모를 일이나 일단 샤키라는 지휘관과 부관의 허락 없이 독단적인 결정으로 포로를 풀어줬다고 확실하게 징계를 받았다. 이유를 묻는 상관에게 "개인적인 이유가 있어서요.""그러니까 자네가 말하는 그 개인적인 이유가 뭐냐고!" "아아, 정말. 뭘 자꾸 그렇게 물어봐요? 그렇게 집요하면 여자한테 인기 없다고요. 시말서 써야 해서 그러세요? 그럼 적당히 제가 그걸 좋아해서 그랬다고 치죠."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그럼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눈동자 색이 마음에 들던데요. 그게 녹색이던가? 그래선지 재미 없던 그 성기사단장이랑 일가친척 같아보이기도 하고." "샤키라 알 미르자데! 자넨 정말 한 번을 좀 진지해질 수 없나?" "난 항상 진지해요. 그나저나 여자한테 인기 없는 상관이랑 너무 오래 대화해서 머리가 아픈데 들어가봐도 될까요? 어차피 이런 아사리판에 포로 하나 풀어준 일로 징계 처분이라고 해봤자 날 직무 정지 시킬 수도 없으니 감봉으로 끝날텐데..." "저 관심병사 당장 끌어내! 저 미치광이가 일주일은 내 앞에서 얼씬도 못하게 하라고!!" "네, 가볼게요." 따위의 피아를 가리지 않는 경우 없고 생각 없는 발언으로 상관을 뒷목 잡고 쓰러지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이미 소문이 났다.
    발타자르가 발신인을 숨겨 미르자데 자치령으로 보낸 선물은 1399년에 무사히 도착햇으나 그 당시 속령 집압에 이어 이주 정책을 현지에서 시행하던 샤키라는 1400년 2차 대공의회 소집에 응하기 위해 잠시 본가로 돌아가면서 그 선물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허접한 장신구(전적으로 샤키라의 관점에 따른 평가이고 발타자르는 좋은 것을 보내주었다.)를 보석함에 넣어둔 기억이 없던 샤키라는 처음 듣는 해괴망측한 이름의 발신인으로부터 자신에게 선물로 들어왔다는 말에 '뭔가 짚이는 게 있긴 한데 전혀 모르겠다.'가 정직하게 쓰인 얼굴을 하고 그대로 콘스탄티노파로 떠났다. 아무래도 곧장 발타자르의 단원을 살려보내준 것을 떠올리기엔 벌써 4년 전의 일이라 시각적이거나 직접적인 단서 없이는 기억하지 못할 모양이다.
  • 브리하날라 나로탐 스리바스타바

    [2차 대공의회]

    샤키라는 1차 대공의회가 와해되고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 브리하날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신두 왕국 출신인 모친에게 고향의 소식을 담은 편지를 보내도 괜찮겠냐는 요청은 샤키라가 생각하기에 문제가 될 것이 없었으므로 그녀는 흔쾌히 브리하날라에게 편지를 보낼 주소와 방법을 알려주었다. 얼굴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친절하게 언제나 메지디로 향하는 상행이 있는 도시와 상행이 머무르는 숙소의 위치도 함께. 그들은 얼마간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러나 브리하날라는 자신이 태어난 왕국을 떠나지 않았고, 제국인이 된 지브릴 부인 역시 자신의 집을 떠나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없었다. 1395년, 샤키라가 구매한 침향목 군락으로 인해 국가를 향한 우려를 담은 브리하날라의 편지와 그에 대한 지브릴 부인의 지극히 제국인다운 답장을 이후로 왕래는 끊겼다. 지브릴 부인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나서서 말하는 성격이 아니었고 브리하날라는 바다 건너 이국 땅에 사는 동향인의 자식에게 연락할 방도가 없었으며, 따라서 자신과 관련되지 않은 모든 일에 무관심한 샤키라는 아직도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 받는 줄 알고 있다.
  • 자르갈

    두 사람의 관계를 요약하자면, 샤키라는 자르갈로부터 신두 왕국의 종교, 풍습, 패션 유행 같은 문화 전반을 학습하고 자르갈은 샤키라를 통해 헤자즈어를 배운다. 서로가 서로의 교사이자 학생인 셈이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이런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신두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며 호의적으로 대하는 샤키라에게 마찬가지로 친절한 태도로 화답하며 신두 왕국의 문화를 성심성의껏 알려주던, 어디까지나 우연에서 시작된 관계다. 초반에 자르갈은 왕국의 수도와 거리가 먼 북부에 거주하는 탓에 신두의 최신 패션 유행 등에 관해서는 답변을 어려워했지만 휴식 기간 동안 본국으로 돌아가면 최대한 정보를 알아오는 성실한 태도를 보여 샤키라의 호감(이 과정에서 샤키라의 무수한 불평불만이 있었으나 자르갈은 이겨냈다.)을 샀다.
    이런 면모 덕분일까? 샤키라는 헤자즈어를 알려 달라는 자르갈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고 두 사람은 원만한 학생-교육자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비록 한쪽이, 그러니까 샤키라가 엄청나게 형편 없이 이론을 알려주고 대충 알아들었지? 이제 제국인과 대화해라. 라며 냅다 실전에 던져버리는 극악무도한 수업을 제공하고 있지만... 하여튼 학생이 진도를 따라오는 한 수업은 멈추지 않는다. 그 많은 제국 출신 중에서 하필 샤키라를 선택해 고생길을 걷는 자르갈에게 애도를 표하자.
    샤키라는 까다로운 성미에 비해 정말 단순한 바보라서 듣기 좋은 말 한 마디면 기분이 곧잘 좋아지곤 한다. 그러니 자르갈의 입에서 나오는 띄워주는 말 몇 마디만 있다면 헤자즈어 수업을 지금보다 더 공들여 준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르갈은 그 마음에 없는 좋은 말이 영 어려운 모양이다. 수업의 난이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초심자에겐 너무 가혹한 수준이다. 당신이 자르갈의 좋은 친구라면 언젠간 이 끔찍한 수업 난이도가 내려가는 날이 올 수 있길 기도해주길 바란다.
  • 유르카 카르얄라이넨

    당신이 샤키라를 바라보면 샤키라도 당신을 바라본다. 빤히, 아주 노골적으로, 시선을 피하거나 부끄러워 하는 일 없이 당당하게. 그래서 유르카와 샤키라는 한동안 그렇게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며 지냈다. 그러던 중 큰 갈등으로 이어질 뻔한 문제를 유르카가 나서서 무마하고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고, 그 이후부터 경계심은 사라지고 유르카의 평가가 높아졌다.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말을 붙이거나 선물을 하는 등 친근하게 굴기도 했다. 샤키라가 그에게 얼마나 친근하게 굴었냐면, 값비싼 장신구나 몰약을 선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2년차 휴식기에 미르자데 자치령으로 유르카를 초대할 정도였다. 미르자데 자치령에서 그를 위해 의복도 맞춰주고, 본래 외부인은 들일 수 없는 몰약 생산지도 견학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성국과 제국을 오가는 길에는 안전하게 제국을 여행할 수 있도록 집안에서 운영하는 카라반을 붙여 오가는 길을 배웅했다.
  • 아시드 이븐 타리크 알 아즈하디

    궁정학교에서 체술이 늘지 않아 고민이던 샤키라에게 과외 선생을 자처한 이후 이어진 관계. 그러나 샤키라에게 체술 재능이 없었다면 아시드에게는 교육 재능이 없었기에 과외가 시작된 이후 교관에게 칭찬은 커녕 자세가 이상해졌다고 잔소리를 더 많이 듣게 되기에 이른다. 잔뜩 화가 난 샤키라가 사기꾼이니 뭐니 따지며 심술을 부렸지만 눈치 빠른 아시드는 성격 좋게 듣기 좋은 칭찬과 사과를 섞어가며 단세포인 샤키라의 기분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었고 그렇게 관계가 파탄 나기 일보직전의 위기를 모면한다. 당연히 체술 과외도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되고 있지만 체술 훈련보다 궁정학교에서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일을 일방적으로 아시드에게 토로하는 뒷담화의 시간에 가깝다. 이따금 맞장구도 쳐주고 미처 문장으로 정돈하지 못했지만 억울한 부분은 살살 긁어도 주는 간신배 같은 아시드의 화려한 언변에 샤키라는 완전히 홀린 상태다.

    하지만 교관에게 잔소리를 덜 듣게 해준다더니 오히려 더 많이 듣게 만들었던 과거를 아주 잊지만은 않아서, 아시드가 편지 전송을 요청할 때면 꼬박꼬박 보수를 요청하는 옹졸한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미 아시드의 언변에 넘어간 상태라 그가 좋은 말 몇 마디로 잘 구슬리면 슬금슬금 광대가 올라가고 그때를 잘 노려서 부탁하면 무사히 편지를 보낼 수 있다.
  • 엘레오노르 엑시오시

    태양빛 아래에서 요란하게 번쩍이는 황금에도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샤키라는 보통 그런 사람들과 불화했다. 엘레오노르 엑시오시가 그런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원리원칙을 중요하게 여기고 삶에서 실천하는 것으로 자신의 규칙을 고수하는, 세속과는 거리가 먼 신실한 종교인. 그리하여 돈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사람. 정확히 그 반대에 위치한 샤키라가 엘레오노르와 사사건건 대립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게 두 사람이 벌이는 막하막하의 싸움은 이념을 넘어서 성적의 영역까지 이르게 된다. 알-파티하의 궁정학교에서는 점수같은 거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엘레오노르가 있는 대공의회는 다르다. 알-파티하의 자존심으로 적어도 저 벽창호 같은 카엘루마 사람보다는 높은 점수를 받아야 했다. 정신 공격을 위해 중간중간 헤자즈어로 맹렬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선의의 라이벌이라기엔 악의로 가득한 의도뿐이지만, 어쨌거나 서로에게 성적 향상의 동기를 부여하는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 니샨트 비크람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저택 별관의 이용을 허락 받은 유목민 무리가 있었다. 미르자데 자치령에서만 지내던 샤키라는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에게 언제나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저택까지 발을 들이게 되자 더욱 큰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날 밤, 샤키라는 물을 마시고 싶어서 향한 본관 부엌에서 남은 음식을 죄다 먹어 치우던 중인 웬 털뭉치를 발견했다. 마치 강아지 같았다. 샤키라는 언제나 꼬리깃이 아름다운 새를 좋아했지만, 강아지를 한 번쯤 키우고 싶기도 했다. 참새를 꾀어내듯이 바닥에 과자를 놓고 털뭉치가 자신의 방까지 이동하도록 유인한 것은 당연히 일어날 법한 일이었다. 자신이 데려온 것이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방에 도착한 이후의 일이었지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어차피 가지고 싶은 것은 항상 가질 수 있었는데 대상이 짐승인지 사람인지 가릴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샤키라는 자신의 새로운 수집품에게 그 당시 가장 아끼던 새 모양의 펜던트를 걸어주었다. 누구든지 이 펜던트를 보면 샤키라가 주인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리고 다음날 아침 사라진 아이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 털뭉치는 자신이 먼저 발견했으니 이제 내 소유고 내가 키우겠다 우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달랄이 몸무게만큼의 금을 줄테니 유랑민들에게 아이를 교환해주라는 제안을 받은 후에야 털뭉치는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 털뭉치의 이름이 니샨트라는 것은 궁정학교에서 우연한 기회로 마주친 니샨트가 어린시절 마주쳤던 샤키라의 냄새를 기억하고 그날 목에 걸어주었던 새 모양 펜던트를 보여준 이후에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헤어진 이후 궁정학교에서 극적인 재회를 한 두 사람은 친구처럼 지냈다.
  • 안비타 샨프라하리

    대공의회 초반 무렵 서툰 성국어로 곤란을 겪던 안비타를 우연히 발견한 샤키라가 두어번 일방적인 도움을 주었고, 그 관계가 이어져 결국엔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사실은 샤키라가 안비타에게 일방적으로 자신의 미학을 쏟아내는 것에 가깝지만... 어쨌거나 두 사람은 자주 어울리고 있다. 누군가 안비타를 두고 친구냐고 묻는다 해도 딱히 부정하진 않을 관계다. 비록 샤키라가 안비타를 데리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옷을 입히고 장신구를 둘러주며 인형 놀이를 한다거나, 안비타가 보답으로 본국에 돌아갔을 때 선물로 구해온 장신구에 못생겼다고 비명을 지른다거나... 관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발언을 자주 하지만 이 착하기 짝이 없는 르타교의 등대지기는 친구 관계를 여전히 유지해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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